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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서안의 사랑 이야기 현종 양귀비의 장한가(長恨歌)
작성자 : 한재철  작성일 : 2009-06-30  조회 : 2035

  • 당현종 이융기(唐玄宗 李隆基 685-762) 당 예종 이단의 3남으로, 어머니는 숙명황후 유씨이고 고모할머니가 바로 중국역사상 유일한 여 황제로 유명한 무측천(則天武后, 624~705)이다. 현종은 황제등극 초기 한동안은 중국 역사에서 가장 백성들이 살기 좋은 태평의 시대 개원의치(開元之治)라 불릴 정도로 훌륭한 재상들을 주변에 두고 정치를 잘 하였으나 자신이 가장 아끼고 사랑했던 무혜비(武惠妃 699~737)의 사망과 양귀비와의 만남과 더불어 정치는 몰락의 시대로 접어든다.

    양귀비(楊貴妃 719~756)는 애초에 현종과 무혜비의 18번째 왕자 수왕 이모의 궁녀로 17세이 궁에 입궐(735년)하였다. 비파연주와 외모가 뛰어나고 제주가 있던 양귀비는 현종의 딸인 함의공주의 결혼식에 연주자로 참석 했다가 수왕의 눈에 띄어 정식으로 수왕의 비가 된다. 무혜비의 사망후 실의에 빠져 있던 현종은 평소 눈여겨 보았던 양귀비에 대한 이야기기를 당시 측근 환관 고력사에게 이야기 하게 되고 고력사는 양귀비를 잘 설득하여 수왕을 떠나 화산의 도교 사원으로 들어가 여도사(女道士)로 지내게 한다. 후에 현종은 태진궁 이라는 도교 사원을 만들고 이곳을 관리하는 여도사(女道士)로 양귀비를 불러 들려 본격적인 사랑을 시작한다. 740년 양귀비 22살 현종 57살에 처음 만남을 가진후 745년, 이융기의 나이 61세 때에 양옥환(楊玉環)은 현종의 귀비로 정식 책봉한다.
      

    양귀비에 푹 빠져 있던 현종은 양귀비 가족들에게 상당한 지위를 주게 되는데 그중에 6촌친척 오빠 양소도 있었다. 개인적으로 별 능력이 없던 양소는 현종의 총애를 받으며 `국충(國忠)`이란 이름을 하사받았다. 당시 현종은 재상 이임보를 견제 하기 위하여 양국충을 키웠으나 이임보 실각후 승상에까지 올라 40가지의 지위를 독점하며 국정을 농단하여 안녹산 (安祿山 703년? -757년)과 사사명으로 하여금 안사의 난(安史-亂755∼763)을 일으키는 빌미를 제공하여 결국은 양귀비를 죽게 만든다. 북방 변방 장수 였던 안록산은 6개국어를 할 정도로 똑똑한 돌권족 출신 장수로 양귀비를 통하여 현종의 총애을 받아 병력의 3분의 1을 관장 할 정도로 막강한 병권을 가질 정도로 지위가 급성장하여 결국 양충국과 충돌하게 되어 황제 옆에서 국정을 독점하던 양충국과 반목을 하게 된다. 안녹산은 입궁을 하였을 때 양귀비와 눈이 맞아 나이 어린 양귀비를 어머니로 부를 정도로 양귀비와 잘 놀았다고 한다.
      
    국정을 농단하는 양국충을 처단한다는 기치로 안사의 난이 일어나자 양국충은 현종을 설득하여 백성들 몰래 스촨성 지역으로 피난길에 오르게 되는데 장안(長安) 서쪽 지방인 마외역(馬嵬驛)에 이르렀을 때 양충국과 양귀비등 양씨 가족에 대한 불만이 폭발한 호위 군사가 양국충을 죽이고 현종도 어쩔 수 없이 양귀비를 죽음에 이르게 한다.

    안사의 난이후 757년 12월 장안으로 돌아온 현종은 감로전에 거처하며 쓸쓸한 나날을 보내다 병이든 현종은 762년 5월 3일 새벽 78세에 붕어 하였다.

    현종의 치세는 선천(先天) 712년 ~ 713년 개원(開元) 713년 ~ 741년 천보(天寶) 742년 ~ 756년로 나뉜다.

    장한가(長恨歌)는 현종 붕어 50년 후 당대의 유명한 시인 백거이가 806년 나이 35세에 왕질부의 제의로 백거이는 시인의 상상력을 발휘해서 시로 진홍은 산문으로 현종과 양귀비의 비련의 사랑 이야기를 쓴 것이다.

    노래의 형식은 칠언(七言) 절구로 120행으로 되어 있으로 4 부분으로 나뉜다.

    제1장 현종과 양귀비의 만남과, 양귀비에게 쏟는 현종황제의 지극한 애정 등을 노래하였다.
    제2장 안사의 난으로 몽진길에 양귀비를 지켜 주지 못한 뉘우침과 양귀비 사후의 외로움등
    제3장 장안 환도 후 양귀비와 옛 생각을 회상하며 지내는 현종의 모습
    제4장 도교 도사의 환술(幻術)로 양귀비의 영혼을 만나 사후세계에서도 사랑을 이어 갈 것을 맹세 하였으나 천상(天上)과 인계(人界)의 단절 때문에 살아 있는 동안은 다시 만날 수 없음을 비통해 하는 모습
      
    끝 부분의 내용은

    天上人間會相見 천상에든 세상에든 다시 보게 되리라네
    臨別殷勤重寄詞 헤어질 즈음 간곡히 다시 하는 말이
    詞中有誓兩心知 두 마음 만이 아는 맹세의 말 있었으니
    七月七日長生殿 칠월 칠일 장생전에
    夜半無人私語時 인적 없는 깊은 밤 속삭이던 말
    在天願作比翼鳥 하늘을 나는 새가 되면 비익조가 되고
    在地願爲連理枝 땅에 나무로 나면 연리지가 되자고
    天長地久有時盡 천지 영원하다 해도 다할 때가 있겠지만
    此恨綿綿無絶期 이 슬픈 사랑의 한 끊일 때가 없으리

    세상에는 사랑이야기 많기도 하다. 어떤 사랑이 고귀하고 어떤 사랑이 천한 것인지는 제 삼자의 평가 일 뿐이다. 현종이 며느리인 양귀비에 빠져지내던 10여년 사이 당시 세계 최강의 당나라 백성들은 고통의 나락에 떨어 졌으며 나라는 혼란에 빠져 들게 된다. 그러나 당사자들인 현종과 양귀비는 가장 행복한 시절을 보낸다. 당시 한반도는 신라가 당나라와 함께 고구려(668녀)를 명망시키고 통일시대로 접어 들던 시대이다.

    서안여행중 장한가를 보고난후 한가지 느끼는 것이 있다면 사람~ 남녀 사이의 사랑은 그 어떠한 장벽이라도 넘어서 한번쯤은 몸 던저 해 볼만한 가치가 있는 순수한 인간삶의 행위라는 것이다.

    화청지에서 화청지 뒷산까지 배경으로 해서 펼쳐지는 장한가는 좀 비싸다. 화청지 입장료와는 별도로 자리에 따라 250-988위안까지 더 투자해야 볼 수있다. 운좋게도 가장 비싼 자리 중 에서도 가장 좋은 자리에서 감상할 기회가 있었다.

    http://www.planetchinatour.com/main/tour/tour_view.asp?id=LTCHZC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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