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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지역]  사경득답 추천 여행지- 고양시 서오릉 이야기 순창원- 순회세자와 공회빈 윤씨
작성자 : 한재철  작성일 : 2023-02-08  조회 : 1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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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 국민들의 해외여행객 숫자는 인구대비로 전세계 최고 수준이다. 이제 우리나라 국민들은 한때 세계2위 경제대국으로 불리던 일본인들 보다 더 자주 해외여행하는 국민들이 되었다. 여행객 취향도 해외여행 초창기 단순히 산수풍경을 보고 즐기는 여행에서 여행선진국들 처럼 새로운 지식을 추구 하거나 확인하는 한 나라의 역사나 문화를 깊게 보는 여행문화가 확대되고 있다.

     

    여행업 현장에서 보는 여행객들이 답답하게 느끼는 부분은 장년층 여행객들이 주입식 교육과정에서 배운 역사문화 지식이 너무 단편적이라 스스로 방문지에 대한 역사문화 지식을 추가로 습득하고 가지 않으면 지출하는 비용대비 여행 만족도가 부족하다. 요즘 세계 여러 국가들은 대한민국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드라마나 영상을 통한 한류문화 뿐만 아니라 역사와 경제등 다양한 분야를 깊게 연구하고 직접 방문하는 여행객이 증가하고 있다.

     

    우리 스스로도 대한민국 탄생하기전 500년 역사를 간직한 조선왕조 시대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다. 다행히 선조들이 전세계 최고의 기록문화를 발전시켜온 덕분에 많은 정보들을 찾아 볼 수 있다. 국가의 가장 중요한 의무와 역할은 국가의 지식을 총체적으로 발전시키고 후대에 전하는 것이다.

     

    임진왜란은 우리민족역사에 큰 상처를 남겼으며 또 올바른 평가와 학습을 게을리해 한반도는 다시 한번 더 장시간 일본제국주의 식민지 기간을 격어야 했다.


     

    명종 원자 순회세자와 공회빈 윤씨의 합장릉 순창원(順昌園)은 남편을 잃고 슬픔속에 평생을 살다 왜란속에 시신도 찾지 못하고 만들었던 신주까지도 병자호란 과정에서 다시 사라진 기구한 여인의 이야기가 묻혀 있는 곳이다.

     

    왕족들의 무덤은 묻히는 사람의 신분에 따라 능, 원, 묘로 구분한다. 능(陵)은 왕(王)과 왕비(妃)의 무덤을 말하며, 원(園)은 왕세자와 왕세자비 또는 왕의 사친(私親-왕 왕비 친부모)의 무덤을 말한다. 그 외 왕족의 무덤은 일반인과 같이 묘(墓)라 부른다.

     

    1592년 5월 23일(선조 25년 음력 4월 13일) 부산포에 상륙한 왜군은 파죽지세로 북진해오자 조정은 보름 만에 4월 30일 선조는 궁궐을 버리고 버리고 개성으로 피난한다. 순회세자가 갑자기 죽자 명종의 양자로 임금에 오른 선조는 평생 홀로 살며 순회세자를 축원하던 공회빈 윤씨를 측은하게 여겨 왜란 한달전 음력 3월 3일 사망하자 순회원(順懷園)에 장사지낼 준비를 하였으나 왜란이 발생하고 갑자기 궁궐을 버리고 떠나는 과정에서 궁궐 후원 이양원에 가매장 하도록 하였으나 모셔 놓은 관이 너무 무거워 소수궁인들이 옮길 수 없는 상태에서 궁궐에 갑자기 화재가 발생해 시신이 소실되었다. 당시 궁인들의 이야기가 신록에 나온다. “빈이 살았을 적에 불교를 숭상하였는데, 우연히 화장(火葬)하게 되었으니 그것도 생전의 뜻에 부합된다.”  "嬪生時, 崇尙釋典, 邂逅火葬, 亦合先旨"

     

     

    선조 36년 3월 22일 1603년 비로소 순회 세자(順懷世子)와 공회빈(恭懷嬪) 윤씨(尹氏)의 신주(神主)를 만들었다.

     

    명종 원자 순회세자와 공회빈 윤씨의 합장 순회원(順懷園)은 고종 7년 1870년 부터 순창원 (順昌園)으로 고처 부르기 시작했다.



