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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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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 존속했던 왕조들은 수백년씩 오랜기간 왕조를 유지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법과 제도 그리고 현재 발달한 통신수단은 효율적으로 국가를 운영하는 필수요소이다. 519년 존속한 조선왕조의 국정운영 시스템과 과거를 통해 배출된 우수한 인재들은 오랜세월 왕조를 지탱한 핵심이었다. 특히 과거에 급제한 인재들중 엄선해 임명한 종2품 관찰사(觀察使)를 각 지방으로 파견해 지방관청 행정, 사법, 군사 업무의 감찰 및 감사를 진행하고 현장 민심을 수집 중앙정부에 보고 국정의 올바른 집행을 보조했다. 권력이 막강했던 관찰사를 견제하기 위해 임기를 1년에서 2년으로 관리하고 출신 지역이나 친척이 있는 지역에 임명되지 않도록 상피제(相避制)를 운영했었다.

현재 우리나라의 경찰은 조선시대 관찰 제도를 일제강점기(1910년~1945년)기간
식민통치를 뒷받침하는 기관으로 오마와리상(お巡りさん) 즉
일본식 순사(巡査)를 도입하며 출발했다.
강점기 초기 1910년대는
군사적 성격이 강한 폭압적이고 강압적인 헌병경찰 활동이 이루어졌고 1920년대 부터는 외형적인 모습은
보통경찰로 조선 곳곳에 파출소와 지서를 설치해 치안 유지 및 감시, 독립운동 감시 탄압, 조선 총독부의 정책 집행, 조선인의 행동과 생활 방식을 일본의 이익에 맞게 사회 질서 통제, "밀정(스파이)"을 활용하여 조선인 간의 불신을 조장하고, 정보 수집을 체계화 하는 조직이 되었다.


해방 이후 일부 미군정과 정치적 혼란기를 맞이해
일제강점기 조선인을 억압, 감시하며 분열을 조장하며 근무했던 조선인 경찰관이 대한민국 경찰 조직에 잔류하게
되고 독재정권, 군사정권을 뒷받침 하며 오랜기간 일본식 경찰 문화와 관행이 이어졌다.

종로경찰서의 역사는 일제강점기부터 시작되었다. 1915년에서 1929년까지 옛 한성전기회사 사옥을 쓰고 있었으나
의열단원 김상옥의 폭탄투척으로 대한제국의 최고 법원이었던 평리원자리에 일제가 설치한 경성복심법원을 쓰게 되었다.
1945 국립경찰 창설후 낙원동 현 종로세무서부지에 창설과 동시에 개서했고 1948년 공평동
현 제일은행 본점으로 이전했다. 1957년 청운동 옛 SK재동
주유소 자리를 거쳐 1982년 지금의 경운동에 자리를 잡았다. 대한민국
정치1번지를 관할하는 종로경찰서는 현재까지 대한민국 정치적 사건의 중심이 되고 있다.

서울서대문경찰서 1945
국립경찰 창설과 동시 개서 1982 서대문경찰서 현청사 준공했었다. 서대문에는 일본제국주의가 1908년 10월에 경성감옥으로 문을 열어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이 탄압당한 현장 이었고 서대문형무소로 바뀐후 냉전시기 사상범, 독재시대 민주화운동자등을 수감하며 1987년 11월에 폐쇄될 때까지 80년 동안 감옥으로 사용된 역사적 현장이
있다.

전쟁의 폐허속에서 우리나라가 수출로 경제성장을 일으킨
역사의 현장인 구로구는 노동운동의 현장이었다. 1980년11월
03일 개서한 구로경찰서 1982년 9월 6일 현청사 준공했었다. 구로구는
90년대 한국-중국 수교후 1세대 조선족 동포들이 조국에 돌아와 터를 잡아 코리안드림을 성공시킨 현장이었다.

우리나라는 현재 세계인들이 즐기는 “K-Culture”로 새로운 도약의 기회를 맞이하고 있다. 서울의 주요지역 세곳 경찰서 신청사 건축공사가 동시에 한창이다. 멋진 신청사의 완공을 기대하고 더불어 시대에 맞는 경찰문화로 대한민국 도약의 기초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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