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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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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책의 작가 마담 드 스탈(Germaine de Staël, 1766년 ~ 1817년)의 어릴적 이름은 안 루이즈 제르멘 네케르(Anne-Louise-Germaine Necker)로 아버지는 프랑스 재무장관(Director-General of Finances)으로 귀족과 성직자(제1, 2신분)에게도 세금 부과를 추진하며 프랑스 제 3신분(평민)의 지지를 받던 자크 네케르 (Jacques Necker, 1732~1804)로 국왕 루이 16세가 1789년 7월 11일 파면하자 7월 14일 바스티유 감옥을 습격 프랑스혁명의 도화선이 되었던 인물이다.

그리고 어머니 수잔 쿠르쇼 (Suzanne Curchod, 1737~1794)는 《로마제국 쇠망사》를 저술한 영국의 역사학자 에드워드 기번(Edward Gibbon, 1737년 5월 8일 ~ 1794년 1월 16일)의 약혼녀 였으나 양가의 반대로 파혼되고 기번은 "나는 연인으로서는 탄식했고, 아들로서는 복종했다. (I sighed as a lover, I obeyed as a son) "는 변명을 남겼다고 한다. 어머니가 파리에서 운영하던 마담 네케르의 살롱 (Salon de Madame Necker)은 계몽주의 정치와 학문의 최고지식인들이 모여 토론하는 장소였으며 작가는 어린시절 부터 토론을 들으며 지식을 쌓았다.

나폴레옹으로 부터 1803년 프랑스에서 추방당한 후 본격적으로 아버지가 1784년 매입한스위스 제네바 레만호수 옆에 자리한 코페 성(Château de Coppet)에 나폴레옹의 군사독재 시기 프랑스 지식인들의 토론장소 살롱 드 코페(Salon de Coppet, 1792년 ~ 1803년, 1804년 ~ 1812년, 1812년 ~ 1814년, 1814년 ~ 1817년)를 운영했다. 군주제에서 현재 프랑스 공화국이 탄생하는 가장 중요한 순간에 그녀가 만든 공간은 시대를 만들어낸 지식인들의 피난처(쉘터)가 되었다. 소설속 남녀주인공들의 국적은 이탈라아와 영국이지만 작가는 프랑스 사람으로 삶도 소설속 주인공들과 다르게 프랑스식 자유로운 연애로 다양한 만남을 가지는 삶을 살았다. 그녀는 낳은 자식들의 교육을 담당했다.

첫 남편 그녀는 17세 때 정식으로 당시 스웨덴 파리 대사 연상 에릭 마그누스 스탈 폰 홀슈타인 남작 (Baron Erik Magnus Staël von Holstein, 1749년 10월 25일 ~ 1802년 5월 9일)과 1786년 1월 14일 정식 혼인 1797년에 정식으로 이혼 했으며 둘 사이는 두 딸이 있었으나 영아기 사망했다.
애인 샤를모리스 드 탈레랑페리고르(Charles-Maurice de Talleyrand-Périgord, 1754년 2월 2일 ~ 1838년 5월 17일)와 1788년대 후반에 만남을 시작 나폴레옹의 등장하며 정치적 배경으로 1789년 종료했다. 그러나 이후 정치적 관계 유지

애인 루이 마리 드 나르본-라라 (Louis Marie Jacques Amalric de Narbonne-Lara, 1755년 8월 23일 ~ 1813년 11월 17일)와 1780년대 후반 만남을 시작 영국망명 생활도 같이 하였으나 1794년 9월 종료했다. 둘사이에는 오귀스트 드 스탈(Auguste de Staël, 1790~1827), 알베르 드 스탈(Albert de Staël, 1792~1813) 아들이 태어 났다.
애인 벤자민 콘스탄트(Benjamin Constant, 1767년 10월 25일 ~ 1830년 12월 8일)와 1794년 9월 19일 만남을 시작 했으나 애인의 비밀결혼 문제로 1811년 종료했다. 딸 알베르틴 드 스탈(Albertine de Staël, 1797~1838)을 얻었으며 그녀 후손 루이 드 브로이(Louis de Broglie, 1892년 8월 15일 – 1987년 3월 19)는 양자이론의 공로 1927년 노벨상 받았다.
아우구스트 빌헬름 슐레겔(August Wilhelm von Schlegel, 1767년 9월 8일 ~ 1845년 5월 12일) 1804년부터 아이들 선생으로 만남을 시작1817년 사망시 까지 관계를 이어간 멘토멘티의 관계
2번째 남편 알베르 장 미셸 드 로카 (1788년 ~ 1818년 1월 31일) 22세 연하로 1811년 만남을 시작 1812년 4월 7일 아들 루이 알폰스 드 로카 (Louis Alphonse de Rocca, 1812~1838)을 낳았고 1816년 정식비밀결혼 사망시 까지 옆을 지켰다.

