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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이자성의 농민반란 그리고 오삼계(吳三桂) 애첩 진원원(陳圓圓) 사랑
작성자 : 한재철  작성일 : 2010-03-22  조회 : 5127
  • 명나라 멸망시대 당시 산하이관(山海關)을 지키던 오삼계(吳三桂, 1612~1678.10.2)는 여진족의 남하를 지속적으로 잘 막고 있었으나 황제가 죽은뒤 북쪽의 여진족과 이자성이 북경을 점령하는 상황에서 이자성이 오삼계의 아버지 오양(吳襄)과 가족들을 붙잡고 이자성 휘하의 장수 유종민이 오삼계가 북경에 남겨두었던 천하의 미인 애첩 진원원(陳圓圓)을 취하자 산해관을 열고 여진족을과 함께 이자성을 토벌하여 후금이 명나라를 점령하는 길잡이를 하게 된다. 이러한 공로로 오삼계는 1657년 평서대장군이 되며 망한 명나라 신하들이 세운 남명 정권의 계왕(桂王:永曆帝)을 추격하여 1659년 윈난성(雲南城)을 점령하였고 1662년 계왕을 미안마까지 가서 잡은 공로로 평서친왕(平西親王)으로 봉해진다. 오삼계는 윈난 •구이저우(貴州)의 총관으로서 광둥(廣東)의 상가희(尙可喜), 푸저우(福州)의 경중명(耿仲明)과 함께 삼번(三藩)이라 하여 대단한 권세와 재부를 누리다 청나라에 반기를 들고 1678년 5월 스스로 황제가 되었으나 5개월만에 사망한다..

    명나라가 멸망하고 청나라가 등장하는 시기에 다양한 역사적인 이야기가 많이 있는 가운데 오삼계와 애첩의 이야기가 전해저 오는 곳이 운남성의 곤명이다.가난한 노점상의 딸로 태어나 7살에 은전 2냥에 기방 기녀로 팔렸다고 하는 진원원(陳圓圓 1624~1681)의 이야기다. 숭정제의 총애를 받고 있던 전비(田妃)는 황제의 환심을 사기위해 외척들을 통해 전국의 미녀들은 궁중으로 조달하였는데 이미 12세에 춤,악기,노래,기예에 뛰어나고 똑똑하고 외모가 뛰어나 전국적으로 소문나 있던 진원원도 발탁되어 궁중으로 들어와 황제를 모실 기회가 있었으나 너무 색이 강해 황제의 옥체에 좋지 않다는 어의들의 말에 의해 당시 변방에서 청나라의 침략을 방어하던 진저(錦州) 총병관 오삼계의 아버지 오양(吳襄)에게 하사되었으나 자신은 이미 늙고 아들이 맘에 있어해 아들 오삼계에게 양보 하여 오삼계의 애첩이 되었다고 한다. 당시의 이야기는 일대명기 진원원`(一代名妓 陳圓圓),강산풍우정(江山風雨情)이라는 중국 TV 드라마의 소재로도 나왔다.


       
    곤명에는 오삼계가 곤명으로 들어 올 때 통과하였던 패루(牌樓) 금마문과 봉명산(鳴鳳山)에는 오삼계가 출가한 진원원을 위하여 10년에 걸처 운남성의 특산물이 동 250톤을 들여 1671년 세워다고 하는 높이 6.7 폭 6.2 도교사원 금전(金殿, 진디엔)이 남아 있다. 금전에 모셔저 있는 진무대제(眞武大帝) 동상 얼굴은 오삼계 자신의 모습에를 본따서 만들었다고 한다.
    중국을 여행하다 보면 여기저기서 옛날 사람들의 사랑 이야기를 만난다. 중국 역사의 ?대 미인이니 하면서 미화되는 미인들의 사랑 이야기와 측천무후나 서태후 처럼 중국을 통치하였던 여성들의 이야기를 만나면 중국에서 여성의 역할이 참 묘한 부분이 많이 있다는 것을 느낀다. 어느 순간에는 여성이 남성들의 소유물 처럼 취급 되었으나 어느순간 여성은 자신의 지위를 적절하게 잘 활용하여 중국 이라는 거대한 제국을 한 손아귀에 놓고 군림한 여성의 이야기 까지,,,,

    깊게 보는 중국여행 플래닛차이나투어 http://www.planetchinatou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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