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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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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업자는 여행자와 세상의 만남을 안내한다. 여행업자는 여행자가 올바른 목적지에 안전하고 올바르게 도달하도록 돕고 그에 따른 수익을 얻는다. 목적지에 도달하는 동안 다양한 만남들을 관리하고 정리한다. 일상을 떠나 생전 처음 접하는 문화를 경험하는 것 만큼 여행이 여행자에게 주는 가치가 있는 것은 없다. 플래닛월드투어는 물리적, 지리적 만남도 중요하지만 보이지 않는 문화적 만남을 통해 여행자의 여행이 풍부해 지도록 노력한다.

우리나라 여권으로 비자 없이 192국가를 입국 할 정도고 약간의
경제적 여유를 가지고 있으면 세계최고수준 인천국제공항을 이용해 세계 어디든 언제나 갈 수 있으나 국제정치적 이유로 분쟁이 발생해 쉽게 갈 수 없는
국가들이 있다. 튀르키예 아나톨리아 반도에서 지중해변을 따라 아라비아반도 이집트에 이르는 지역은 역사속에
등장하는 많은 고대도시들이 자리하고 있으며 인류문명사속 주인공들이 활동한 매력적인 곳이다. 그러나 현재는
해결이 쉽지 않은 종교정치적 이유로 분쟁이 지속되고 있다. 유구한 역사 만큼이나 깊이 있는 문화유산과
정신문화가 남아 있는 곳이다.
현재 레바논의 브샤리(Bsharri)에서 태어나 다방면 예술적
재능을 가졌던 세계적 지식인 칼릴 지브란(Gibran Kahlil Gibran, 1883년 1월 6일 ~ 1931년 4월 10일)은 고향의
지리적 복잡성 만큼이나 일생을 복잡한 환경속에 살다 떠났다. 오스만 제국령 시리아 브샤리에서 지방 세금관리자였던
아버지에게 어머니가 아들 부트로스를 데리고 세번째 부인으로 결혼 지브란을 낳았다. 이어 여동생들 마리안나, 술타나를 낳았다. 아버지는 술과 도박 중독이었고 동방카톨릭 마론파
집안 출신 어머니는 오스만 제국 정치적 혼란기 1895년 6월 25일 아이들과 미국으로 이주했다.

독실한 신자였던 어머니는 지브란의 교육을 위해 1898년 15세 지브란을 레바논으로 보냈으며 1902년 5월 10일 이민자들의 통로 뉴욕앞 엘리스 섬을 통해 보스턴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곧 동생 술타나-> 이복형 부트로스-> 그리고 어머니까지 병으로 잃는 슬픈
가족사를 격는다. 1904년 5월 10일 지브란은 그림전시회에서 지브란의 예술적 능력을 인정하며 평생후원하는 열살 연상의 여인 메리 헤스켈(Mary Elizabeth Haskell, later Minis 1873년 12월 11일 ~ 1964년 10월
9일)와 운명적으로 만났다.
첫 만남을 통해 화가로 지브란의 미래 발전 가능성을 발견한 헤스켈는 지속적 후원을 하다 1908년 오늘날 약 2,000달러에 달하는 유학비를 매월 지원하겠다는
후원을 받아 들이고 프랑스 파리 미술유학을 떠나 몽파르나스에 거주하며 당대의 많은 예술가들과 교류하였다. 뉴욕으로
돌아온 지브란은 헤스겔에게 1910년 청혼 하지만 “I wanted to keep our friendship
enduring, and feared to spoil a good friendship for a poor love-affair.” 거절하였고, 1911년 두번째 청혼도 “My heart longs to be overpersuaded. Still I know in the end I should
not be persuaded.” 거절하였다. 둘은 평생 그들만의 방식의 사랑과 우정을
나누었다.

지브란이 태어난 현재 레바논공화국의 브샤리(Bsharri)는
고대부터 지중해 무역의 거점으로 페르시아 조로아스터교, 유대교,
300년대 카톨릭교, 600년대부터 이슬람교등 복잡한 종교적 배경과 이슬람세력이 비잔티움을
정복하고 아나톨리아 지역을 점령한 15세기부터 주도권을 행사하던 곳으로 오스만제국이 1차대전 패전후 1914년 세브르 조약에 따라 프랑스가 지역을 지배하다
1941년 11월 26일
프랑스로 부터 독립후 1943년 11월 22일 국제적 독립을 인정 받았다. 레바논 남부에 1948년 이스라엘이 국가를 성립하면서 현지까지 국제적으로 복잡한 종교, 정치
환경속에 처해있다. 현재 레바논의 인구 구성은 아랍인이 95%, 아르메니아인이 4%이며, 종교는 이슬람교 54%(수니파 27%, 시아파 27%), 기독교
40.5%, 드루즈교 5.5%이다.[7] 기독교는
마론파가 21%로 기독교인의 절반을 조금 넘고, 동방정교회가 8%, 멜키트 그리스 가톨릭 5%, 그 밖의 기독교 종파들이 6.5%를 차지한다.

1923년에 출판한 《예언자,
The Prophet》는 복잡한 인생사와 태어난 고향의 복잡한 정치환경속 살았던 지브란이 세상 사람들에게 작품속 예언자들 알무스타파(Al-Mustafa), 알미트라(Al-Mitra)를 통해 지혜를 전달한
대표작이다.
당신은 또한 삶은 어둠이라는 말을 들어 왔으며, 피로에 지친
당신은 피로에 지친 이들이 했던 말을 그대로 되풀이합니다.
나 또한 말해요. 삶은 진정 어둠인데, 열망이 없을 때만 그러하다고.
그리고 모든 열망은 앎이 없다면 눈먼 것이라고
모든 앞은 일 없이는 헛된 것이며.
또한 모든 일은 사랑 없이는 공허할 뿐이라고.
그러니 사랑으로 일할 때야말로 당신은 자신과 하나 되며,
또한 타인과, 종국에는 '신'과 하나 되는 것입니다. 55
당신의 이성과 열정은 그대 항해하는 영혼의 키이자 돛 당신의 돛이나 키 중 하나만 부러져도 당신은 흔들리며
표류하는 신세가 될 거예요. 아니면 한가운데 멈취 선채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가 되고 말겠죠.
저 홀로 다스리는 이성이란 오직 억제하는 힘에 불과하며, 방치된
열정이란 오직 자멸에 이르기 위해 불타오르는 불꽃에 불과하니까요
그러므로 당신의 영혼을 그대 이성의 높이까지 드높이세요
그래서 영혼이 노래하게 하세요.
친구에게 최선을 다하세요
혹 그가 당신이 썰물일 때를 봐야만 하겠다면, 그에게 밀물일
때의 모습도 함께 보여 주세요.
오직 함께 시간이나 죽이는 친구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늘 함께 살아 있는 시간을 느낄 친구를 찾으세요 친구란 당신의 부족함을 채워 주는 사람이지 공허를 채워
주는 사람은 아니니까요.
그러니 다정한 우정 속에서 웃으며 기쁨을 나누세요.
아주 작은 이슬 속에서도 마음은 자신의 아침을 발견해 내곤 생기를 되찾으니까요.
서양인들에게 잠자는 호랑이로 무섭고 막강했던 청나라가 멸망하는데 전국의 엘리트들이 모여 있는 조정도 관리를 못한 서태후라는 여인 한명이면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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