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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지역]  한국여행 개화기 역사 상식 – 동학농민운동, 우금치전투 패배와 지도자의 능력
작성자 : 한재철  작성일 : 2025-05-07  조회 : 1389
  • 지정학적 위치로 외침이 많았던 한반도내의 역사만을 통해서 알 수 없는 사건들이 많이 발생했다. 지정학적 위치를 잘 활용한 지도자들은 평화로운 환경을 만들어 백성들이 풍요로운 삶을 즐길 수 있는 대평성대를 이끌었으나 주변의 정치환경 정보를 파악하지 못한 지도자는 백성들이 전쟁터로 끌려 들어가는 환란의 시기를 만들었다. 인적교류가 유일한 정보교환 수단이던 정보통신 이전 시대 정보교류에 상당한 시간차가 발생했으나 전쟁은 일반백성들이 대량의 외부정보를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현대 세계인들은 즉시즉시 주변상황을 공유하는 SNS(social networking service)를 통하여 지식정보를 교류하며 세상변화를 이끌고 있다. 현시대의 지도자는 세계사적 역사 흐름을 파악하고 국가번영을 이끌 수 있는 자질을 필수적으로 갖추고 있어야 한다.



     

    책은 인류지식을 대량으로 공유하는 도구로 종이는 중국에서 발명되고 전쟁을 통해 유럽으로 전파되어 현대 서양문명 발전의 원동력이 되었다. 668년 고구려의 멸망후 당나라 안서도호부 부도호 겸 사진 도지병사마 직책을 맡은 고구려 유민 출신 고선지장군이 총지휘관으로 중앙아시아 탈라스 강 근처에서 이슬람세력 연합군과 당나라세력 연합군 사이의 탈라스전투(Battle of Talas)가 내부 배신으로 당나라군이 751년 패하며 포로로 잡힌 제지기술자들이 현재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Samarkand)에서 종이를 생산하며 본격적으로 서양에 소개되기 시작했다.



     

    종이의 서양 전파와 교황과 군주들 그리고 신자들의 세속적 목표가 결합되어 면죄부(Indulgence)까지 판매하며 전쟁자금을 조달 카톨릭 국가들이 연합하여 이슬람 세력이 지배하던 성지 예루살렘을 되찾고자 1096년부터 1270년까지 벌였던 총 9차에 걸쳐 십자군 원정(Crusades)은 대부분의 실패로 귀결되며 유럽사회에 큰 변화를 가저온다. 1204년 프랑스 최초의 국왕 필리프 2세(Philippe II,1165년 8월 21일 ~ 1223년 7월 14일)가 영국 존(John, 1166년 12월 24일 ~ 1216년 10월 19일) 왕을 상대로 노르망디 공국 전역을 정복한뒤 1259년 12월 4일 프랑스 루이 9세 (Louis IX, 1214년 4월 25일 ~ 1270년 8월 25 )와 영국 헨리 3세(Henry III, 1207년 10월 1일 ~ 1272년 11월 16일) 사이에 노르망디 주권을 포기한다는 내용의 파리 협약이 체결되면서 프랑스 왕국 직할령으로 편입 되었다. 1215년 영국에서는 존 왕과 귀족들 간에 체결된 법의 지배와 왕권의 제한을 마그나 카르타(Magna Carta)를 선언한다. 중부유럽 신성로마제국 황제 공백기 대공위(Interregnum, 1254년 ~ 1273년)의 정치적 혼란기를 맞이했다. 이베리아 반도(스페인/포르투갈 지역)에서 8세기 이슬람세력이 지배하며 시작된 카톨릭 세력회복 레콩키스타(Reconquista)운동은 1212년 라스 나바스 데 톨로사 전투(Battle of Las Navas de Tolosa)를 통해 카톨릭 세력이 영토를 회복하는 결정적 계기를 마련하고 1492년 1월 2일 그라나다 이슬람 토호국이 항복(The Surrender of Granada) 하며 약 800년간 지속된 이슬람 세력의 이베리아 반도 지배가 종료되었다.



