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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지역]  태국 푸켓여행- 깡통의 역사속 푸켓의 숨겨진 이야기
작성자 : 한재철  작성일 : 2024-06-05  조회 : 2121
  • 포르투갈인 바스쿠 다 가마(Vasco da Gama 1460년대~ 1524년 12월 24일)는 같은 포르투칼인 바르톨로메우 디아스(Bartolomeu Dias, 1450년대~ 1500년 5월 29일)가 1488년 희망봉을 발견 9년후 1497년 7월 8일 170명의 선원을 태운 4척의 함선을 이끌고 리스본의 벨렝항을 출항 1498년 5월 20일 인도 캘리컷에 리스본을 떠난지 316일(10개월 12일)만에 도착하며 인류최초로 서구에서 인도로 오는 인도양 항로를 개척했다.



     

    미얀마, 태국, 말레이지아와 세계에서 6번째로 큰 섬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사이 말라카해협은 해양교통요지로 서양인들이 인도양 개척후 본격적으로 아시아로 진출하는 통로 였으며 지금도 우리나라가 해양을 통한 수출품과 중동에서 수입하는 석유가 이곳을 통과하고 있다. 말라카해협 주변에는 당시 서양인들이 개발한 도시들이 남아 있다.

     

    16세기 초 포르투갈인 토메 피레스(Tomé Pires 1465년? ~ 1524년? 또는 1540년?)의 에는 당시 도시에 “62개의 나라에서 상인들이 모였고, 84개의 말을 하고 있다”고 기록되어 있을 정도로 말라카해협은 세계인들이 모이는 장소였다..

     

    우리에게 유명한 관광지로 잘 알려진 푸켓섬은 미얀마와 말레이지아 사이에 자리한 말라카해협 태국영토로 태국은 1511년 포르투갈 외교단이 아유타야 왕국과 접촉하며 서양과 이른시기 부터 관계를 시작했다.

     

    1800년대 전세계 주석생산량의 54% 정도가 미안마에서 태국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로 이어지는 반도에서 생산되었고 푸켓은 지리적으로 중심부에 자리해 있고 역사적으로도 서양인 도착전 부터 주석(tin ore) 광산이 발달해 있었다.





     

    말라카지역 진출이 빨랐던 포르투갈이 1583년 푸켓 탈랑 지역에 주석창고를 개설 운영하며 지역 주석시장을 독점하다 1626년 네덜란드가 주석 무역을 장악했으나 1667년 현지인들의 봉기로 네덜란드인들이 추방당하고 1680년 시암왕이 프랑스 선교사를 총독으로 파견 푸켓의 주석광산을 관리한다. 1685년 프랑스가 점령하였으나 다시 1688년 프랑스가 추방 당하고 1772년 영국인들이 진출하였다. 1826년에 앵글로-샴 버니 조약으로 영국과 자유로운 무역을 시작하였으며 1861년 부터는 샴왕실이 직접 운영하기 시작한다. 당시 주석채굴은 많은 중국인 인부들이 사금을 채굴하는 방식으로 손으로 큰접시와 물을 이용해 채굴 하였으나 점점 서양인들이 참여하며 동력을 이용한 대량 채굴방식으로 바뀌었다. 1809년 푸켓 중부내륙 현재 카투(Kathu)지역에서 새로운 광산이 발견되며 수천명의 중국인 노동자들이 대량 유입된다. 




    1907년 호주 선장 에드워드 토마스 마일스가 본격적인 주석광산회사(Tongkah Harbor Company)를 설립하고 세계최초의 해양 준설선을 이용한 주석채굴에 성공했다. 푸켓에는 1963년에는 최초의 용융공장을 건설하며 주석을 가공공장 까지 건설했으나 결과적으로 해양 준설선을 발전시킨 대형 주석생산 설비를 설치한 300개의 거대한 분화구 같은 주석광산이 개발되며 푸켓섬의 환경을 파괴하였다.



     

    1810년 영국에서 주석캔 용기(깡통)가 특허개발 음식을 장기간 부패하지 않게 보관하게 되면서 일상용품이 되고 동인도회사는 주석광산확보에 많은 투자를 하였으며 짜끄리 샴왕국 라마 5세는 영국기술자를 초빙 현대화된 주석광산업 관리 회사를 설립해 왕국수입을 증대시킨다.

     

    주석은 지금도 다양한 합금용도로 이용되고 있는 희귀금속으로 주석캔은 얇은 철판에 주석을 도금한 녹슬지 않는 양철판으로 만들고 발견되는 청동기유물들은 10%의 주석이 함유된 구리 합금이다.



     

    주석은 18 ℃ 부터 물성이 변하는 특성이 있는데 나폴레옹이 1812년 러시아 원정에 실패한 원인중 한가지는 당시 군복단추의 소재가 주석 이었는데 러시아의 혹독한 추위에 장시간 노출되며 단추가 바스러지는 현상으로 군인들이 방한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푸켓 주석광산에는 14세기전 부터 남중국에서 이주해온 노동자들이 많이 살고 있었으며 말라카해협에 발달한 식민도시들에는 오래전 남중국에서 말레인반도로 이주한 중국인과, 포르투갈, 네덜란드, 프랑스, 영국등의 혼혈 페라나칸(Peranakan)문화가 형성되었다. 대항해시대 서구식 부유한 도시로 발전했던 푸켓의 올드타운에는 페라나칸(Peranakan)문화가 잘 남아 있는 곳으로 중국 바로크양식으로 불리는 “Sino-Portuguese style” 건축물들이 그대로 보존 생활공간으로 이용하고 있어 특별한 관광자원이 되고있다.





     

    푸켓주민들은 정부에 주석광산으로 인한 환경파괴와 광산에서 나오는 독성물질로 발생하는 건강문제등을 이유로 광산개발의 중단을 지속적으로 요구하여 1973년 태국 관광청은 푸켓을 관광 주요 중심지로 발전시키겠다는 계획을 발표하고 1975년 정부는 광산채굴 허가를 취소 주석광산들이 폐쇄하게 되었고 1980년대부터 호텔 리조트등으로 개발되며 푸켓섬이 세계적인 관광휴양지로 재탄생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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