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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지역]  한국여행 추천여행지- 성동구 성수동 살곶이다리- 세상에 이런 풍경 없다!
작성자 : 한재철  작성일 : 2026-09-11  조회 : 129
  • 서울의 매력은 무엇일까?

     

    서울시의 공식 통계에 따르면 2025년 서울을 방문한 외국인 관광객은 약 1,893만 명으로 집계되었다. 유럽이나 미국등 장거리 여행자들이 눈에 띄게 증가중에 있다.

     


     

    600년의 수도 역사를 간직한 서울! 여행업자로 많은 유명관광지를 방문한 경험으로 자신있게 외국인 관광객에게 추천해 주고 싶은 풍경들이 많다. 그동안 여행업자로 세계유명 관광지를 방문한 경험에 비추어 보면 유럽이나 미국등 선진국 관광객들에게 서울이 다른 도시들 보다 매력적인 부분은 아마도 24시간 안전한 치안 그리고 교통, 통신등 효율적으로 운영되는 사회기반 시설 마지막으로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폐허위에 만들어진 과거와 현재 첨단 도시의 공존에 있다고 보여진다. 

     


     

    현재 서울을 제대로 즐기려면 태조 이성계가 조선왕조를 개국하고 급변하던 정치적 상황을 극복하고 국가를 안정화시킨 세종대왕이 등장하는 초기 역사를 살펴 봐야 한다.

     

    태조(太祖, 이성계 李成桂 1335년 10월 11일 ~1408년 5월 24일) 한양으로 천도(1394년)
    재위 1392년 7월 17일 ~ 1398년 9월 5일 
    선위후 거처 덕수궁(德壽宮) 및 함흥본궁(咸興本宮)

    능침 건원릉(健元陵)위치: 경기도 구리시 동구릉로 351 (인창동) 동구릉 내

     


     

    정종(定宗, 이방과 李芳果 1357년 7월 18일 ~ 1419년 9월 26일) 개성으로 환도(1399년)
    재위 1398년 9월 5일~ 1400년 11월 13일

    선위후 거처 인덕궁(仁德宮)
    능침 후릉(厚陵)위치: 북한 황해북도 개풍군興敎面) 흥교리 




    태종(太宗, 이벙원 李芳遠 1367년 5월 16일 ~ 1422년 5월 10일) 한양으로 재환도(1405년) 
    재위 1400년 11월 13일 ~ 1418년 8월 10일
    선위후 거처 창덕궁(昌德宮) 및 연희궁(衍禧宮)

     

    능침 헌릉(獻陵)위치: 서울시 서초구 헌인릉길 42 (내곡동) 헌릉과 인릉 내

     

    세종(世宗, 이도 李裪 1397년 4월 10일 ~1450년 2월 17일)
    재위 1418년 8월 10일 ~ 1450년 2월 17일

     


     

    성동구 성수동 살곶이 다리는 조선왕조 초기의 이야기가 전해지는 국가유산이다. 다리가 있는 곳의 옛지명은 한자로 전곶평(箭串坪) 살곶이 벌(들판)으로 조선시대 활쏘기 군사훈련장에서 유래 하고 돌다리 이름은 전곶교(箭串橋)였으나 2011년 지금의 한글 공식이름으로 바뀌었다. 


    아버지 이성계의 아들중 유일하게 과거급제 했던 태종 이방원(신의왕후 5남)은 25살 나이로 위화도 회군(1388년)시 개성의 가족 구출, 정몽주 제거(1392년)하는 등 조선 개국시 핵심적 역활을 했으나 왕권에서는 후순위에 밀려나자 제1차 왕자의 난(1398년)을 일으켜 신덕왕후 아들들 방번, 방석(세자책봉)을 제거 하자 태조 이성계는 정종(신의왕후 2남)에게 1398년 9월 5일 왕위를 물려주었고 정종의 개성 환도후 함께 거처를 옮겼다. 1400년 1월 네째 친형 방간(신의왕후 4남)이 제2차 왕자의 난을 일으키자 선제공격으로 진압 했다.

     




    1400년 11월 13일 정종이 태종 이방원이 왕위를 넘겨 받고 한양으로 재천도후 이성계는 한양을 떠나 고향 함흥으로 거처를 옮겨 함흥차사(咸興差使 1401년 ~ 1402년) 약 2년을 보냈다. 태종이 아버지가 후원한 두번째 부인 신덕왕후 강씨의 친척 조사의의 난(1402년 11월)을 완전히 진압하자 한양으로 돌아왔다. 

     

     

    전해저 오는 이야기는 태종이 함흥에서 돌아 오는 아버지를 맞이 하기 위해 평야에 천막을 쳤으며 이를 본 태조 이성계는 여전히 분이 풀리지 않아 태종을 향해 활을 쏘았으나 태종이 천막 기둥 뒤로 몸을 피해 화살이 기둥에 꽂히며 피하자 태종을 왕으로 인정 했다고 한다. 당시 태종의 핵심참모 하륜(河崙, 1348년 ~ 1416년)은 만약을 대비 "천막의 중앙 기둥을 아주 굵은 나무로 세우라"는 조언을 했다고 한다.


     

    살곶이 다리는 왕위를 물려 받고 삼촌 정종과 아버지 태종이 자주 이곳을 통해 한양을 벗어나자세종 2년(1420년 5월)에 건설을 시작했으나 태종이 죽고 완성되지 못하다 왕래가 많은 백성들 때문에 다시 만들 필요성이 제기되어 성종 6년(1475년)에 다시 공사를 시작하여 성종 14년(1483년)에 완성했다. 백성들이 평평한 평지를 걷는 것과 같다하여 ‘제반교(濟盤橋)’라고도 불렀었다.

     


     

    다리 석재는 투박하게 다듬은 우리나라의 단단한 화강암으로 조선 전기에 만들어진 다리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큰 다리로 세줄로 상판을 하고 모두 64개의 돌기둥을 설치하여 문헌상 길이 258척(75.75m ~ 78m) 폭 20척(6m) 이었으나 현재 석교는 약 62.9m 남아 있다. 돌기둥의 모양은 흐르는 물의 저항을 줄이기 위해 마름모형으로 고안되었다. 1920년대 집중호우로 다리의 일부가 떠내려 가서 70년대에 다시 고쳐 지었으나, 다리의 오른쪽 부분은 콘크리트로어 복원함으로써 원래의 모습을 잃어 아쉽다. 국민들 세금 빼먹지 말고 원형으로 복원되면 더욱 훌륭한 관광자원이 될 것이다.

     

    석양무렵 수많은 백성들의 발걸음을 받치며 달아 맨들맨들한 맑은 강물이 흐르는 다리위서 바라보는 600년 서울의 풍경이 아름답다!

     

    서울의 가장 중요한 매력은 역사의 공존이다!!!

     


     

    플래닛월드투어는 다양한 단체들에게 역사적 주제을 발굴하여 「역사를 통해 미래의 답을 얻는다」는 「사경득답(史耕得答)」 역사테마 맞춤여행을 지속적으로 개발하여 제공하고 있다. 역사여행을 통하여 여행자에게 단순한 소비의 순간이 아닌  여행 → 현장 경험 → 역사·문화 이해 → 통찰 → 미래준비 하는 과정을 가지는 시간을 제공하는 것이 목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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