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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지역]  7월 23일 (중동전쟁) 전쟁기념일이라서 이집트는 휴일이예요^^
작성자 : 서윤선  작성일 : 2008-07-23  조회 : 929
  • 중동전쟁 Arab Israeli wars



    중동전쟁의 원인은 아주 복잡합니다. 이스라엘과 아랍국가들과의 영토분쟁으로써

    과거 2000년전 아랍인들이 유대왕국을 무너뜨리고 유대인들은 흩어져 살게 되었습니다.

    19세기 이후 이들은 점차 옛날 자신의 조상이 살던 중동의 팔레스타인 지방으로 돌아가려는 움직임을 보였고

    2차대전이 끝난 1945년 영국이 이스라엘 땅을 유대인들에게 돌려주게 됩니다.

    이스라엘 건국을 반대하던 아랍국가들은 이스라엘을 상대로 전쟁을 벌이는데

    (자기들이 살고 있는 땅에 이스라엘이 들어서면 자기들의 살 곳을 잃게 되므로 반대하게 되는겁니다.)

    이것이 제 1차 중동전쟁입니다. 결과는 아랍국가들의 패배입니다.



    1948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제 1차 중동 전쟁

    1956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제 2차 중동 전쟁

    1967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제 3차 중동 전쟁

    1973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제 4차 중동 전쟁



    총 4차례에 걸친 전쟁인데 최근에 일어난 이스라엘 레바논 공습은 5차 중동전쟁이라고 부르기엔 소규모 전투입니다.

    제 1차 중동전쟁
    5단계를 거친 제 1차 중동전쟁은 1948년 팔레스타인 지역의 이스라엘 건국을 반대하던 아랍국가들과 이스라엘의 전쟁으로써 아랍국가들의 패배로 이스라엘의 피해수는 민간인 2천여명 군인 4천명 아랍국가는 1만~1만5천으로 추정됩니다.

    제 2차 중동전쟁

    이집트 대통령 나세르는 이스라엘과의 적대관계를 확실히 드러내었고 이스라엘의 멸망을 외쳤지만 이스라엘은 가자지구와 시나이 반도를 침공하여 수에즈 운하를 점령하였고 더불어 시나이 반도의 대부분 영토를 점령했습니다.
    영국과 프랑스의 개입이 있었고 이집트 이스라엘 양측 모두 많은 사상자를 낳았으며
    이스라엘의 수에즈 운하 점령은 군사적으로 성공적이었지만 정치적인 외부요인에 의해 패배였습니다.
    이스라엘군은 1957년 UN군에게 시나이 반도를 넘기고 철수하고 이집트군은 다시 시나이 반도에 병력을 배치시키고 UN군의 철군을 요하고 티란 해협을 봉쇄하여 3차 중동전쟁인 6일전쟁의 불씨가 됩니다.제 2차 중동전쟁은 이스라엘의 승리로 막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제 3차 중동전쟁

    1967년 6월 5일에 일어난 이 전쟁을 6일전쟁이라고도 불리웁니다.
    이스라엘 공군은 6월 5일 이집트군 비행장을 기습공격하여 시작되었고 이어 시리아, 이라크, 요르단도 같은 기습공격에 당했습니다.
    이스라엘 공군은 많은 훈련과 하루 4회 출격 훈련을 통해 무리없이 가능한 작전이었습니다. 초반부터 공군이 궤멸당한 이집트군은 시나이 반도에 육군을 진격시킵니다.
    소련제 최신 병기를 보유한 아랍 연합군이었지만 맹훈련으로 무장한 이스라엘군에게 무참히 당하게 됩니다.
    6월 8일 이스라엘군은 시나이 반도 영토 대부분을 점령합니다.
    요르단은 텔바비브 지역을 M2 장거리 야포로 집중포격을 가하고 요르단 공군은 이스라엘 공군기지를 공격하지만 오히려 비상출격한 이스라엘 공군에 의해 요르단 공군이 궤멸당하게 됩니다.
    금일 저녁 이스라엘은 예루살렘을 공락하였고 요르단과 이스라엘은 각 반씩 점령하게 되어 치열한 시가전을 벌인 끝에 이스라엘은 예루살렘을 점령합니다.
    요르단군과 이집트군을 패배시킨 이스라엘은 공군을 출격시켜 전략적 요충지인 골란 고원 요새의 모든 군사 시설을 순식간에 폭격을 퍼부어 버립니다.
    전쟁 초반부터 항공기 ⅓을 파괴당하였고 이스라엘의 육공군의 협공작전에 열세인데다 이스라엘 공군은 적 항공기를 파괴시키고 육군의 진격을 도왔으며 아랍국가들의 기갑부대를 막아내는데 훌륭한 역할을 해냅니다.
    반면 아랍군의 공군은 초반부터 대부분이 파괴되어 거의 쓰지도 못하고 공중전에서도 전멸합니다.
    6월 10일 골란고원의 집중 폭격을 중지하고 다음날 종전협정을 맺어 끝을 맺었고
    6일 전쟁은 이스라엘의 위력을 다시한번 크게 나타낸 전쟁이었습니다.

