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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  카파도키아 정보
작성자 : 이영희  작성일 : 2008-05-08  조회 : 2324
  • 중앙 아나톨리아의 고대시대로부터 남아온 고장의 이름이다. 지리학적으로 보면 신비의 나라인 카이세리, 니데, 크르쉐히르의 삼각지대에 위치하고, 윌귭, 아바노스, 네브쉐히르의 더 작은 삼각지대에 자리잡고 있다.

    강한 기후로 인하여 농사는 곡식과 과일로 한정되어 있으나 넓은 초원은 말과 양을 기르기 위해 아주 적합하였으며. 은, 구리, 소금 그리고 광산이 있었다. 우리는 자연, 역사, 종교적인 세가지 면으로 관찰 할 수 있겠다.

    ◆ 자연적 면모

    이곳의 희한하고 아름다운 모습은 몇 백만년 동안 이 형태로 보존되어 있다. 이 지역의 화산들이 활 화산이었을 때 용암이 높은 언덕과 모든 계곡들을 덮었다. 이렇게 이 지역에 새로운 지층이 생기기 시작하면서, 카파도키아의 형성의 전 단계와 형성되어진 지층은 봄에 내리는 강한 비와 눈이 녹은 물로 인하여, 그리고 갑작스러운 온도 변화에 따라 깎여져 내려갔고 아직도 깍여 지고 있다.

    바람은 원형과 수평으로, 비는 수직으로 모양을 만들어 간다. 위의 부분보다 아래 부분의 지층들은 덜 영향을 받았으며 보호적인 역할을 했다. 서로 다른 물질들의 융합으로 페리바작라르 라고 불리 우는 꼬깔 모자를 쓴 돌들을 형성하는가 하면 상상 할 수 없는 다양한 모습들은 만들어 내었다.

    ◆ 역사적 면모

    B.C 19세기에 앗수르 상인들이 이곳에서 다른 도시 국가들 사이를 오고 가며 생활하였다. 그 후 힛타이트의 아랫나라 라고 불리어졌었다. 페르시아인들은 이곳을 사르데스에서 수사까지의 왕도가 지나가는 하나의 주로 만들었다. 끝까지 알렉산더에게 항복하지 않았으며 B.C190년 후에 이곳은 원주민들에게 의해 지배되었고 로마와 좋은 관계를 맺었다.

    A. D17년 로마의 주가 되었고 72년에 갈라티아의 주와 합쳐져서 4세기까지 계속되었다. 이곳의 수도원들은 터키인들이 들어오면서 파괴되기 시작,되고 다시 원주민들에 의해 점령당하였다. 기독교인들은 1923년에 그리스와의 터키인들의 교체되기까지 이곳에서 살았다.

    ◆ 종교적 면모

    이곳은 기독교와 비교적 빨리 만났다. 4세기에 3명의 수도사를 배출하였는데, 성 바실, 성 그레고리우스. 그리고 다른 성 그레고리우스 이다. 박해를 피해 이 곳으로 모여들면서 많은 교회가 생겨졌다.

    자연적인 동굴과 새로이 만드는 동굴에서 신앙생활을 하였다. 기독교가 공인되면서 숨어 살 필요가 없어지자 그들은 이곳을 떠났으나 A.D 7세기에 아랍인들의 공격이 시작되자 다시 적당한 지역의 동굴로 피신하여 생활하였다.

    이 곳에는 적어도 600여 개의 교회가 남아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사람들이 만들어낸 교회들은 도시의 교회들의 양식과 비슷하며 프레스코 가 아름답게 그려져 있다. 8~9세기의 우상파괴 운동의 영향을 받아 일부는 상징적인 그림으로 그려져 있다.

    지금 우리가 볼 수 있는 교회의 대부분은 11~12세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두 가지의 프레스코 형식을 갖추고 있는데 하나는 직접 벽에 그리는 것이고, 또 다른 것은 먼저 벽에 회를 바르고 그림을 그렸다. 직접 그린 것이 더 선명하게 남아있다. 그림은 주로 붉은색을 사용. 그림의 얼굴들이 많이 지워져 있는데 이것은 모슬렘들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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