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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지역]  동양 최대의 시장 칸 엘 칼릴리
작성자 : 이병희  작성일 : 2006-10-27  조회 : 770
  • 카이로에 도착한 관광객들은 관광지에서 파는 조악한 관광상품을 보면 실소를 금치 못하게 된다. 멀리 지구 반바퀴를 날아 이집트까지 왔으니, 이왕이면 다양한 상품을 보고 이집트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기념품을 고르고 싶은 것은 당연한 소비자의 심리일 것이다. 솟구치는 소비 욕구를 다스릴 길이 없다면 반나절 시간을 들여 예전부터 시장으로 유명한 칸 엘 칼릴리를 방문해보자.
    칸 엘 칼릴리에서 구할 수 없는 물건은 없다.라는 말이 유행할 정도로 이 시장은 다양한 상품이 존재한다. 사람과 상품이 넘쳐나는 이 시장에서 상인이 부르는 값을 그대로 치르면 바보라는 소리를 들을 것이다. 가격 흥정은 이 시장의 당연한 문화이고, 그렇기 때문에 상인들은 처음부터 높은 가격을 부를 수 밖에 없다. 이런 상황이니 이집트를 처음 방문한 외국인이 물건에 관심을 보이면 물건의 값은 몇배로 뛰게 된다. 맘에 드는 물건을 사기 위해 30분을 흥정한 적도 있다. 결국 칸 엘 칼릴리는 인내심이 많거나 과감히 포기하고 다른 가게로 옮겨갈 수 있는 사람이 승리자가 될 확률이 높다. 흥정에 자신이 없는 사람은 흥정의 대가를 필히 대동하도록 하자.
    칸 엘 칼릴리는 한 때 동양 최고의 시장이라는 호평을 받을 정도로 큰 규모와 다양한 상품이 넘치는 유서깊은 시장이다. 파티마 왕조 당시, 가우하르 장군에 의해 건설된 새로운 성곽 도시 카이로는 기존의 도시 푸스타트와 일상적인 교류를 하기에는 거리가 멀었다. 자연스럽게 성곽 안으로 왕궁, 관청, 상점, 도서관, 일반 주민들이 사는 주거지역이 하나둘 자리를 잡기 시작해 자립적인 도시로 성장했다.
    칼릴리 왕자의 칸(여관)이라는 뜻의 칸 엘 칼릴리는 그 이름대로 술탄 엘자히르 엘바르쿠크로의 밑에서 요직을 맡아 관리직을 수행했던 칼릴리 왕자가 건설한 여관이었다. 당시의 역사가가 남긴 기록에 의하면 칸 엘 칼릴리는 3층 규모의 높고 견고한 구조의 건물이었으며 칼릴리 왕자가 건설한 여관 답게 마치 왕궁처럼 잘꾸며져 있었다고 한다. 부유한 페르시아 상인들이 주로 이용했다고 전해지는 칸 엘 칼릴리는 단순한 여관의 기능을 떠나 큰 규모의 건물을 적극 활용하였다. 건물의 안뜰은 상인들의 마굿간으로 활용되었고, 1층에서는 상인들이 물건을 팔 수 있도록 창고겸 가판대가 마련되어 있었으며, 위층은 상인들이 숙박할 수 있는 방이 제공되었다. 이를 테면 지금의 비즈니스 호텔같은 서비스를 제공했던 셈이다. 무역을 이끌어 가는 대상(隊商)들의 휴식처와 무역로의 중간 역참 기능을 담당했던 여관 중의 하나인 칸 엘 칼릴리를 기점으로 자연스럽게 시장이 형성되어 갔고, 중요 여관의 이름이 그대로 지역의 명칭으로 굳어져 버린 것이었다. 시장의 기능을 담당하며 카이로의 한 지역으로 발달한 칸 엘 칼릴리는 수세기 동안 카이로의 상업과 대외 무역의 중심지 역할을 해왔다.
    중세 아랍의 유명한 역사가로 알려져 있는 마크리지의 기록에 의하면 당시의 칸 엘 칼릴리 지역에 만여개를 훨씬 넘는 상점과 칸이 빼곡히 늘어서 있었다고 한다. 시장의 좁은 골목과 골목마다 물건을 파는 상인들과 사러 온 고객들, 두 계층을 상대로 식음료를 파는 사람들과 물건을 나르는 낙타들로 인해 언제나 혼잡을 이루는 활기찬 지역이었다. 시리아와 페르시아 뿐만 아니라 멀리 수단과 유럽에서 온 상인들도 종종 있었다고 전해진다. 동서 육상의 무역의 중심지로서 동양 최대의 시장의 명성을 누렸던 칸 엘 칼릴리와 카이로 시의 지위는 한 모험가에 의해 유럽에서 극동에 도달하는 무역항로가 개척되면서 서서히 쇠퇴하기 시작했다. 1498년경 모험가 바스코 다 가마가 발견한 이 항로는 아프리카의 희망봉을 돌아 극동에 이르는 항로로써 비록 대륙을 돌아 거슬러 올라가는 긴 항로였지만 대규모의 무역물품을 안전하게 배로 한번에 실어 나를 수 있게 되었기에 육상 거점인 카이로는 위축이 될 수 밖에 없었다.
    15세기에 들어 마물루크 왕조의 술탄 구리는 칸 엘 칼릴리의 가치를 잘 알고 있었다. 이 지역의 상업 활동을 장려하고 과거의 명성을 되찾기 위해 칼릴리 왕자가 건설했던 칸을 부수고 훨씬 더 큰 규모의 칸을 건설하게 하였다. 술탄 구리가 지은 칸은 여전히 칸 엘 칼릴리로 불리우며 카이로의 상업과 무역 중심지의 역할을 수행하였다. 하지만 1517년 오스만 투르크 제국이 이집트를 정복하고 나서는 상황이 바뀌었다. 오스만 제국은 이스탄불이 카이로처럼 발전하기를 원했다. 정책을 통해서 카이로의 상인들을 꾸준히 이스탄불로 보내기 시작한 오스만 제국의 노력으로 칸 엘 칼릴리는 시간이 지날 수록 명성을 잃어갔고, 나중에는 큰 규모의 칸들은 큰 몸집을 감당하지 못해 문을 닫았고, 작은 규모의 칸에 의해 명맥을 유지하는 수준에 이르게 된 것이다. 현재의 칸 엘 칼릴리는 그렇게 살아 남은 시장의 일부라고 할 수 있다.
    한번 작정하고 시장 구석구석을 돌아보며 흥정을 해보라. 숙소로 돌아오면 침대에 쓰러져 있는 당신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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