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카이로(Cairo)는 나일 강이 낳았다.
진부한 표현이지만 이보다 더 잘 카이로를 설명할 방법은 없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나일 강이 만개한 파피루스처럼 도심을 감싸며 지중해로 흘러든다.
열대 밀림과 사바나, 사막을 가로지른 도도한 물줄기가 드넓은 삼각주를 이루며 소멸한다.
나일 강이 수 갈래로 작렬하며 바다가 되는 순간 카이로가 태어난다.
내세로 이어진 현세의 삷 카이로에 도착하면 누구나 피라미드부터 찾아가려고 한다.
귀에 못이 박힐 정도로 들어온 이름, 눈에 각인됐을 만큼 사진과 영상으로 접해온 그 불가사의의 실체를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다.
하지만 그에 앞서 나일 강을 보는 게 순서다.
나일 강이 없었다면 고대 이집트의 첫 수도인 멤피스와 피라미드도, 지금의 카이로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일 강 디너 크루즈는 카이로 여행의 워밍업에 해당된다.
피라미드에 대한 과도한 기대와 열정을 어느 정도 식혀준다.
디너 크루즈는 카이로 도심 선착장에서 출발하는데, 대개 2시간 코스로 운항하면서 이집트 전통 공연과 음식을 선보인다.
수피(Sufi) 댄스와 벨리(Belly) 댄스는 거의 모든 나일 강 크루즈 업체들이 운영하는 프로그램이다.
벨리 댄스는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는 춤으로 다산(多産)에 대한 기원을 의미한다.
수피 댄스는 이슬람 신비주의 분파인 수피교도들의 의식에서 유래했다.
화려한 원색의 치마를 입은 남자 무용수가 처음부터 끝까지 빙글빙글 도는 방식이다. 치마를 겹겹이 껴입고 머리에까지 뒤집어써 탄누라(Tanura, 치마) 댄스로 불린다.
수피교도들은 자신들만의 금욕 생활과 수행법을 통해 신비 체험을 하는데, 춤도 그 중 하나다.
같은 방향으로 한없이 돌다 보면 무아지경에 빠져 결국 신과 소통하는 단계에 이른다고 한다.
알록달록한 팽이 인간이 쉬지 않고 돌아가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경이로움 그 자체다.
나일 강을 오르내리며 카이로의 공기에 익숙해졌다면 이제 피라미드로 향할 시간이다.
대피라미드군(群)은 카이로 남서쪽 기자(Giza) 지역에 자리한다.
숙소 위치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여행객 대부분은 지하철로 기자까지 이동한다.
택시나 버스는 극심한 교통 체증과 매연으로 인해 피하는 게 낫다.
기자 피라미드는 이집트 전역의 80여 기의 피라미드 중 규모가 가장 크고 보존 상태가 뛰어나다.
제4왕조의 쿠푸(Khufu), 카프라(Khafra), 멘카우라(Menkaura) 왕의 이름이 각각 붙어 있다. 카이로의 살인적인 대기오염에 가려 먼 거리에선 윤곽조차 희미하다.
피라미드에 얽힌 이야기 중 일반의 추측과 상반되는 것은 누가 쌓았느냐이다.
강력한 왕권의 파라오가 노예와 전쟁 포로를 동원했다고 추정한다면 틀렸다. 피라미드는 나일 강 범람으로 생계가 막막한 백성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해준 대규모 토목사업이었다. 파라오는 매년 여름 찾아오는 범람기에 국가의 곳간을 열었는데, 그 명분이 피라미드 건축이었다.
국가적인 일자리 창출 사업은 천문학, 수학, 기하학, 건축학 지식을 갖춘 사제들이 진두지휘했다.
파라오의 백성들은 정당한 품삯을 받고 일했으며 쉬는 날에는 나일 강에서 낚시를 즐겼다고 한다.
기자에선 피라미드보다 더 눈여겨봐야 할 게 있다.
스핑크스와 장제전이다. 피라미드는 본래 장제전, 스핑크스와 일체를 이루는 복합 건축물이다. 기자에는 단 하나, 카푸레 왕의 피라미드로 가는 길목을 지키는 스핑크스만 남아 있다. 사람 머리와 사자 몸통의 반인반수로 BC 2600년 경에 하나의 거대한 돌로 조각됐다.
카푸레 왕의 스핑크스는 수천 년 세월이 흐르면서 목 아랫부분은 모래에 파묻혔다.
머리의 코브라 장식과 코, 수염 부분은 오스만투르크와 나폴레옹의 이집트 침략 당시 포사격으로 떨어져 나갔다.
현재, 유네스코가 주관하는 스핑크스 보존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다. 공해와 풍화작용으로 침식 손상된 부분을 보존 처리하는 공사가 진행 중이다.
기자의 장제전은 기둥과 벽면만 남은 상태다.
벽면끼리 만나는 모서리가 돌쩌귀처럼 곡면을 이루게 다듬어 층층이 쌓아 올렸다.
바늘 하나 들어가지 못하게 빈틈없이 지은 장제전에선 파라오의 장례를 치르고 미라를 만드는 작업이 이루어졌다.
미라 작업은 죽음의 신 아누비스(Anubis)의 가면을 쓴 신관이 주관했다.
사제들은 파라오의 시체를 씻은 후 왼쪽 옆구리를 갈라 내장을 꺼내고 몸의 모든 수분을 제거한 뒤 향유를 발라 수십 일 동안 건조시켰다.
두개골은 입이나 코로 숟가락 형태의 도구를 집어넣어 빼냈다.
그리고 분리된 간, 폐, 위, 창자 등은 포도주와 향유로 씻어 호루스의 네 아들을 상징하는 4개의 카노푸스 항아리(Canopic Jar)에 각각 넣어 보관했다. 사제들은 시신의 방부 처리 과정에서 콧날을 오뚝하게 유지하기 위해 비공에 후추 열매를 채우고 작은 동물 뼈를 지지대로 삽입했다고 한다.
미라 작업 과정에서 심장을 떼어내지 않았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심장을 남긴 이유는 죽은 이가 영생을 부여받기에 합당한 삶을 살았는지의 여부를 가리기 위함이다.
미라와 함께 매장된 사자의 서(Book of the Dead)에 따르면 고대 이집트인들은 아누비스가 진리의 방에서 사자(死者)의 심장을 저울에 올려놓고 깃털과 비교해 심판한다고 믿었다.
생전의 모든 행위가 기록된 심장이 깃털보다 가벼워야 그 영혼은 다시 미라와 합일을 이룰 수 있었다.
지금, 카이로를 찾아가면 부활을 기다리며 요동치는 파라오의 심장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사진/이진욱 기자(cityboy@yna.co.kr)ㆍ글/장성배 기자(up@yna.co.kr),
협찬/플래닛이집트투어ㆍ카타르항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