Top
로그인 | 회원가입 | 예약확인

플래닛월드투어

  • 커뮤니티
  • Community
고객센터
070-7124-1400
Fax 02-6919-2445
touralbum@naver.com
AM 09:00 ~ PM 18:00
(점심시간 12시~13시)
토,일요일,공휴일은 휴무입니다.
입금계좌안내
한국씨티은행
179-00393-243-01
예금주 : (주)플래닛월드투어
예약금은 요청일 기준 3일 이내에
입금해 주셔야 실예약으로 확정
됩니다.
여행블로그
[기타]  쿠바여행- 헤로니모 임 그리고 생생한 한인 디아스포라의 역사 현장 쿠바
작성자 : 한재철 등록일 : 2020-08-15 조회수 : 852

대한민국 탄생은 한사람의 노력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수 많은 조선 백성들의 희생과 눈물을 흘린 숨은 노력으로 일본 식민지시대를 극복하고 지금의 대한민국이 탄생했다. 우리가 편하게 또 풍족하게 지낼수록 지난 100년 역사를 잊으면 안된다. 불과 1세기만에 전세계인들이 대한민국 문화에 관심을 가지고 배우려 하고 있다. 그러나 1세기전 조선 백성들의 수난과 괴로움을 살펴 보면 현재 우리가 누리는 풍요로움이 결코 쉽게 얻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배울 수 있다.

멕시코만과 카리브해 사이에 자리잡은 쿠바에 뿌리 내린 한인교민 경기 광주출신 독립운동가 임천택(1903 3 19 ~ 1985 9 6) 가족의 일대기는 세계사속에서 민족의 정체성을 간직하며 굳건하게 생존해 살아 숨쉬는 한민족 디아스포라(Diaspora)의 역사이다.

미래가 풍전등화 같던 암울한 조선을 뒤로 어머니의 품에 안겨 차가운 바닷바람을 맞으며 1905 44일 제풀포항구를 떠난 갓난아기 임천택은 남자 702명 여자 135명 어린이 196(257가족+독신자 196) 133명 이민단과 함께 일본 요코하마에서 검역을 하고 태평양을 건너 1905 512일 멕시코 서부 살리나크루즈(salina cruz) 항구에 131(항해 중 2명 사망)이 도착 한다. 다시 기차로 멕시코을 횡단해 동해안 코앗사코알코스(Coatzacoalcos)항구 이동후 다시 배로 유칸탄 반도 프로그레소(Progreso)항구 도착 인원중 119명이 목적지 메리다(Mérida)시 도착후 22 또는 24의 용설란(龍舌蘭 에네켄, henequen) 농장주에게 인계되었다.

 

당시 제물포 항구를 출발해 멕시코 까지 타고간 배는 화물선 일포드(ILFORD)호 정보

 

선박명: ILFORD
용도:Cargo Ship
진수:01/08/1901
속도:9.5knots
크기:4264GRT, 2789NRT
제작: 영국 중부해안 하우든(Howdon) 노썸버랜드(Northumberland) 조선소

조선인들이 알지도 못하는 묵국(멕시코) 에네켄 농장으로 팔려가는 배경을 살펴 보면 조선과 미국의 국교를 수립하며 시작된다.
1876
2 27일 조일수호조규
1882
5 22일 조선과 미국 통상수호조약을 체결
1897 10 12일 고종황제 즉위 대한제국 선포
1902
5월 고종 수민원 이민국을 설치
1902
1222일 최초 조선인 하와이 121명 이민 제물포항구 출발
1905
11 17일 조선과 일본 을사늑약(조선외교권 침탈)
1905
년 까지 모두 7226

 


 

조선과 국교를 수립후 미국의 대농장주들은 당시 하와이 사탕수수농장의 중국과 일본 노동자들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하여 조선인 노동자를 모집하여 하와이로 수송하였다. 조상을 모시는 것을 중시하는 문화 때문에 모집에 문제가 많았으나 고종과 선교사들의 적극적인 활동으로 초기 이민단을 모집하였다.

