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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서양문명의 보존 에르미타쥐
작성자 : 이현희  작성일 : 2008-04-21  조회 : 2431
  • 러시아에서 가장 유럽다운 도시, 아니 러시아 속의 유럽은 상트페테르부르크이다. 상트페테르부르크를 최초로 건립한 왕은 표트르대제이다. 그가 왕위에 오른 후 1695년경 투르크와의 전쟁에서 승리하지만, 그는 흑해를 지배할 여력이 없다는 것을 알고, 해군의 증강에 몰두하게 된다. 그는 곧바로 18개월에 걸친 유럽 순방을 단행하여 유럽의 선진문명을 배우고자 한다. 그 중에서 표트르대제가 가장 큰 공을 들인 분야는 바로 조선술이었다.1)

    표트르대제는 조선술을 네덜란드에서 배우게 되는데, 거기에는 이유가 있다. 17세기는 네덜란드의 황금시대라 일컫는다.2) 지리상의 발견 이후, 이를 이용하여 최대의 혜택을 누린 나라는 다름아닌 네덜란드였다. 그 당시 전세계에 네덜란드가 무역을 하지 않는 나라는 없었다 한다. 무역을 통하여 막대한 부를 축적한 네덜란드는 상업, 문학, 예술-특히 미술분야에 엄청난 에너지를 쏟아 붇게 되어 인류사에 큰 업적을 남기게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하멜표류기로 유명한 네덜란드인 하멜이 타이완에서 일본으로 이동 중에 난파하여 조선에 머물게 되었는데, 그 시대가 바로 네덜란드의 황금기인 1653년(효종) 이었다.3) 세계의 모든 상품이 네덜란드로 모여들었고, 그 많은 부는 이웃나라 왕족들의 자금 줄이 될 정도였다 한다. 일본은 이 시기의 네덜란드를 배우는 붐이 일기 시작하여 에도시대 중기 이후 이른 바 ‘란가쿠-네덜란드학’가 대유행을 하게 되었다.4) 17세기 최대의 전성기를 누리며 전세계를 주름잡던 네덜란드의 조선술, 항해술, 무역능력을 배우는 것은 당시로서는 당연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마치 20세기 이후 사람들이 미국과 영어를 배우려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당시 네덜란드 또한 저지대에 운하를 이용한 도시를 계획하여 건설하게 되는데, 이곳이 바로 세계 최고의 계획도시 암스테르담이다. 상트페테르부르크는 이 암스테르담을 모델로 하여 건설되기 시작하였다. 이는 말할 것도 없이 네덜란드를 다녀온 피터대제의 구상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렇듯 상트페테르부르크는 유럽의 많은 도시들 중에서 비교적 최근에 세워진 유럽도시로서, 그 시대를 풍미하던 바로크 양식과 신고전주의 양식을 도입하여 당시로서는 가장 최신의 기술로 지어졌다. 이로 볼 때, 가장 최후의 유럽 도시는 단연 상트페테르부르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러시아의 다른 도시들과는 달리, 상트페테르부르크는 비잔틴이나 러시아정교 양식의 영향이 매우 적은 도시이다. 1703년 이전의 러시아 인들에게는 매우 생경하고, 그들의 정서에 부합하지 않는 도시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유럽으로 열린 창’이라는 별칭에서도 알 수 있듯이, 상트페테르부르크는 유럽을 향해 열린 창을 통하여 유럽의 문물을 받아들여 러시아 전역에 전달하는 창구역할을 아주 훌륭히 해 내었다. 상트페테르부르크가 없었다면 아마도 러시아는 후진국에서 벗어나지 못하여, 오늘날과 같은 강대국이 될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자 그렇다면 과연 이 러시아 속의 유럽도시에서 가장 유럽다운 곳을 든다면 어디가 될 수 있을까? 대학교, 음악원, 오페라발레극장, 성당 등을 들 수 있지만, 가장 첫손가락에 꼽을 수 있는 것은 바로 ‘에르미타쥐 박물관’ 일 것이다. 에르미타쥐 박물관에는 러시아적인 것을 별로 찾아 볼 수 없다. 왕가의 초상화 정도만 러시아적이라 할 수 있을 뿐, 그곳에 소장되어 있는 것은 모두 서양문명의 유물들이다. 이집트문명부터 입체파에 이르기까지 서양문명이 이뤄 놓은 것을 총망라하여 전시하는 곳이 바로 에르미타쥐 박물관이다. 우리는 에르미타쥐 박물관에서 서양인들이 이뤄 놓은 업적을 볼 수 있는 것이다. 대영박물관, 루브르박물관과 더불어 에르미타쥐 박물관을 세계 3대 박물관이라고 한다. 하지만 유물들을 수집한 과정을 보면 거기에는 적지 않은 차이가 있다. 대영박물관과 루부르박물관에 전시된 작품들의 상당수는 탈취된 것이다. 전쟁과 식민지 정복을 통해 탈취한 전리품들로 채워졌다는 말이다. 우리에게는 병인양요 때 프랑스 군대가 외규장각 도서를 훔쳐간 역사가 있다.5) 대영제국의 유물들은 더욱 말할 것도 없어서 훔쳐온 유물로 입장료 장사하는 것이 부끄러웠는지 최근 대영박물관은 무료 입장으로 전환되었다고 한다. 루브르박물관도 무료 입장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에르미타쥐 박물관은 다르다. 이곳에도 탈취한 유물들이 없지 않다. 하지만 대다수의 작품들이 구매 또는 기증받은 것으로 채워져 있다. 예카테리나 2세 때부터 20세기에 이르기까지 작품의 수집은 계속되었다. 러시아 로마노프 왕조의 권세가 얼마나 대단했는지를 짐작케 해 준다.

