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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일본여행 정보- 도쿠시마 료젠지(霊山寺), 일본 불교 역사와 특징
작성자 : 한재철  작성일 : 2026-08-26  조회 : 166
  • 도구시마 료젠지(霊山寺)는 제45대 쇼무 천황(聖武天皇, 701년 ~ 756년)의 칙령에 의해 백제계 도래인 후손 고승 교키(行基, ぎょうき 668년 ~ 749년)가  729년~749년 창건한 것으로 전해지고 일본 불교 진언종(真言宗)의 창시자 고보 대사(弘法大師) 구카이( 空海, くうかい 774년 ~ 835년)가 이곳을 찾으며 815년 료젠지(霊山寺) 명칭을 얻었다. 

     


     


     

    오헨로(お遍路, おへんろ)의 제1번 후다쇼(札所, ふだしょ)이자 시코쿠 88개 사찰 순례 여정의 첫 출발점이다. 오헨로는 대사가 대중들이 액운을 물리치는 88 성지를 지정하며 순례하며 유래 하였고 일본 전통 민간 신앙에서 남자의 액년인 42세, 여자의 액년인 33세, 그리고 아동의 액년인 13세를 모두 더하면 88과도 연관이 있다.

     


     


     


     

    입구 연못 옆 전각에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통 새까만 전신 칠흑(漆黒)색의 홍법대사 상이 모셔져 있어 순례객들은 "홍법대사님, 오늘부터 순례를 무사히 시작하겠으니 동행해 주십시오(どうぎょうににん, 同行二人)” 기도를 올리고 떠난다. 연못은 '보석으로 가득 차 있고 아름다운 새와 물고기가 노니는 극락정토(極楽浄土)' '깨달음의 다리' 육도(여섯 세계)의 모든 중생을 구제하려는 지장보살의 자비 정원이다.

     


     

    경내 아름다운 원형 다보탑(多宝塔)은 외형이 2층 구조로 보이나 통층 구조의 1층 목조건축물이다. 탑속에는 5개 밀교 불상이 안치되어 있고 무로마치(室町, むろまち1394년 ~ 1428년) 연간 조성되었다. 핵심 구조재에 기둥, 보, 탑의 중심을 잡아주는 심주(心柱)등 하중을 견뎌야 하는 곳에 편백나무 히노키(檜/桧,ひのき), 건물 외부의 화려한 공포나 문틀, 내부의 단단한 지지대가 필요한 부분에는 내구성이 높고 나이테 문양이 아름다운 느티나무 케야키(欅, けやき), 지붕을 받치는 서까래나 내부 천장 마감, 보이지 않는 구조적 보강재에는 가볍고 곧게 뻗는 소나무 마츠(松, まつ) 및 삼나무 스기(杉, すぎ)가 이용 되었다.

     


     

    전설에는 당나라 유학을 마친 홍법대사 구카이 (弘法大師 空海)가 806년 귀국길에 "내가 스승에게 온전히 물려받은 진언밀교의 가르침을 일본 땅 어디에 전파해야 가장 번창할 수 있을까?"는 기원을 하며 중국 닝보항구에서 삼코쇼(三鈷杵)를 동쪽으로 던졌고 진언밀교의 총본산인 와카야마현의 고야산(高野山) 삼엽송에서 816년 발견했다고 한다. 삼엽송 고엔무스비 삼코노마츠(縁結び 三鈷の松) '지혜(智慧), 자비(慈悲), 진심(真心)'를 의미한다.

     


     

    한반도에 삼국시기 불교가 전래되며 국가 체계가 성립했듯 일본도 중앙집권적 국가체계가 형성되어 현재 까지 이어오고 있다. 이 시기 불교는 백제를 통해 일본에 전래되고 고구려 승려 혜자를 통해 불교의 체계가 확립된다. 당시 일본 불교의 기틀을 다지고 고대 중앙집권 국가의 정체성을 형성한 핵심 인물이 바로 우리가 교과서에서 배운 쇼토쿠태자(聖徳太子, 574~622)이다. 당시 태자는 섭정으로서 30년 가까이 정치를 펼쳤으나 천황에는 오르지 못했으며 황실내 지위와 정치적 위치는 복잡한 권력구조 속에 있었다. 