어느 정도 하와이 이민단 출발이 활성화되고 다시 세계시장에서는 에네켄 원료로 하는 밧줄, , 포대자루, 옷감등 수요가 폭증할 할 때 당시 마이어스(John G Mayers)라는 영국 상인은 멕시코 유카탄반도 에네켄 대농장 노동자 공급이 필요한 상황을 파악하고 아시아의 값싸고 다루기 쉬운 노동자를 구하기 위해 왔으나 에네켄 대농장에 먼저 들어와 있던 중국인 노동자들이 혹독한 노동환경 때문에 청나라 조정에서 추가 파견을 금지하였고 또한 일본 정부도 노동환경을 알아 이민보호법으로 추가 파견을 금지한 상태를 파악하고 일본 대륙식민합자회사와 접촉하여 멕시코와 국교도 없고 관련법이 없는 조선에 출장소 설립 에네켄 농장 근로자를 모집하였다.

 


 

“1904년 황성신문 1217일자 신문에 4년 계약 하루 130전 숙련된 사람은 3전까기 하루 벌 수 있다고 광고 하며 모집하였다.” 임천택 가족은 이때 모집된 이민단으로 멕시코에 도착하며 힘든 에네켄 농장에서 사연많은 이민생활를 시작하게 된다. 당시 에네켄 농장주는 노동자 1명당 당시 상당한 금액인 약 200달러를 모집책에게 부담하였다고 한다. 농장주는 돈을 뽑아내려 조선인을 가장 낮은 짐승수준의 취급하며 노동을 착취하였으나 꿋꿋하게 버티며 농장주들에게 성실함과 부지런 함으로 인정 받았다

 


 

 

1909 4년 계약기간 만료후 정치적 환경이 급변하며 1910년 멕시코 혁명의 시작으로 대농장 안시엔다(hacienda)가 몰락하고 조선인들은 현지 원주민들의 시기의 대상 핍박의 대상으로 또 고초를 격는다. 이러한 때에 1910 8 29일 일본의 대한제국 병탄으로 한인교민들은 국적 없는 신세가 되고말았다. 당시 일본은 한인교민들에게 일본인으로 귀화를 종용하였으나 교민들은 적극적으로 고국의 독립운동을 도우며 미래를 기약하였다. 에네켄 농장 교민들은 멕시코 다른 도시나 미국등지로 이주하였으나 임천택은 홀어머니와 함께 당시 쿠바 사탕수수농장의 돈 벌이가 훨씬 좋다는 소식을 듣고 이화룡 이라는 사람의 주선으로 교민 288명과 1921 32일 메리다 프로그레소(Progreso)항구를 출발 1921 325일 쿠바 마나티(Manati)항구에 도착했으나 17일간 입국거부 당하였다. 쿠바 이민국은 일본인으로 오인하였으나 교민들이 일본인이 아님을 주장하고 일본 영사관에서도 일본인이 아니라 무국적자 확인후 쿠바에 첫발을 내딛고 사탕수수농장 노동자로의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그러나 당시 교민들은 느끼지 못하던 세계사적인 사건이 마무리되던 시기였다. 쿠바의 사탕수수대농장 설탕 산업이 발칸 반도의 심장부 사라예보에서 열아홉 살 세르비아 청년이 오스트리아 황태자 부부를 저격하고 1914 7 28일 오스트리아가 세르비아에 대한 선전포고를 하며 시작된 1차 세계대전이 1918 11 11일 독일의 항복으로 끝날 때 까지 프랑스의 사탕무우(sugar beet) 농장들이 참호전 전쟁터로 변하며 세계적으로 설탕공급이 20% 급감소하며 급격한 호황기를 맞던 시기의 끝물이었다.