1권
코린나가 넬빌 경에게
1794년 12월 15일
제가 너무 자신감을 갖는다고 생각하실지. 혹은 이런 자신감을 가질 만하다고 생각해주실지 모르겠군요. 저는 어제 경께서 로마를 구경하신 적이 없으며 우리 미술의 걸작품도. 또 상상력과 감수성의 힘을 빌려 역사를 말해주는 고대 유적도 보신 적이 없다고 하는 말씀을 들었어요. 그래서 저는 감히 여러 세기를 거쳐 내려온 견학 코스를 안내해 드려야겠다는 마음을 먹게 되었어요.
물론 로마에는 높은 학식을 갖추고 있어 경께 훨씬 도움이 될 학자들도 쉽게 찾아보실 수 있으시겠죠. 그러나 제가 무조건적으로 사랑하는 이 도시를 경께서도 좋아하시게 할 수만 있다면. 저의 서툰 안내를 시작으로 하여 경 스스로도 로마를 공부하실 수 있을 거예요.
많은 외국인들이 런던이나 파리에 가는 것처럼 대도시의 향락을 찾아 로마로 오지요. 그러나 감히 고백하자면 로마는 지루하기 짝이 없어요.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말할 거예요. 그러나 로마에는 결코 고갈되지 않는 매력이 있는 것 또한 사실이에요. 경께서 그 매력을 맛보 시길 제가 감히 바랄 수 있을까요?
아마도 이곳에서는 세상의 정치적 관심 같은 것은 잊으셔야 할거 예요. 그러한 관심도 의무나 종교적 감정에 결부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면 곧 실망스러운 것이 되고 말 테니까요. 또 다른 나라에서 말하는 사교계의 즐거움도 체념하시지 않으면 안돼요. 대개 그러한 즐거움은 상상력을 고갈시키는 것이죠. 로마에서는 고독하면서도 동시에 즐거운 생활을 누릴 수 있는데. 이러한 생활은 우리에게 천부적으로 주어진 모든 것을 마음껏 계발시켜주는 것이에요. 거듭 말씀드리지만. 저의 조국에 대한 이러한 사랑을 용서하세요. 이 사랑 때문에 경과 같은 분께서도 저의 나라를 사랑해주시기를 바라는 것이니까요. 경께나 저에게나 모두 손해가 되지 않는. 이탈리아 여자가 드릴 만하다고 생각되는 호의를 영국식의 엄격함으로 판단하지 말아주세요.
코린나

"우리. 앞날의 계획 같은 것은 세우지 말아요.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은 우연이 가져다주는 은혜의 순간뿐이에요. 무덤에 둘러싸인 이곳에서 앞날을 믿을 수 있겠어요?'

“뭐니 뭐니 해도 여행은 이 세상에서 가장 슬픈 즐거움 중 하나이다.”
“저는 어느 곳이나 다 좋아합니다. 젊고 쾌활할 때에는 만사가 다 잘 풀리니까요. 제가 이런 철학을 갖게 된 것도 책이나 사색을 통해서가 아니라 세상 풍파와 불행을 겪어보고 나서죠 제가 우연을 믿는 이유를 이해하시겠지요 이렇게 경과 여행할 기회도 주어졌지 않습니까.”

2권
"우리들이 가진 능력을 성장시키지 않는 행복이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그것은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나를 죽이는 것이 아닌 가? 그리고 만약 나의 재주와 정신을 죽여야 한다면. 나를 헛되이 동요 시키는 비참한 나머지 인생을 살아서 무슨 소용인가?”
“의무란 사람이 갖고 있는 뛰어난 능력을 희생시키는 것이며. 재능이란 그것을 갖고 있지 않은 사람들과 똑같은 생활을 함으로써 보상해야 하는 잘못이라는 것이에요.”

“모든 여자들도 남자들과 마찬가지로 개성과 재능으로 길을 열어가야 하는 것 아닐까요? 진보도 변화도 없이 대대로 이어져 가는 꿀벌 무리의 본능을 따라야 할 필요가 있을까요?”

“그는 왜 그만이 비밀을 알고 있고 그에게만 마음을 고백한 여자를 행복하게 해주려고 하지 않았을까? 아! 닥치는 대로 사랑하는 여자들 과는 헤어져도 좋다. 그러나 사랑하는 사람을 홈모해야 직성이 풀리는 여자. 상상력이 충동질을 하여도 날카로운 판단력을 지니는 여자는 이 세상에 단 한 사람밖에 없다.”
“새로운 사상은 나이든 사람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들은 나이가 들기 시작하면서 세상이란 득을 보기는 커녕 잃는 장소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세계인들은 몇년전 발생한 코로나19팬데믹(COVID-19)으로 각국 국민들은 경제생활에 커다란 변화를 가저온 것을 실감한다. 많은 국가들 특히 개발도상국들은 더욱 어려운 경제환경속에 빠저있다. 각국가들이 국경을 단절하고 있는 동안 인터넷통신환경이 컴퓨터에서 급속하게 모발일통신(스마트폰)로 바뀌고 기술발전이 빠르게 일어 나며 세계 경제환경이 급속하게 바뀌었다. 반도체, IT통신, 바이오등 우리나라 주력 수출산업은 이러한 경제환경을 맞아 어느나라 보다도 급속하게 성장했다.

1866년 프랑스군은 한양의 입구 강화도에 상륙해 외규장각의 다양한 도서와 막대한 은괴를 약탈해 갔다. 더욱더 심각한 피해는 약탈해간 일부 도서와 별도로 방화로 수많은 귀중한 조선왕조의 귀중유한 서적과 문화재들이 불타 없어졌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를 보지만 바람에 어디서 오는지 생각해야 한다!.
군주제를 마감하고 시민혁명을 통해 국민이 주인 공화제 프랑스가 바뀌는 대변환시대 지식인의 역활이 현재 선진국 프랑스를 만들었다. 여행업에 종사하기 때문에 코로나19펙데믹 이후 급변한 세계를 직접 방문해 현장에서 변화를 지켜 보는 기회가 많다. 2026년 상반기 우리나라를 방문한 외국인 숫자는 1,071만명으로 지난해 대비 21.3%가 증가했고 이에 따른 국가인지도 상승과 호감도 증가는 우리나라 경제에 커다란 이득을 가져다 주고 있다. 대변환시대 우리나라가 국제사회에서 이러한 인기를 지켜가기 위해서는 여러나라 문화에 대한 존중과 이해 그리고 스스로 겸손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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