    에르미타쥐 박물관 작품의 대다수는 전술한 바와 같이 서양문명사에서 역사적 가치가 있는 것들이다. 따라서 우리는 에르미타쥐 박물관에서 러시아적인 것을 찾으려고 해서는 안된다. 오히려 서양 문명의 역사를 보려고 해야 한다. 우리가 러시아를 칭찬할 바 있다면, 이 훌륭한 컬렉션들을 한 곳에 모아서 감상할 수 있게 한 그들의 노력이다. 거기에는 이집트가 있고, 메소포타미아가 있다. 그리스가 있고, 로마가 있다. 중세가 있고, 르네상스가 있다. 지리상의 발견이 있고, 네덜란드의 황금시대가 있다. 인상파가 있고, 피카소가 있다. 이렇듯 에르미타쥐 박물관에는 서양문명의 역사가 가지런히 보존되어 전시되고 있다. 우리는 에르미타쥐 박물관에서 서양이 이뤄놓은 문명을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으며, 이는 서양을 바라보는 우리의 안목을 더 깊고 넓게 해 준다. 동양의 역사도 무시할 수는 없지만, 사실상 세계사라고 하면 서양사 중심인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우리가 동양의 역사를 아무리 좋게 보려 해도, 서양이 이뤄놓은 진보의 역사에 비한다면 인류사에 끼친 영향은 아무래도 미미하다. 서양의 발견과 진보의 역사가 아니었다면 오늘날과 같은 인류의 발전은 기대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동양의 정적이고 페쇄적이었던 과거를 반성하고, 21세기를 동양의 시대로 만들어 나가기 위해서는 서양이 어떻게 진보의 역사를 발전시켜 왔는지를 배울 필요가 있다. 동양적 평화사상 위에 진보의 역사를 받아들인다면, 장차 인류의 공존 공생에 크게 기여할 바가 있을 것이다. 19세기라는 아주 늦은 시기부터 한국은 서양을 배워왔지만, 그들이 이뤄 놓은 것을 눈으로 확인할 수는 없었다. 이러한 한국의 현실을 생각할 때, 외국에 나가서 박물관을 둘러보며 서양문명의 역사를 훑어볼 수 있다는 것은 그 자체로 큰 특권이라고 할 수 있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도 대영박물관과 루브르박물관에 견줄 만한 에르미타쥐 박물관이 있음을 기억하자. 이제 러시아에 오면 상트페테르부르크를 꼭 들러야 하고,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는 반드시 에르미타쥐를 봐야 한다. 에르미타쥐를 보지 않으면 러시아 여행의 절반을 놓친 것과도 같다. 다른 프로그램을 희생해서라도 에르미타쥐 박물관은 꼭 봐야 한다. 더욱이 서양을 배우고 극복해야 할 우리 한국인들에게는 더욱 더 그러하다.

    [참고 문헌]
    1. 『뉴턴에서 조지오웰까지』, 윌리엄 L.랭어 엮음, 박상익 옮김, 푸른역사 펴냄, 2006. p.114. “표트르대제와 서유럽”
    2. 『뉴턴에서 조지오웰까지』, 윌리엄 L.랭어 엮음, 박상익 옮김, 푸른역사 펴냄, 2006. pp.55~103. “네덜란드 공화국의 황금시대”
    3. 다음 백과사전, 검색어 “하멜 표류기” 검색 결과
    http://enc.daum.net/dic100/contents.do?query1=b24h1976a
    4. 『번역은 반역인가』, 박상익 지음, 푸른역사 펴냄, 2006. p.21.
    5. 다음 백과사전, 검색어 “외규장각” 검색 결과
    http://enc.daum.net/dic100/terms_trans.do?m=search&chset=euckr&query=%BF%DC%B1%D4%C0%E5%B0%A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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