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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지역]  한국여행 추천 관광지 –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규장각 이야기
작성자 : 한재철  작성일 : 2025-04-25  조회 : 1299
  • 세계보건기구(WHO)가 2020년 3월 11일 코로나19 범유행(The COVID-19 pandemic) 선포후 2022년 3월 18일 공식적으로 종식 선언하기 까지 세계적으로 약 608만 명 이상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세계가 국경을 닫고 지낸 혼란스러웠던 2년간 일상은 세계인들 기억속에 다양하게 남아 있다. 일상으로 돌아왔으나 코로나 팬데믹 기간 스마트폰이 소비경제활동의 핵심도구가 되면서 다양한 배달문화가 정착되며 세계적으로 나타나는 사회현상은 서로 교류하며 소비하던 지역공동체가 해체되고 사회환경속에서 스마트폰을 통한 컨텐츠 소비가 폭발적 증가와 더불어 한국문화- Global K-Culture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며 우리나라는 새로운 기회를 맞이하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전 2019년 1,750만으로 최고에 도달 했던 우리나라를 찾는 외국인이 방문객은 일상적 여행이 가능하게 되면서 급속하게 회복되어 2024년 1,630만명에 도달했다. 개항후 세계최고수준을 유지해 오던 우리나라 관문공항 인천공항이 2017년부터 대대적인 확장공사를 시작하여 제4활주로 건설, 제2여객터미널 확장 등 약 7년에 걸친 4단계 건설사업을 통해 2024년 12월 3일 본격적인 운영이 시작되며 연간 여객 1억 6백만명, 화물 630만 톤을 처리할 수 있어 튀르키예 이스탄불, UAE 두바이에 이어 세계 3대 공항으로 확장되었다.




    영어권 개별적 방문객들은 단체버스로 움직이는 동남아 단체관광객들과 비교해 대중교통을 이용해 구석구석을 다니며 해당국의 문화를 좀더 깊게 경험하려는 욕구가 강하다. 우리나라의 발달한 대중교통 시스템은 단체관광 보다 급속하게 증가는 개별적 외국인 방문객들에게 좋은 이동환경을 보장한다. 우리나라가 가지고 있는 다양한 문화컨텐츠를 활용해 외국인 방문객들이 참여하는 수준높은 여행프로그램 개발이 필요하다.




    세계최고 수준의 우리나라 기록문화는 외국 방문객들에게 대중적 관심을 끌기는 어렵지만 깊이 있는 한국문화를 체험하고자 하는 영어권 방문객들이 충분히 관심을 가질 수 있는 관광대상이다. 우리나라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世界記錄遺産, Memory of the World)으로 훈민정음 (1997년), 조선왕조실록 (1997년), 직지심체요절 (2001년), 승정원일기 (2001년), 조선왕조 의궤(2007년)등 세계기록유산 (20건)을 보유하고 있다.




    여러 차례 외침과 내부적 환란속에서도 조선왕조는 효율적 제도를 활용하여 518년 왕조를 유지했다. 오랜기간 왕조를 유지한 통치제도중 조선중기 1776년 제22대 임금으로 등극한 정조가 설치한 왕실 도서관 규장각(奎章閣)은 임금을 보좌하고 실력있는 신하들과 국정과제, 정책등을 개발 국정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 나간 기관이었다.



     

    규장각 관원은 종2품 제학(提學) 2인, 정3품 직제학(直提學) 2인, 직각(直閣) 1인, 대교(待敎) 1인, 서얼 출신 학자중 선발 검서관(檢書官) 4인으로 구성되었으며 1782년(정조 6)에는 강화도에 분관 외규장각(外奎章閣)을 지어 효종대 이래 강화도의 내군기(內軍器)에 보관하여 온 역대 군주의 친필, 교명(敎命) 왕실의 족보인 선보(璿譜)등을 옮겼다.



     

    규장각이란 이름에서 규(奎)는 주나라시대 예법에 따라 이십팔수(二十八宿) 28수 별자리 중에서 문예와 지혜를 상징하는 규수(奎宿: 안드로메다자리 별)를 가리킨다. 학자나 잘 쓴 글씨를 비유하는 말로도 쓰였다.



     

    규장각의 출발은 세조 10년(1464)에 양성지(梁誠之, 1415년 ~ 1482년)가 건의하여 어제존각지소(御製尊閣之所) 설치로 부터 유래 하였으나 세조가 사망한 후 건물이 황폐화되자 숙종 20년(1694)에 세조가 친히 쓴 '규장각(奎章閣)'이라는 액자를 종정시(宗正寺)의 환장각(煥章閣)에 봉안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일제강점기 1928년부터 1930년 사이에 3차에 걸쳐 조선총독부 학무국에서 경성제국대학 부속도서관으로 이관된 책이 총161,561 책이었으며, 그 중 일반동양도서로 분류된 20,648책을 제외한 140,913책이 규장각도서로 지정되었다. 해방후 한국정부에 반환되었고 1975년 서울대학교가 관악으로 이전하면서 규장각 도서도 함께 옮겨졌다. 이 때 경복궁 회랑에 있던 교서관 소장 목판(木版) 17,800여 장이 함께 옮겨졌다. 그리고 도서관 안에 규장각 도서관리실을 따로 두어 규장각 도서의 관리를 맡게 했으며, 도서관 소속의 일반 고도서와 문고본 도서 등을 규장각도 서로 편입, 약 20만 권의 장서가 보관되어 있다.



     

    1866년(고종 3) 발생한 병인양요(丙寅洋擾) 당시 강화도를 점령한 프랑스군은 외규장각 건물과 소장도서 5천여 책을 방화 파괴하고 의궤(儀軌) 3백여 책을 약탈해 파리 국립도서관에 보관되었던 위 외규장각 의궤는 프랑스 고속철도(TGV) 기술을 도입할 때 반환 교섭을 통해 2011년 장기임대 형식으로 국내에 돌아와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조선왕조 왕의 일상과 국정을 기록한 실록 완질은 1,717권에 이르는 세계사적으로도 없는 방대한 기록으로 임진왜란후 1606년(선조 39년) 3부의 활자본 실록과 전주사고의 원본 및 교정본을 합한 5부의 완성된 실록은 재난에 대비하고자 금속활자로 간행한 3부는 각각 춘추관사고(春秋館史庫; 서울), 태백산사고(太白山史庫; 봉화), 적상산사고(赤裳山史庫, 무주)에, 임진왜란의 화를 면한 전주사고본 원본은 정족산사고(鼎足山史庫; 강화)에 교정본은 오대산사고(五臺山史庫, 평창)에 보관하여, 현재의 클라우드(Cloud)서비스와 같이 전국 5대 사고(史庫)에 분산하여 보존하였다.





     

    점점 증가하는 외국관광객에게 우리문화를 올바르게 소개하기 위해서는 우리 스스로 우리문화에 대한 깊은 이해와 학습이 필요하다. 관악산에 자리한 서울대학교 규장각은 누구나 쉽게 접근이 가능한 곳으로 세계사적으로 유래를 찾을 수 없는 우리의 우수한 기록문화를 자랑할 수 있는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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