    제 4차 중동전쟁

    제 3차 중동전쟁 이후 이스라엘은 요르단의 예루살렘, 이집트의 시나이 반도, 시리아의 골란고원 요새를 점령하여 거대한 영토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집트 대통령 나세르는 전력의 재건을 서둘렀고, 아랍 게릴라는 1969년경부터 다시 파괴활동을 실시합니다.
    요르단에서는 1970년 9월 화평에 반대하는 게릴라와 정부군 사이에 내전이 있었고,
    1970년 9월 28일 이집트 대통령 나세르의 사망으로 M.A.사다트가 대통령에 취임합니다. 1973년 사다트는 시리아와 이스라엘 기습침공 계획을 세웠고 만반에 준비를 갖춘 상태였습니다.
    1973년 10월 6일 오후 2시경, 이집트와 시리아는 수에즈 운하와 골란고원을 양 전선에서 동시에 기습 공격합니다.
    이 날은 이스라엘 유대인의의 정결 의식의 날로써 아랍국은 이를 허점으로 삼았던 것입니다.
    10월 7일 이스라엘은 예비군을 총 동원하여 반격에 나섭니다.
    10월 8일 시리아군은 수많은 전차와 병사들의 희생에도 불구하고 골란고원을 점령하여 많은 영토를 차지합니다.
    10월 9일 이스라엘군은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와 레바논을 폭격, 시리아 전선에서 제공권을 장악한 후 골란고원의 전차전에서도 시리아군에게 총 공세를 펼칩니다.
    10월 10일 이집트군은 시나이 반도를 20만명의 병력으로 점령하였고 직접 이스라엘 침공은 꺼려한 편이었고 이스라엘군은 다시 시나이 반도를 재탈환하기위해 총 공세를 준비합니다.
    10월 12일~ 14일 이스라엘과 이집트는 시나이 반도에서의 전차전으로 정면승부를 내는데 이는 2차대전 당시 동부전선 독일과 소련의 쿠르스크 전차전과 맞먹을 정도의 대규모 전투였습니다.
    10월 15일 이스라엘은 소규모 전차부대를 파견해 이집트군을 기습공격, 큰 성과는 이루지 못했지만 이집트군은 조기경보를 내리지 못하여 결국 운하에 고립되었습니다.
    이에 이집트와 시리아를 지지하는 아랍 8개국이 참전하지만 미국의 지원을 받는 이스라엘은 가뿐히 격퇴하고 시리아 배후를 공격해 시리아는 영토 대부분을 점령당하게 되자 밀릴때로 밀린 아랍 연합국은 10월 16일 휴전을 제의하였지만 이스라엘은 단호히 거절합니다.
    아랍측은 10월 17일 서방측에 대해 석유 파동을 경고하였고 10월 20일 이스라엘, 즉 미국과 관계있는 서유럽권과 그와 관계있는 모든 나라들에게 석유 가격을 대폭 인상하고 수출 금지령을 내리는 등 조취를 취하여 제 1차 석유 파동을 일으켰으며 그 서방국가들중 하나인 우리나라 역시 경제적으로 큰 타격을 입었습니다.
    10월 22일 ~ 24일 휴전을 발표하였지만 전투는 계속되었고
    11월, 휴전으로 하나터면 소련과 미국이 개입할 뻔한 제 4차 중동전쟁은 끝을 맺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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