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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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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촌은 조선왕조를 개국한 태조가 법궁으로 건설한 경복궁과 정종의 개경 환도후 태종이 집권하며 재천도 결정후 명령하여 건설한 고려시대의 전통양식을 이어 받아 북악산 자락의 지형을 따라 1405년 완공후 한양으로 돌아와 정궁으로 사용하였던 창덕궁 사이에 위치해 있다. 창덕궁은 임진왜란으로 경복궁이 재건되기 전까지 정궁으로 쓰여지는등 조선왕조에서 가장 오랜기간 정궁 궁궐이었고 “북촌”은 청계천과 종로의 윗동네라는 의미로 불리었다. 한국전쟁 피해후 대부분 지역이 양옥식으로 변한 서울에서 현재 가회동, 삼청동, 원서동, 재동, 계동 일대는 전통적 한옥(韓屋)건축 이 밀집으로 남아있는 지역이다.


특히 가회동 북촌 일대에 다양한 왕조를 거치며 변모해 왔던 한옥의 조선왕조 시대 전통건축양식이 밀집해 남아 있는데는 일제강점기 우리문화를 지켜낸 건축업자의 노력이 있었다. 경상남도 고성군 하이면 덕명리 출신으로 1910년~ 1912년 지역 면장을 지낸 정세권(鄭世權, 1888년 4월 10일~1965년 9월 14일)이 1919년 경성으로 이주 1920년 건축업자로 변신해 급속하게 잠식하는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의 서울 거주지 확대속에서 주택난을 격고 있는 조선인의 집단 거주지를 확보하기 위해 가회동 31번지 일대 고관대작들의 넓은 저택을 매입해 온돌로 방바닥을 데워 추운 겨울을 나고, 마루가 있어 여름을 시원하게 보낼 수 있고 부엌과 화장실을 신식으로 개선 전통한옥 구조를 “ㅁ”자 형 한옥구조에 집약한 대규모 도시한옥 단지로 개발하여 분양하며 북촌한옥 단지가 형성되었다.


한옥은 주춧돌, 기둥, 들보, 서까래, 벽, 문, 처마, 지붕(기와, 볏짚)등으로 집을 짓고 대문, 마당, 부엌, 사랑방, 안방, 마루, 외양간, 화장실, 장독대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세계인들이 우리문화 케이컬쳐(K-Culture)를
즐기려 찾아 오고 있으며 “북촌”은 거주민 보호를 위해17:00~10:00 출입을 통제 할 정도로 외국관광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룰 정도로 점점 방문객이 증가하고 있다. 우리문화의 가치를 제대로 교육받지 못했던 일제식민지교육을 받았던 선생님들부터 50~60년대 정규교육을 받았던 실버세대의 눈으로 보면 한옥은 대단한 관광자원이 아닐 수 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외국인에게 아름다운 한옥의 가치가 높아 가고 있다.

일제강점기 말살 하려던 우리말도 세종대왕
25년(1443년)에 창제 후 1446년(세종 28년) 자음 17자 모음 11자
28자 훈민정음 반포하고 31쪽의 『훈민정음 해례본』 발간했는데
크게 두 가지 부분의 설명서로 첫 번째는 세종대왕이 직접 쓴 ‘예의(例義)’ 부분으로 훈민정음을 만든 까닭과 각 글자가 어떻게 소리가 나는지를 밝혔고.
두 번째는 집현전 학사들이 쓴 훈민정음의 사용방법과 정인지가 쓴 서문이 ‘해례(解例)’ 부분이다. 이
책을 통해 훈민정음을 만든 사람과 만든 목적, 사용방법 등을 정확히 알 수 있는 세계유일한 문자가 되었다. 그러나 공식문자가 아닌 백성들이 쓰는 언문(諺文)으로 불리며 1894년 11월
고종의 칙령으로 공문서가 한글을 이용한 한국어로 작성되기 시작하며 비로소 조선의 공용문자 지위를 획득하였다. 일제강점기
민족한글학자 주시경선생의 주도로 정서법 표준화를 위한 근대적인 연구가 시작되었고 1930년대에 주시경선생이 '한글'로 명명(命名)하였다. 누구나 쉽게 배우고 쓸 수 있는 훈민정음은 반포후 급속하게
백성속에 정착되어 우리의 글이 되었으며 세종대왕 부터 후대 임금들 또한 적극적으로 보급에 힘써 세계최고 수준의 인쇄술을 통해 대중적 보급에 노력하여
오랜 일제강점기 기간에도 생명력을 잃지 않았다.


현재 표준 한글은 기본 자음 14개
모음 10개, 겹자음(5개), 겹받침(11개) 자음 19개와 모음 21개로 구성되어 있으며, 총 40개의 자모를 사용합니다. 자모로
조합 가능한 글자 11,172자가 사용된다.

대불정여래밀인수증요의제보살만행수능엄경<大佛頂如來密因修證了義諸菩薩萬行首楞嚴經(諺解)>『능엄경』은 불교의 이치와 수행의 방법을 구체적으로 제시한
불교경전이자 불교입문교재이다

대한민국 사회는 현재 중요한 역사적 전환점을 앞두고 있다. 사회가 혼란스럽게 보일 수 있으나 뿌리깊은 나무가 바람에 흔들리지 않듯 역사가 깊고 문화적 수준이 높은 우리민족은
슬기롭게 어려움을 극복할 것이다. 점점 증가하는 외국관광객에게 우리문화를 올바르게 소개하기 위해서는
우리 스스로 우리문화에 대한 깊은 이해와 자긍심을 높이는 학습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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