     

    명종과 인순왕후 심씨(仁順王后 沈氏, 1532년 6월 27일 ~ 1575년 2월 12일)의 유일한 자식인 순회세자 이부(順懷世子 李暊, 1551년 5월 28일 ~ 1563년 9월 20일)는 1557년(명종 12년) 왕세자에 책봉되었다. 윤옥(尹玉)의 딸 공회빈 윤씨(恭懷嬪 尹氏, 1553년 6월 1일 ~ 1592년 3월 3일)는 1561년 8세에 간택되어 세자빈 덕빈(德嬪)에 책봉되어 가례를 올렸으나 둘다 어린데다 명종의 유일한 자식 순회세자가 갑자기 죽어 왕권을 물려 받을 직계자식이 없는 상태가 되자 중종의 여덟째 아들인 덕흥대원군(德興大院君) 이초(李岹)의 셋째 아들 하성군 이연(河城君 李昖, 1552년 11월 26일 ~ 1608년 3월 16일, 재위 : 1567년 음력 7월 3일 ~1608년 음력 2월 1일)을 입양해 명종의 뒤를 이어 받아 선조(宣祖) 임금이 되었다.

     

    선조의 재위기간 임진왜란등 여러 번의 국난과 옥사등 조선왕조역사에는 많은 사건들이 발생한다. 임진왜란시 선조가 한양을 버리고 신의주로 피난간 사건은 두고두고 역사적 평가를 받고 있는 사건이다. 당시 조정에 불만이 많은 백성들은 왜군에 협력하는 경우가 있었는데 선조는 백성들에게 왜군에 협력하지 말 것을 한글 교지로 발표하였다.



     

    선조국문유서(보물 제951호)- 최초의 한글공문서 김해한글박물관소장

     

    백성에게 이르는 글이다.

    임금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처음에 왜적에게 포로가 되어서 (왜적을) 이끌어 다니는 것은 너희의 본마음이 아니라 (도망쳐) 나오다가 왜적에게 붙들려 죽지 않을까 여기기도 하며 도리어 의심하되 왜적에게 들어가 있었던 것이니 나라에서 죽이지 않을까 두려워하기도 하여 이제 나오지 않는 것이다. 이제는 너희가 그런 의심을 먹지 말고 서로 권하여 다 나오면 너희에게 각별히 죄를 주지 않을 뿐 아니라 그 중에 왜적을 잡아 나오거나 왜적이 하는 일을 자세히 알아 나오거나 포로가 된 사람을 많이 데리고 나오거나 해서 어떠하든 공이 있으면 양천(良賤)을 막론하고 벼슬도 시킬 것이니 너희는 생심이나 전에 먹고 있던 마음을 먹지 말고 빨리 나오라. 이 뜻을 각처의 장수에게 다 알렸으니 생심이나 의심하지 말고 모두 나오라. 너희들이 설마 다 어버이나 처자가 없는 사람이겠느냐? 너희가 살던 데로 돌아와 예전처럼 살면 좋지 않겠느냐? 이제 곧 나오지 않으면 왜적에게 죽기도 할 것이고 나라에서 평정한 후에는 너희들인들 뉘우치지 않겠느냐? 하물며 명나라 군사가 황해도와 평안도에 가득히 있고 경상·전라도에도 가득하여 왜적들이 곧 급히 제 땅으로 건너가지 않으면 조만간 (조선군과 명군이) 합병하여 부산과 동래에 있는 왜적들을 다 칠 뿐 아니라 중국 배와 우리나라 배를 합하여 바로 왜국에 들어가 다 토벌할 것이니 그 때면 너희도 휩쓸려 죽을 것이니 너희들이 서로 (이런 이야기를) 전하여 그 전에 빨리 나오라.”

    만력 이십일련 구월 일

     


     


     

    공회빈 윤씨의 순회원(順懷園)에 장사지낼 준비중 궁궐에 발생한 화재는 당시 엄격한 신분제도속 처우에 불만이 많았던 노비들이 왜란으로 임금이 궁궐까지 버리고 떠나자 노비문서관리를 담당하는 관청에 불을 지르면서 시작되었다.

     

    훌륭한 지도자의 자질은 하루 아침에 만들어 지는 것이 아니다.  조선왕조시대 대를 이를 세자를 책봉하고 왕으로 키우기 위한 다양한 교육을 통해 국정을 운영하는 지식을 습득하게 하는 과정을 거처야 했다.

     

    사경득답 추천 여행서적- 나는 선비로소이다. 송익필 노비소송으로 보는 조선의 법과 정치

    https://blog.naver.com/touralbum/222621874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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