     


     

    제 29대 긴메이천황+이시히메 황녀= 제 30대 비다쓰천황        
               긴메이천황+소가노 기타시히메= 제 31대 요메이천황
               긴메이천황+소가노 오아네노키미=제 32대 스슌천황          
               긴메이천황+소가노 오아네노키미=아나호베노하시히토 황녀
               긴메이천황+소가노 기타시히메= 제 33대 스이코천황 황녀

    제 30대 비다쓰천황+스이코 황녀=오시사카노히코히토노오에 황자
    제 31대 요메이천황+아나호베노하시히토 황녀= 쇼토쿠태자
    제 32대 스슌천황
    제
    제 33대 스이코천황 

    『일본서기』 기준으로 보면 쇼토쿠태자는 두자매 사이의 후손으로 긴메이천황의 손자이자 외손자인 복잡한 관계이다. 일본은 현재도 4촌까지는 결혼이 합법적이다,

    『일본서기』 권22 제33대 스이코 천황(推古天皇) 원년(593) 4월조에 나오는 쇼토쿠태자(厩戸豊聰耳皇子)가 황태자가 된 뒤 「且習內敎於高麗僧慧慈、學外典於博士覺哿、並悉達矣。」는 “고구려 승려 혜자에게 내교(內敎-삼장(경·율·론)과 불경)를 배우고, 박사 각가에게 외전(外典-유교·도가)을 배워 모두 통달하였다” 스이코 천황 3년(595) 5월 「高麗僧惠慈歸化。則皇太子師之。」 “고려 승려 혜자가 귀화하였다. 이에 황태자가 그를 스승으로 삼았다.” 당시 「高麗」는 고구려를 말한다.

     


     

    혜자(慧慈)스님은 588년 파견된 백제 승려 혜총(惠聰)와 일본 최초사찰 법흥사 완공후 약 20년 동안 머문 뒤 615년경 고구려로 돌아갔으며, 쇼토쿠태자가 622년에 사망하자 이를 크게 슬퍼하고 이듬해인 623년 2월 22일 입적했다. 쇼토쿠태자는 일본 고대 아스카 시대를 이끈 정치가로, 한반도 선진 문물을 적극 수용하여 입니다.

     

    일본 불교는 한반도·중국과 달리 대승불교, 소승(계율), 도교(신선) 사상 그리고 일본 고유의 신앙(신도)이 융합 또는 분리되며 세계에서 유례없는 독특한 성격을 가지고 있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전래 초기 100% 대승불교 중심에서 소승, 도교사상, 신도사상등 시대에 따라 융합되었다.

     

    헤이안 시대(平安時代, 794년 ~ 1185년) : 진언종, 천태종 신비주의적 의식, 기도, 현세의 복을 기원함 역사적인 전통과 문화재 사찰이 많음 왕실·귀족 중심, 호국 불교, 주술 의식 비로자나불을 절대적인 본존, 부패를 피해 승려들이 산으로 들어가면서 도교적 산악 신앙과 결합했고, 신비주의적인 밀교(진언종·천태종)가 주류가 되었다.

     






    가마쿠라 시대 (鎌倉時代, 1185년 ~ 1333년): 잦은 전쟁과 재해로 "말세가 왔다"는 공포가 퍼지자, 귀족 중심의 어려운 불교 대신 당장 구원을 약속하는 쉬운 전쟁을 감당하는 사무라이 중심, 좌선 명상 선종 계열 민중 대승불교가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 염불 중심 (정토종): "나무아미타불"만 외우면 극락에 간다.

