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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책소개] 눈과 피의 나라 러시아 미술
작성자 : 이현희  작성일 : 2008-02-27  조회 : 1907
  • 가뭄에 단비와 같은 책을 만났다. ‘눈과 피의 나라 러시아 미술’이라고 하는 책이다. 글쓴이인 이주헌 선생은 미술평론가로서 유명한 분이다. 이미 유럽에 있는 미술작품에 대한 다양한 기행평론집을 출간한 분이, 유럽의 변방이라고 하는 러시아 미술에 특별한 관심을 기울였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매우 흥미롭다. 특히 Art travel 시리즈의 첫 작품으로서 러시아 미술을 선택했다고 하는 것은 ‘기대하지 않은 반가움’ 이라고 할 수 있다.

    유럽의 루블 박물관이나 대영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작품들은 이미 많은 미술평론집이나 번역물을 통해서 소개되고 있기에, 마음만 먹는다면 해외여행을 떠나지 않고도 감상이 가능한 상태이다. 하지만, 이주헌 선생이 책의 들어가는 말에서 ‘러시아 미술과 러시아 미술관에 대한 대중교양서가 워낙 드물었기 때문에...’ 라고 말한 대로, 읽음직하게 소개된 러시아 미술 평론집은 한국에 전무한 상태이다. 그나마 러시아 현지에서 판매되는 한국어 번역 책자들은 관광용이어서 가치가 떨어진다. 그 외에 러시아어나 기타 외국어로 쓰여진 작품집들은 평범한 한국인들로서는 쉽게 손이 가지 않는, 그야말로 그림의 떡인 것들이다. 이렇게 불모지와 같은 러시아 미술비평계에 한국어로 된, 그것도 깊이 있는 감상이 포함된 책이 발간된 것은 기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책은 러시아 미술관, 트레차코프 미술관, 에르미타쥐 박물관, 푸쉬킨 박물관에 소장된 작품들을 소개하고 있다. 작품 뿐 아니라, 작품을 소장하고 있는 박물관에 대한 간단한 유래와 연혁도 다루고 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특히 러시아 미술을 소개하는데 중점을 두었기 때문에, 러시아 화가들의 작품들을 전시하고 있는 러시아 미술관과 트레차코프 미술관에 더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 소개되고 있는 작품들로서는 ‘민중 앞에 나타난 그리스도-알렉산드르 이바노프’, ‘그리스도와 간음한 여인-바실리 폴레노프’, ‘진리가 무엇이냐-니꼴라이 게’, ‘이반 뇌제와 그의 아들 이반-일리야 레핀’, ‘폼페이 최후의 날-카를 브률로프’, ‘엘레우시니아의 포세이돈 축제의 프리네-헨리크 지미라즈키’, ‘백조 공주-미하일 브루벨’, ‘마을 위에서-마르크 샤갈’, ‘검은 절대주의와 사각형-카지미르 말레비치’, ‘어스름-바실리 칸딘스키’, ‘성모자-레오나르도 다 빈치’, ‘돌아온 탕자-렘브란트’, ‘로마의 자비-페터폴 루벤스’, ‘춤-앙리 마티스’, ‘테 아리 바히네(왕의 부인)-폴 고갱’, ‘말을 공격하는 재규어-앙리 루소’ 등이다. 책 말미에는 간추린 러시아 회화사, 러시아 역사, 그리고 이 책에 등장하는 작품들의 작가들을 소개하고 있다.

    이주헌 선생은 러시아 미술의 특징을 다음과 같이 요약하고 있다. “러시아 회화는 문학적인 특성이 강하다. 문학적 특성이 강하다는 것은 그림의 형식 못지않게 내용, 그러니까 주제와 이야기를 중요하게 다룬다는 것을 뜻한다. 이야기를 더욱 생생하고 실감나게 전하기 위해 회화 형식은 이를 뒷받침하고 고양하는데 종속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는 러시아 미술을 보는 한가지 방법을 알려주는 것이다. 그림을 보면 작가가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를 쉽게 알아차릴 수 있는 것이 러시아 미술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그 만큼 직관적이며, 친숙하게 다가오는 것이 러시아 회화이다. 이 한가지 포인트를 갖고 러시아 회화를 본다면 그림보는 것이 더 즐거울 것이다.

    이주헌 선생의 글은 한국인이 한국인의 정서에 따라 러시아 미술을 평론하였다는 데에 큰 의의가 있다. 김용옥 선생은 ‘제 아무리 훌륭한 논문을 써도 그 논문에 관련된 고전이 우리말로 번역되지 않으면 그 논문이 전개한 아이디어는 우리의 문화의 일부로 편입될 수 없다’고 하였다1). 이렇게 고쳐 쓰면 어떨까? ‘제 아무리 훌륭한 회화라 하더라도, 그 평론이 우리의 정서를 가지고 우리의 말로 씌어져 있지 않다면 그 회화가 전해주는 사상은 우리 문화의 일부로 편입될 수 없다’라고. 그러기에 이주헌 선생의 러시아미술 평론 작업을 매우 높이 평가하고 싶다. 이주헌 선생은 러시아 회화라는 미술언어를 한국어로 바꾸어 일반 대중에게 선사함으로써 우리의 문화를 한층 성숙케 하는 위대한 작업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일화가 있다. 한국 관광객들이 가이드의 안내로 미술관에 입장하여 어느 방에 들어갔을 때에 그 가이드는 여기가 00방입니다, 자 둘러 보십시오 라는 한마디로 멘트를 끝낸 반면, 그 방에 먼저 와 있던 유럽 관광단체는 한국팀이 떠난 이후에도 한 작품 주위에서 진지하게 가이드의 설명을 듣고 있더라는 것이다. 이는 미술감상에 대한 문화수준 차이를 극명하게 드러내는 이야기이다. 가이드를 탓할 수 없는 것이, 여행객의 수준이 곧 가이드의 수준이기 때문이다. 여행객의 전반적인 문화수준이 향상되지 않는 한 이러한 일은 러시아 뿐 아니라,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반복되어 일어날 것이다. 이주헌 선생의 소망대로 부디 이 책이 러시아 미술에 대한 작은 이해의 디딤돌이 되어, 이 좋은 작품들을 만들고, 모아 놓은 러시아인들에게 최소한의 예의는 갖추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참고 문헌]
    1. 번역은 반역인가, 박상익 지음, 푸른역사 펴냄, 21p,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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