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스라엘 역사상 최초의 왕은 사울이다. 그는 처음에는 겸손하고 용맹스러운 지도자였으나, 전쟁의 승리가 계속되고 권력의 맛을 보게 되었을 때에, 점차 백성 위에 군림하는 폭군이 되었다. 그리고 자신의 사위이자 라이벌이었던 다윗이 백성들 사이에서 인기가 치솟게 되자 여러차례 그를 죽이려 하였다. 이로 인해 다윗은 도망자 신세가 되어 전국을 떠돌기도 하고, 때로는 외국에 망명하기도 하였다. 이런 다윗을 도와주는 사람이 있었으니 다름 아닌 사울왕의 아들 요나단이었다.
요나단이 다윗을 도와준 것은 그를 사랑하였기 때문이다. 요나단이 다윗을 얼마나 사랑하였는지, 성경에는 이렇게 씌여 있다. “다윗이 사울에게 말하기를 마치매 요나단의 마음이 다윗의 마음과 연락되어 요나단이 그를 자기 생명같이 사랑하니라(사무엘상 18:1)” 사랑이라고 하면 남녀간의 사랑만을 생각하기 쉽지만, 세상에 사랑의 종류는 대단히 많다. 그 중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사랑은 바로 친구간의 사랑, 곧 우정이라고 할 수 있다. 예수는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다’고 했다(요한복음 15:13). 오늘 그림은 바로 이 위대한 사랑에 관한 것이다. 요즘처럼 개인주의적인 시대에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는 사람은 찾아보기 어렵다. 요나단과 다윗은 그런 우정을 나누었다. 요나단이 어떻게 이렇게 까지 다윗을 사랑하게 되었을까? 둘은 믿음없는 그 시대에 하나님을 진실히 믿는 유일한 두 사람이었다. 믿음의 내용이 같기에 둘은 서로를 깊이 이해할 수 있는 사이가 된 것이다.
그림은 이렇게 아름다운 우정을 나누던 요나단과 다윗이 이별하는 장면이다. 사울왕과 다윗 사이에서 중재역할을 하였던 요나단은, 사울왕이 이미 다윗을 죽이기로 마음먹은 것을 알고 다윗을 피신시키기로 한다. 서 있는 사람은 분명히 요나단일 것이다. 요나단은 왕자다운 차림을 하고 있다. 아마도 요나단은 다윗보다 연배가 위일 것이다. 요나단의 뒤에는 성이 있다. 이는 다윗을 죽이려고 하는 사울왕이 있는 곳으로서 요나단조차 돌아가기 싫은 곳이지만 돌아갈 수밖에 없는 괴로운 운명을 나타내고 있다. 무릎을 구부리고 요나단의 품에 안겨 흐느끼는 것은 다윗이다. 그의 옆에는 여행용 가죽부대가 널부러져 있다. 그리고, 다윗이 가야할 곳은 오른쪽으로 어둡게 그려진 숲이다. 다윗의 앞날이 얼마나 암울할 것인지를 암시해 주고 있다. 실제로 다윗은 사울왕이 전사할 때까지 사울에게 쫓기며 생과 사를 넘나드는 도망자의 삶을 살게 된다. 다윗이 흐느껴 우는 것은 아마도 목숨을 걸고 자신을 살려주는 요나단에 대한 우정과 억울하게 쫓기게 된 신세에 대한 한탄이 복합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요나단과 다윗은 서로 지켜주자고 맹세하고 헤어지지만, 안타깝게도 요나단은 사울왕과 함께 전사하고 만다. 비록 다윗은 요나단을 살아서 만나지는 못하였지만 둘의 우정은 성경에 남아 후세에 영원토록 기념되고 있다.
요나단과 다윗의 우정을 보며, 우리 남북한의 대치하고 있는 상황이 떠오른다. 과연 통일은 어떻게 이룰 수 있을까? 우리 주위에도 사울왕처럼 남북한 한쪽을 죽이지 못해 안달인 강대국들이 있다. 그러한 외부의 힘에 의하여 좌우되지 않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틀림없이 ‘하나의 믿음’이어야 할 것이다. 이는 남북한 서로간의 믿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각자의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말하는 것이다. 역사적인 말로 한다면, 함석헌 선생의 말을 빌어 ‘뜻에 대한 믿음’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뜻’이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말할 것도 없이 평화다. 더욱이 우리는 같은 민족이다. 서로 원해서 갈라진 것이 아니라, 공산주의, 자유민주주의 하는 이념의 세력에 의하여 강제로 나뉘어 진 것이다. 냉전이 끝난 이 시대에도 우리는 아직 나뉘어져 있다. 주변 나라들이 통일을 원하지 않는다면 마땅히 우리 스스로 통일을 이뤄야 할 것이다. 이는 ‘뜻’에 대한 믿음이 있지 않고서는 안된다. 역사의 뜻은 인류가 평화롭게 사는 것이다. 하나가 되는 것이다. 민족과 민족, 나라와 나라, 너와 내가 하나가 되는 것이다. 서로 같은 뜻을 갖고 있으면, 친해지는 것은 당연한 순서다. 먼저 같은 뜻을 같자. 같은 믿음을 같자. 그리고 서로 사랑하자. 누가 요나단인지, 누가 다윗인지는 중요치 않다. 먼 훗날 통일이 된 그 날, 전세계가 우리나라를 우러러 볼 것이다. 요나단과 다윗의 우정을 영원히 기념하듯이, 외세의 영향에 굴하지 않고 역사의 뜻을 이뤄낸 장한 민족이라고 길이 길이 한민족을 칭송할 것이다. 과연 우리는 이 큰 뜻을 이룰 수 있을까?
[참고문헌]
1. 사무엘상 제 18장 1절, 성경-개역한글판
2. 요한복음 제 15장 13절, 성경-개역한글판
3. 넷째 판에 부치는 말, 뜻으로 본 한국사, p.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