    * 창제 중심 (일련종): "나무묘법연화경" 제목만 외우면 구원받는다.

    * 좌선 중심 (조동종·임제종): 오직 앉아서 참선만 한다(지관타좌).

     

    에도 시대 (江戸時代, 1603년 ~ 1867년): 도쿠가와 막부는 기독교를 금지와 백성들 관리를 위해 모든 백성이 의무적으로 지역 사찰에 등록하게 하는 호적 종문인별개창(宗門人別改帳) , 통행증 및 신분증 발급 사청장(寺請状) '단가제도(檀家制度, だんかせいど)'를 실시 장례식과 제사를 독점하며 안정적인 수입을 얻는 '행정 기관'이 되었다. (현대 일본의 '장례 불교' 문화의 원인) 

     

    메이지 시대 (明治時代, 1868년 ~ 1912년): 메이지 군국주의 정부는 천황을 신격화하기 위해 불교와 신도를 강제로 분리(신불분리)하고 불교를 탄압했다. 법령으로 승려의 육식과 결혼을 허용(혹은 강제)하면서 현재의 세습 불교 형태가 고착되었다. 

     

    종전후 일본은 연합군 최고사령부(GHQ/SCAP General Headquarters, Supreme Commander for the Allied Powers)의 더글러스 맥아더(Douglas MacArthur, 1880년 ~ 1964년)장군이 미국쇼군과 같은 위치로 일본을 통치 했다. 냉전의 시대 한국전쟁중 1951년 9월 연합국과 일본 사이에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이 체결되고 1952년 4월 28일 조약이 효력을 발휘하면서 일본은 주권을 회복했다. 맥아더는 청년시절 아버지의 부관으로 동경 미국대사관에 근무했으며 1905년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사령관 노기 마레스케(乃木 希典,1849년 12월 25일 ~ 1912년 9월 13일)의 러시아군 상대 항복식을 참관하고 깊은 감명을 받았다. 맥아더는 종전후 《일본국 헌법(평화헌법)》을 일본에 도입했으나 천황제는 유지하는 중요한 결정을 담당했다.

     

    일본에 관심 있는 세계인들의 필독서는 1946년에 나온 『국화와 칼, The Chrysanthemum and the Sword』 이라는 책이다. 이 책은 2차 대전 말기 미국 국무성(정부)이 전쟁중 일본군들이 보여준 독특한 행동방식과 일본인들의 문화적 특징을 연구해 종전후 일본통치의 효율성을 가지기 위해 여성 문화인류학자 루스 베네딕트(Ruth Benedict, 1887년 6월 5일 ~ 1948년 9월 17일)에 의뢰해 1944년부터 수용소에 격리되어 있던 수많은 일본계 미국인(니세이, 2세), 포로들의 심층 인터뷰 그들의 내면 심리와 행동 양식을 추출, 고전 문학, 역사 자료, 현대 소설뿐만 아니라 전시 선전 영화, 신문 기사 등을 샅샅이 분석하여 일본인들이 가지는 공통적인 가치관을 추적해 문화와 성격(Culture and Personality)을 파악해 정리한 책이다.

     

    1930년 일본에서 탄생한 신생 불교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 한국SGI(國際創價學會, Soka Gakkai International)문화회관은 현재 서울의 25개 모든 구, 우리나라의 주요도시들 마다 설치되어 있으며 화광신문, 법련이라는 매체를 발생한다.

     

    세계가 디지털로 바뀌어도 일본여행을 편하게 하려면 현금을 가지고 다녀야 하고 1엔짜리 거스름돈을 넣을 동전지갑도 가지고 가면 더 좋다. 일본을 아는 것은 쉽지 않다. 일본인 학자들도 스스로 “일본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결론을 못 내고 있다.

     


     


    일본인들은 왜 마음이 복잡 할 까?우리나라 말에 일이 엉뚱한 이유로 복잡해 지면 “족보가 꼬인다!”는 표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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