 


 

이 시기 쿠바의 설탕 생산량은 1913 240만톤, 1915260만톤, 1916300만톤으로 급증했다. 1918년에는 쿠바가 세계최대 설탕 생산국이되었다. 1919년 설탕의 국제가격은 파운드당 6.65 센트였다. 19205 19일 설탕 가격이 파운드당 22.5 센트로 폭등했다. “Dance of the Millions”, Sugar King of Havana”등은 당시 설탕농장에 투자해 성공한 사람들 시골 사탕수수 농장주들이 수도 하바나에서 다이아몬드 또는 이니셜을 넣은 금단추 컬러셔츠를 구입하던 모습을 묘사한 표현들이다. 그러나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바로 유럽 사탕무 생산이 회복되면서  그해 크리스마스에 설탕 가격은 파운드당 3.75 센트로 급락했다. 결국 급격한 설탕가격 붐이 꺼지며 한 때 쿠바 경제 40%까지 점유하고 막대한 자금을 빌려다 설탕농장을 설립했던 농장주들과 대출해주었던 은행들이 파산하며 농장들은 미국의 거대 자본가 채권자들 손에 들어가게 된다.

당시 임천택선생의 기록에는 사탕수수 농장에서 일하나 설탕값이 급락 2주사이 당시 하루 품삯이 몇 십전인데 설탕값이 한근 25(센트)에서 한근 2전까지 되었다

1921 5 31일 임천택과 교민들은 마탄사스(Matanzas) 주의 핀카 엘 볼로(Finca El Bolo) 에네켄 농장으로 이동했다채권자들 손으로 들어간 사탕수수 농장들이 빠르게 다시 에네켄 농장으로 바뀌었다.


쿠바에 자리 잡은 조선인들은 신문과 서신을 통해 국외에의 독립운동의 소식을 들었다. 임천택은 1921 111일 대한국민회 로스엔젤레스 쿠바 지회를 설립하였고 1923년에는 민성국어학교 교사로 민족의식을 고취하고 쿠바교민을 규합 재쿠바 한족단결성후 상해임시정부 연결 쿠바의 조선인들은 하루 임금이 1센트도 안 되던 시절 돈을 모아 상해임시정부로 보냈다. 1937년부터 1944년까지 쿠바 교민이 송금한 독립운동자금은 총 1,499달러였다. 김구 선생의 <백범일지>에 이 송금운동을 주도한 임천택있다. 천도교신자였던 임천택은 손병희선생이 고안한 매끼마다 조금씩 쌀을 모아 성금을 조성했던 성미제(誠米制)를 도입하여 모금활동을 하였다. 1920년대 조선은 일본의 수탈로 쌀값 폭등 80kg 50, 한국순사 2배 받는 일본순사 급여 65원이었다.

 

 

 

임천택은 신한민보 1941 4 3일자부터 7 17일자에쿠바 재류 동포의 이주 20년의 역사라는 제목의 글을 11회에 걸쳐 게재하였고 1953 `큐바한인이민력사' 집필 정리해 1954`하와이 태 평양주보'에서 발행하여 조선백성으로 머나먼 이국땅에서 정착기를 기록으로 남겼다. 그의 아들 헤로니모 임(Jeronimo Lim Kim,임은조, 1926~2006 1 19)은 남아메리카 최초로 대학교 쿠바 하바나 대학교 법학과에 진학하였으며 동기인 혁명가 피델 알레한드로 카스트로 루스(Fidel Alejandro Castro Ruz)와 함께 쿠바혁명의 주역으로 활동하였다. 쿠바혁명 성공후 그는 식량산업부장관을 했던 체 게바라(Ernesto "Che" Guevara)와 차관으로 4년간 일하였고 30년간 공무원으로 근무 했다. 1959년 쿠바혁명후 1960년 카스트로 정부의 첫 실행정책은 전체 설탕 산업을 국유화하는 것이었고 이로 인해 미국 농장주들의 반발로 미국과 쿠바는 외교단절까지 하게되어 현재까지 정치적으로 대립하고 있다. 헤로니모 임은 1988년 아버지의 사망후도 유지를 받들어 한인교민들의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하여 많은 노력을 하였다.

