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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일본여행 정보- 도쿠시마 오아사히코 신사(大麻比古神社)와 독일교?
작성자 : 한재철  작성일 : 2026-09-08  조회 : 115
  • 도쿠시마 오아사히코 신사(大麻比古神社,おおあさひこじんじゃ)는 도쿠시마현의 옛날 지명 아와국(阿波国)의 주신을 모시는 총진수(総鎮守,そうちんじゅ) 신사로 역사적 문서인 신사에서 지내는 제사를 설명하는 연희식 (延喜式,えんぎしき)의 진묘초(神名帳,じんみょうちょう)에 국가 차원에서 제사를 지내야 할 신사 목록인 시키나이샤 (式内社, しきないしゃ)에 927년 등록되어 있어 천년이상의 역사를 간직한 역사가 깊은 신사이다. 이곳은 농업·산업·생활 특히 직물·양잠 수호신을 모신 신사이다.

     


     


     

    아와(阿波, あわ) 지역은 고대부터 마(麻, あさ)직물 생산이 유명한데 신화에 의하면 아마테라스오미카미(天照大御神, あまてらすおおみかみ)의 후손인 아마노히와시노미코토(天日鷲命, あめのひわしのみこと)가 이 지역을 개척했으며 후손들 아와 인베 우지(阿波忌部氏, あわいんべうじ)집안이 천황의 제사용품을 담당해 지금도 도쿠시마현에서 천황 즉위후 첫 제사 다이조사이(大嘗祭, だいじょうさい)에서 사용하는 신성한 마직물 아라타에(麁服, あらたえ)를 봉헌하는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 

     


     


     

    일본인들은 아이의 성장, 결혼, 새로운 사업, 시험 등을 다양한 이유로 일이 있을 때 신사를 찾는 경우가 많으며 사이센바코(賽銭箱, さいせんばこ)에 시주 하는데 좋은 인연을 뜻하는 고엔(ご縁, ごえん)과 발음이 같아 5엔(五円,ごえん), 고엔) 짜리 동전을 많이 넣는다. 본당 앞에서 두 번 깊게 절 → 두 번 박수 → 두 손을 모으고 기원 → 마지막으로 한 번 절 하는 니레이 니하쿠슈 이치레이(二礼二拍手一礼)를 한다. 

     


     

    우리나라의 민간신앙 처럼 신도(神道, しんとう)는 다양한 신을 모시는 일본 전통적 신앙·세계관이었으나 메이지 시대 (明治時代, 1868년 ~ 1912년) 군국주의 정부는 천황을 신격화하기 위해 불교와 신도를 강제 분리(신불분리)하고 불교를 탄압하며 국가신도(国家神道, こっかしんとう )를 구축했다. 패전후 연합국에 의해 강제적으로 해체 하였으나 “천황”은 국가의 상징으로 헌법에 존재하고 있다. 

     


     


     

    현재 일본 천황 나루히토(徳仁, なるひと 1960년 2월 23일 ~)는 아마테라스 오오미카미(あまてらすおおみかみ, 天照大御神)→니니기노 미코토(ににぎのみこと, 瓊瓊杵尊)→ 1대 진무 천황(じんむてんのう, 神武天皇 BC 711 ~ BC 585)의 후손으로 126대 천황이다.

    황실(皇室, こうしつ) 조상신을 모시는 사당으로 이세 신궁(伊勢神宮, いせじんぐう), 제1대 천황을 모시는 가시하라 신궁(橿原神宮, かしはらじんぐう), 메이지 신궁(明治神宮, めいじじんぐう)그리고 보신전쟁(戊辰戦争, ぼしんせんそう 1868년 ~ 1869년)등 메이지유신 과정중 사망한 전몰자를 기리는 사원으로 1869년 6월 29일 건축한 토쿄초혼사(東京招魂社, とうきょうしょうこんしゃ)에서 1879년 이름을 바꾼 야스쿠니 신사(靖国神社, やすくにじんじゃ)는 2차대전 패전후 전몰자도 합사해 우리나라와도 깊은 역사적 관련이 있는 곳이다.

     


     


     

    오아사히코 신사 뒷편 울창한 스기나무 계곡에는 1919년 유럽양식으로 건설한 석축 독일교/도이치하시(ドイツ橋, どいつばし)가 있다.

     


     

    이 다리는 1차 대전의 승전국으로 참전한 일본제국이 1914년 8월 23일 독일에 선전포고 하고 독일의 중국 조차지 칭다오(青島)를 공격  9월 18일경 라오산(嶗山) 방면에 상륙 전투에서 승리하며 1914년 11월 7일 독일군의 항복을 받은 뒤 약 4,700명의 독일·오스트리아-헝가리 측 포로를 일본으로 이송해 여러곳에 분산 수용했다 1917년 도쿠시마현 나루토시의 반도 포로수용소(板東俘虜収容所, ばんどうふりょしゅうようじょ)에 함께 수용했다. 다리는 당시 포로들이 1918년 11월 제1차 세계대전 종전후 귀국하기전 남겨 놓았다고 한다.

     


     


     

    이곳은 1918년 6월 1일 독일군 포로들에 의해 일본에서 최초로 베토벤의 교향곡 제9번 「합창」이 연주된 곳으로도 알려져 있다. 수용소는 1920년 4월 폐쇄했다.

     


     

    일본제국은 메이지유신후 불과 50년도 안되어 서양 강대국 독일을 상대로 전쟁을 통해 항복을 받아 낼 정도로 군사력을 증대시켰다. 

     


     

    100년전 보다 수십배 사회와 기술의 발전이 빠르게 변하는 지금 5년은 잛은 시간이 아니다!!!!! 

     


     


     

    青岛啤酒很好喝!!칭다오 피죠우 헌 하오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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