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블로그
[중국]  시황제(始皇帝) 진(秦)나라는,,,,
작성자 : 한재철  작성일 : 2009-07-02  조회 : 2985
  • 진(秦) (BC 221∼BC 206) 나라는 중국의 고대 왕조 주(周)나라 (BC 1046∼BC 771) 때 제후국의 하나였다 중국 최초로 통일을 완성한 국가로 진시황제 (始皇帝, BC 259~BC 210)를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시황제의 성은 영(嬴). 이름 정(政)으로 여불위(呂不韋, ?~BC 235) 도움으로 진나라의 왕이 된다. 진시황제의 아버지인 진나라 소왕(昭王)의 둘째 아들인 안국군(安國君) 자초(子楚)가 조(趙)나라의 수도 한단(邯鄲)에 있을 때 그곳을 방문한 여불위를 만나게 된다. 당시 여불위는 대상인으로 제후국 여기저기 다니며 장사를 하여 정세에 밝아 세상의 판세를 읽는데 뛰어난 능력을 가졌다고 한다. 이때 여불위는 자신의 애첩을 자초에서 주었는데 이미 그 애첩은 임신 한 상태였다고 한다. 그후 자초는 진나라의 장양왕(莊襄王)이 되었으며 장양왕의 등극과 더불어 여불위는 승상이 되었고 후에 상국(相國) 이라는 최고의 지위까지 올라 간다. 장양왕이 즉위 3년만에 죽자 여불이가 준 애첩이 낳은 아들 정(政)이 13세에 왕이 된다. 바로 이 사람이 시황제이다 .

      

    여불위는 시황제를 도와 진나라의 기틀을 튼튼히 한다. 그러나 시황제의 모후 조희와 지속적으로 몰래 관계를 맺는다. 모후 조희는 환관 노애(嫪毐)와도 밀통을 하여 두아이까지 두었다. 노애는 모후의 총애를 받으며 여불위와 함께 진나라에서 막강한 권력을 행사 하다가 결국 반란을 일으키게 된다. BC 238년 반란을 진압한 시황제가 여불위와 노애를 제거후 본젹으로 진나라를 다스리며 최고의 참모인 이사(李斯) 등을 등용하여 강력한 부국강병책을 실시하고 문자 •도량형 •화폐의 통일 전국적인 도로망의 건설등을 통하여 제국으로 발전하는 기틀은 닦아 나간다.

    시황제(始皇帝)가 6국을 통일 후 삼황오제(三皇五帝)도 하지 못한 대제국을 건설하였다 하여 스스로 황제라는 호칭을 처음으로 사용한다. 이사의 건의로 봉건제 대신에 군현제(郡縣制)라는 통일제국 운영의 제도로 받아 드리고 이사는 정위(廷尉)에서 승상(丞相)으로 진급하였으며 강력한 법치를 통치이념으로 강조하며 국가의 사상을 통일한다는 명분으로 지식인들을 탄압한 분서갱유(焚書坑儒)를 단행하는등 억압적인 정책을 실시하였다.

    그러나 강력한 법치로 중국을 최초로 통일한 진나라는 BC210년 시황제의 갑작스런 붕어후후 이사와 조고(趙高)라는 환관이 조서(詔書)를 조작하여 영리한 맏아들 부소(扶蘇)와 장군 몽염(蒙恬)를 자결하게 하고 아둔한 막내아들 호해(胡奚)에 황제로 등극하게 하여 국정을 농단하다 조고는 이사를 참소하여 죽게하고 호해와 함께 대부분의 시황제와 황족 자식들을 죽인다. 모든 권력을 쥔 조고는 각지에서 반란이 일어나자 호해마저 암살하고 부소의 아들 자영(子嬰)을 다시 황제에 옹립후 46일 만에 처들어온 한나라 유방(劉邦)에게 항복하고 진나라는 3대 15년 만에 멸망하고 만다.

    진나라의 통일제국은 비록 짧은 기간 존재하였지만 진나라가 도입한 군현제 및 통일제국을 다스리기 위하여 도입한 각종 제도들은 그후 지속적으로 발전하여 중국의 기본이 되고 있으며 또한 주변 나라에 전파되어 나라를 운영하는 근본적인 제도로 발전해 왔다.
      
    진나라가 단명한 여러가지 이유가 있으나 이사가 시행한 강력한 법치와 백성들의 다양한 사상을 억압하는 정책에도 그 이유가 있을듯하다. 요즘 대한민국???

    서안 관광은 필히 역사적 배경을 지식을 사전에 습득하신후 가면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어 좋습니다,,,
    http://www.planetchinatour.com/main/tour/tour_view.asp?id=LTCHZC7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