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ㅣ사마천ㅣ소준섭 평역|서해문집
사마천(司馬遷(?BC 145~?BC 86)이라는 사람이 한나라 무제 시대에 완간한 당시 고대 역사부터 2,000여년간의 중국역사 이야기다. 사기(史記)이전의 역사 기록은 주로 연도별로 서술하는 편년체(編年體)방식 이었으나<대표적인 역사서는 공자의 춘추(春秋)> 사기는 연대에 따라 사건을 기록을 기(紀)•전(傳)•지(志)•표(表)등으로 역사를 입체적으로 기록한 최초의 기전체(紀傳體) 방식 역사서 이다.
사마천은 한 나라 경제 시기 아버지 태사령(太史令- 역사기록을 담당하는 관직)을 지낸 사마담(司馬談 ?~BC 110)의 아들로 태어난다. 사마천은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려서 부터 역사에 관심을 가졌으며 여행을 다닐 기회가 많았고 10세가 되는 해부터 공자의 11대 자손인 공안국을 스승으로 하여 고문 경서를 배웠다고 한다. 사기는 아버지가 죽으며 자신이 시작한 사기를 완성 할 것을 유지로 남긴 것은 완성한 것이다. 사기를 기록하는 중에 사마천은 친구인 이릉(李陵) 장군이 흉노족과의 전쟁에서 포로로 잡힌 것을 변호하다 황제의 노여움을 사 BC 99년 48세 되던 해 궁형(宮刑)을 당한다. 당시 이릉장군은 5천의 병력으로 8만의 적과 맞서 끝까지 분전하다 흉노에게 투항했다. 사마천은 이릉장군이 살아 돌아와 훗날을 도모하기 위해 적에게 투항한 것이라고 변론하였다. 사마천은 한 무제에게 사형 대신에 생식기를 자르는 궁형을 감내하며 옥중에서도 목숨을 부지 하면서 사기를 기록해 갔다고 하고 당시 궁형을 당한 자들은 환관이 되었으며 이후 한 무제의 신임을 회복하여 환관의 최고직인 중서령(中書令)까지 되며 BC.91년경에 사기를 완성한다. 당시 당나라의 형벌은 사형(死刑)•궁형(宮刑)•월형(刖刑:발뒤꿈치를 자르는 형벌)•의형(劓刑:코를 베는 형벌)•경형(黥刑:얼굴•팔뚝 등의 살을 떠내고 홈을 내어 죄명을 찍어넣는 형벌)등이 있었는데 사형을 면하려면 50만냥을 내면 되었으나 사마천의 형편으로는 불가능한 금액이었고 아버지 유지인 사기를 완성하기 위하여 어쩔 수 없이 남자로서 치욕스런 궁형을 사마천은 선택하였다.

사마천 사기는 본기(本紀) 12권, 연표(年表) 10권, 서(書) 8권, 세가(世家) 30권, 열전(列傳) 70권 모두 130권 52만 6천 5백자에 이르며 당시는 태사공서(太史公書)라고 불리다 위진(魏晋)시대부터 사기라 하였다.
중국여행객에게 꼭 권하고 싶은 책중에 하나가 바로 사기 이다. 사기는 단순 중국 역사서로 읽기 보다는 사람 살아 가는 이야기로도 충분하다. 사마천이 사기에 기록한 다양한 역사속 인물들의 행동을 기록하며 후세에 전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면 현대를 살아 가는 사람들에게도 뜻하는 바가 많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