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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산동성 공자의 고향 곡부(취푸曲阜)의 공부(쿵푸孔府)
작성자 : 한재철  작성일 : 2010-02-12  조회 : 2163
  • 공자는 위대한 스승으로 중국인들의 가슴속에 살아 숨쉬고 있다. 그것은 공자 생애 기간 많은 제자들을 길러 낸 위대한 교육자였고 또 사후에 공자의 제자들이 중국의 각지에서 공자의 사상을 교육하여 약육강식 전쟁의 시대에도 굳건히 사람을 사랑하는 인(仁)을 행하도록 중국인들을 교화 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중국을 통일후 강력한 법치국가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한 진나라가 단명한 후 혼란에 휩싸인 중국을 다시 통일한 한 고조 유방은 이러한 중국사회를 통합하는데 공자의 유교사상을 국가의 기본 통치이념으로 도입하여 한나라의 기틀을 다지게 된다. 기원전 195년 한 고조 유방은 공자의 9대 자손을 봉사군(奉祀君)으로 봉한 이후로 역대 황제들은 물질적 또 사회적인 지위를 높여 공자 가문을 지속적으로 지원한다 이러한 역대 황제의 도움으로 공자 가문은 공부 지역에서 가장큰 농토를 소유한 가문이 되었다. 특히 1055년(지화 2년) 송나라 시대에 공자의 46대 자손을 연성공(衍聖公)으로 봉하고 명나리 시대에는 공자가족의 거주지역을 연성공부(衍聖公府)하여 대대로 그 지위를 물려 받게 하였다. 부(府)는 하나의 행정단위로 “판관 포청천” 연속극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송나라시대 포청천(包靑天, 999~1062) 이라는 인물이 바로 개봉부(開封府)의 지부(知府-장관)이었을 때 이야기 이다. 옛날 중국의 행정조식 단위는 성(省)밑에 부(府)가 있고, 부는 다시 주(州) •현(縣) •청(廳)으로 조직되었다. 봉호(封号)가 날로 높아져 드디어 1307년에 원나라 성종은 공자에게 대성지성문선왕(大成至聖文宣王)이란 시호를 내려 왕의 지위에 까지 이른다. 역대 황제의 이러한 공자 우대는 아마도 황제 자신이 공자의 가르침을 따라 “백성을 사랑”하는 정치를 한다는 것과 황제의 올바른 정치로 태평한시대를 감사 하려는 데에도 그 이유가 있을듯하다.
      

    산동성 곡부의 공부는 바로 공자와 공자가문의 장손이 살아온 곳으로 12,470㎢의 면적에 152 채의 건물 480개의 객방으로 구성되어 있다. 공자를 제사 지내는 공묘 동쪽에 있다. 건물은 화려 하지 않지만 명.청 시대에는 황제의 궁궐 다음으로 큰 저택 이었고 여러 번의 소실과 증측을 거처 현재의 모습이 되었다. 이 저택에는 1937년까지 공자의 후손들이 거주하고 있었지만 공자 장손 본가가 대만으로 피난을 가서 지금은 정부에서 관리중이다. 공부에 들어가 집의 구석구석을 다니다 보면 수수한 건물의 뒷 골목길을 돌며 공자가 거닐고 있던 모습을 상상해 보는 것도 즐겁다.
      
      

      
    전세계가 정치적으로 혼란스럽다. 특히 민족의 정체성과 주체성을 지키기 위한 테러가 여기저기에서 일어 나고 있으며 전쟁이 끊임 없이 일어 나고 있다. 시대의 상황이 꼭 약육강식 전쟁이 끊이 없던 춘추전국시대 처럼 혼란 스러운 요즘 중국정부에서는 공자를 대대적으로 알리는 작업을 하고 있다. 혼란한 시대에 “사람사랑”을 널리 알리기 위해 노력한 위대한 스승인 공자의 가르침이 다시 지구에 평화를 가져 올수 있을지 모르겠다.

    깊게 보는 중국여행 플래닛차이나투어 http://www.planetchinatou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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