헤로니모는 쿠바 이주 80주년이던 2001한인 이주기념비를 첫 도착지 마나티 항구(Puerto Manatí)에세웠다. 기념비는 전면을 고향이 있는 서쪽을 향하도록 하라 뜻의 “FRENTE HACIA EL OESTE” 이다. 헤로니모 임 선생은 사망후 쿠바혁명 참여공료로 1876에 조성된 쿠바 하바나 국립현충원(Colon Cemetery, Havana)에 안장되었다.

1898 4 25 ~ 8 12일 스페인-미국전쟁 미국 쿠바, 필리핀 확보
1921
6 14일 마탄사스 한인회 설립
1921
11 1일 대한인국민회 쿠바지회 쿠바 정부 공식인정 한인기관
1922
3      대한인국민회 카르데나스(Cardenas) 지회설립
1929
1024일 뉴욕 주식시장 대폭락 미국대공항 시작
1929
11 3일 광주 학생 항일 운동
1959
1 1  쿠바혁명성공
1995
8 10일 헤로니모 임 김포공항을 통해  첫 입국
2001
3 25일 마나티 항구 한인 이주기념비 건립
2004
         임춘택 봉환돼 대전국립현충원 안장
2005
         마탄사스 엘 볼로(El Bolro)마을 한인기념비 건립

미라마(Mirama) 해변에 있는 옛소련 건축학회장을 지낸 건축가 안렉산드라 로체코브(Aleksandr Rochegov)가 설계 1987년 완공한 러시아 대사관(The Embassy of Russia) 옛소련 대사관, 식민지시기의 다양한 건축물들과 올드카등은 매력적인 쿠바관광 자원이다.

또 한가지 분명한 것은 쿠바는 아직까지 살아서 이어오고 있는 총 180개국에 7,493,587(2018) 한민족 디아스포라(Diaspora) 100년 역사의 살아 있는 현장이다.

 


 

 

조국도 빼앗긴 암울한 시기 일본인들의 귀화 회유와 압박에도 쿠바한인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잃지 않기 위하여 스스로 또 서로 도움을 주고 단결하여 끝까지 한민족의 정체성을 지켰다. 다큐영화 헤로니모에 나오는 100세 할아버지는 ,북이 나눠서 뭣들 하느거야!”라는 말씀이 마음에 와 닫는다. 일본의 모습은 100년전과 바뀐 것이 없다. 그들은 당시 국제정세를 누구 보다 잘 알고 있었나 국제정세에 무지 하였던 조선인들은 무시하고 돈벌이에만 이용하였다. 2019 11월 한반도는 변화의 문턱에 있다. 쿠바 한인들이 그랬듯 스스로 깨어나서 역사의 문턱을 넘어야 한다.

구글스토에서 위치기반 여행사진 공유앱 포틀라스(PHOTLAS)를 설치하면 지도에서 여행코스와 관광사진을 무료로 감상 할 수 있다. 포틀라스 설치 https://goo.gl/BqjiSd

 

쿠바의 역사문화 답사 여행상품문의 및 예약

플래닛월드투어 070-7124-1400
http://www.planetworldtour.com/


목록
+ 한글명 + 비밀번호 글자가 잘 안보이시면 클릭하세요 옆의 글자를 입력해주세요.
상호명 : (주)플래닛월드투어   |   대표이사 : 한재철    |   사업자등록번호 : 104-86-46393   |   통신판매업신고 : 제2020-서울종로-1783호   |   관광사업등록증 : 제2020-000042호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인사동5길 25, 하나로빌딩 808호-810호 (인사동)   |   Tel 070-7124-1400   |   Fax 02-6919-2445
개인정보보호관리책임자 : 한재철  (touralbum@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