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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청산리전투는 영원히 우리 가슴속에......
작성자 : 김송국  작성일 : 2009-10-10  조회 : 2559
  • 10월은 항상 수확의 계절이다. 특히 올해는 연변지역이 또 대풍작을 거두는 한해라 할수 있다. 가을의 단풍잎을 따라 8일연휴기간을 이용해서 오늘은 청산리전적지 화룡시 청산리로 향했다.
    3살되는 아들을 차에 싣고 가족이 드라이브겸 청산리전투를 회억해보는 코스로서 의미심장한 여행길이였다. 여행업에 오래동안 몸 배인 내가 지금에 와서 돌이켜보면 한민족의 여행길은 보통 번개식으로 움직이면서 여행사에서 짜여진 일정으로 움직이다 보니 남는건 항상 지쳐있는 쇼핑일정뿐이라 할수 있겠다. 우리들의 여행문화도 멀지 않아 자유여행으로 또 구석구석을 다 돌아볼수 있는 여행문화로 탈바꿈할때도 된가 싶다.
    연길에서 화룡까지 1시간정도 달리고 잠깐 가을의 풍경에 취해 휴식을 취하다가 다시금 청산리로 움직였다. 30분정도 달리니 우리 가족일행은 항일유적지인 청산리기념비앞에 도착했다. 이제 금방 말귀를 알아듣고 말을 번지기 시작한 아들애한테도 청산리전투이야기를 들려주었다.
    1920년 9월 10∼12일, 김좌진(金佐鎭) 장군이 이끄는 북로군정서(北路軍政署)의 2,500명 독립군이 만주 허룽현[和龍縣:三道溝] 청산리 백운평(白雲坪) ·천수평(泉水坪) ·마록구(馬鹿溝) 등지의 3차에 걸친 전투에서 5만의 왜군을 대파한 싸움이다.
    1920년 8월 하순, 왕칭현[汪淸縣] 서대파(西大坡)에 주둔하고 있던 북로군정서의 주력부대는 훈춘[琿春]의 일본 영사관을 습격해서 얻은 정보로 일본군 제14사단과, 제13사단의 일부가 장고봉(張鼓峰)을 거쳐 남하하고, 나남(羅南)의 제21사단이 도문강(圖門江)을 건너 북상하며, 만철(滿鐵)의 수비대가 숭화강[松花江]을 건너 서진하여 3면으로 북로군정서군을 토벌하려는 작전이 진행 중임을 알게 되었다. 마침 독립군 때문에 대일(對日)관계에 난처한 입장에 처해 있던 중국 당국의 권고도 있었으므로, 근거지를 옮겨 장백산(長白山)으로 입산하여 낭림산맥(狼林山脈)을 타고 게릴라전을 펼칠 계획이던 북로군정서군은 1,500명으로 편성된 전투대대인 제2제대(梯隊:李範奭 지휘)와 비전투요원 1,000명으로 구성된 제1제대(김좌진 총사령관 겸임 지휘)로 하여금 180량의 치중차(輜重車)를 이끌고 대이동을 감행하도록 하였다.

    북로군정서군은 장장 80리의 골짜기에 100m 내외의 밀림으로 자연성을 이룬 청산리의 백운평 골짜기로 제대를 진출시켜 우진(右陣:李敏華 지휘) ·좌진(左陣:韓根재 지휘) ·중우진(中右陣:金勳 지휘) ·중좌진(中左陣:李馭成 지휘)의 기습포진을펴고 적을 기다렸다. 9월 10일 아침, 적의 척후가 나타나 식은 말똥을 만져보고 아군이 이 백운평을 지나간 지 오래된 것으로 오인, 전위사령(前衛司令)을 선두로 기마대 ·보병 ·공병의 1만 혼성여단이 골짜기로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아군은 적이 함정 속으로 다 들어올 때까지 침묵을 지키다가, 이범석이 쏜 총이 전위사령을 거꾸러뜨림과 동시에 공격을 퍼부어 3차로 적의 부대가 몰려들 때까지 적 2,200명을 사살하고 아군 20명의 사상자를 내는 대전과를 거두었다. 타격을 받은 적군이 전열을 가다듬고 장기전 태세에 들어가자, 아군은 주력 부대가 그대로 백운평에 있는 것처럼 위장하고 밤 사이 120리를 강행군하여 갑산촌(甲山村)에 도착함으로써 적의 포위망에서 벗어났다. 이어 아군은 시마다[島田]가 지휘하는 120기병 중대가 한국인 촌락인 천수평(泉水坪)에 있다는 정보를 확인하고 집단병력을 투입해서 도망자 4명을 제외한 중대장 이하 전원을 사살하고 시마다 중대장이 가노[加納] 연대장에게 보내는 정보문서를 입수, 19사단의 2만 병력이 어랑촌(漁郞村)에 있음을 알고 기선을 제압, 어랑촌 전방의 마록구(馬鹿溝)고지를 점령하였다.

    이로부터 만 2주야에 걸친 혈전을 통하여 2,000명의 아군 병력은 지리적 이점을 충분히 이용해 2만의 적병 중 1,000여 명을 전사케 하고 90명의 아군 전사자를 내는 대승리를 거두었다. 5만 병력을 2,500명으로 맞아 3,300명을 죽인 청산리 3차의 싸움은 한국 무장독립운동 사상 가장 빛나는 전과를 올린 대첩(大捷)으로 독립전사에 기록되어 있다. 바로 전 세계를 놀래키웠던 청산리전투였다.
    우리 일행은 청산리전투기념비앞에서 묵도를 올리고 주위에 있는 쓰레기들을 잠깐 치우고 다시금 귀로에 올랐다.
    돌아오는 길에 시간이 있을적마다 가족과 함께 연변땅에 그 구석진 곳에 있는 독립투사들의 발자취를 돌아보기로 마음 먹었다.
    플래닛차이나투어에서는 항상 고객들의 입장에서 의의가 있고 보고 느끼는 유익한 관광일정이 되도록 배정하는데 최선을 다 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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