     

    13세기 서유럽은 중세 봉건 질서가 정점에 이른 시기였지만, 동시에 교황권을 벗어나 국왕권 강화와 행정적 통일을 통해 근대 국가의 전단계로 나아가는 중요한 시기였다. 1309년 클레멘스 5세가 교황청을 아비뇽으로 이전하며 약 70년간 프랑스 프랑스 출신 7명 교황이 카톨릭을 지배한 “아비뇽 유수(Avignon Papacy, 1309~1377)” , 14세기 후반 이탈리아에서 시작되어 16세기까지 유럽 전역으로 확산된 문화적, 예술적, 지적 부흥운동 "르네상스(Renaissance)", 16세기 초반 유럽에서 일어난 기독교 교회의 개혁 운동 “종교개혁(Reformation)”, 1534년 “수장령 (Act of Supremacy)” 영국 성공회 탄생등 서유럽 민족국가들이 탄생하며 시작된 대항해시대는 국제정보가 부족했던 전세계 많은 민족들에게는 “고통의 시간”의 시작이었다.





     

    한반도와 긴밀한 관계의 중국대륙은 제1차 아편전쟁(1839년 ~ 1842년)으로 난징조약 체결 (1842년 8월 29일)로 광저우(광주), 푸저우(복주), 닝보(영파), 샤먼(하문), 상하이 등 5개 항구 개방과 홍콩섬 영국 영구 할양,  영국 상선 애로우호 사건(1856), 프랑스 선교사 오귀스트 샤팽 신부 피살 사건(1856)으로 외세에 문호 개방과 외교관 베이징 상주를 허용하는 1858년 텐진조약 체결하고 이를 이행하지 않아 발생한 2차 아편전쟁(1856년 ~ 1860년) 북경 함락후 1860년 베이징 조약으로 서양에 개방되었다.



     

    한반도에서 발생한 13세기후 이민족 침략 전쟁 몽골 고려 침략(1231년 ~ 1259년), 왜 임진왜란·정유재란 (1592년 ~ 1598년), 만주족 정묘호란(1627년), 병자호란 (1636년), 일본제국주의 (1910년~1945년), 중소 연합군, 유엔 연합군 한국전쟁 (1950~1953)






    1866년 병인양요

    프랑스 소총 Fusil modèle 1866 분당 7~14발 최대사거리 1,600m

    "우리의 샤스포 소총은 놀라운 효과를 발휘했습니다!

    야포 Canon de campagne de 4 modèle 1858 포격거리 1,480m







     

    1871년 신미양요

    미군 소총 Springfield Model 1866 분당 8~10발 유효 사거리 약 370m

    권총 Colt Army Model 1860 6년발 유효 사거리 68.6m

    야포 Rifled Cannon 포격거리 1,737m

    기관총 Gatling gun 분당 약 200발 1,220 meters







     

    1894년 10월 28일 우금치 전투(牛禁峙戰鬪)

    동학군 무장 서면 백산(白山) 앉으면 죽산(竹山)

    일본군 소통 Murata Rifle 분당 15~20발 유효 사거리 1,800m

    기관총 Gatling gun, Maxim Gun 분당 600발 사거리 2,000 meters

    야포 Krupp Field Gun 유효사거리 4.6 km

    동학군 전사자 약 3,000~5,000명 추정 (일부 기록은 10,000명 이상 추산)

     

    “헌병은 메이지(明治) 40년(1907) 10월, 즉 소관이 처음 명을 받아 800명의 헌병을 거느리고 한국으로 올 당시 육군대신 데라우치(寺内) 대장 각하는 한국주차헌병의 조례에 의하여 한국의 경찰(치안유지)은 헌병이 주로 이를 담당하고, 한국 경찰을 사용하여 그 목적을 이루도록 훈시하였습니다.” 일제 한국주차헌병대사령관 아카시 모토지로(明石元二郎) 1909년 8월 2일 친필서한 중

     


     

    조선총독부 경무총장과 타이완총독부의 제7대 총독(1916년 ~1919년)을 지낸 아카시 모토지로(明石元二郎, 1864년 9월 1일 ~ 1919년 10월 26일)는 1902년 옛 러시아 제국의 상트페테르부르크 일본 제국 외교무관으로 근무하다 러일전쟁(1904년 ∼ 1905년) 기간 국가 예산의 2억 3,000만 엔 중 100만엔 이라는 막대한 공작 자금을 지원 받아 러시아 제국내의 정치환경 혼란을 조성하고 첩보활동을 통해 일본 제국 승리의 발판을 만들었다. 일본제국은 1920~30년대 대중 매체로의 성장한 라디오를 적극 활용하여 점령지 식민지 국민들은 상대로 일제 주도의 대동아공영권(大東亞共榮圈)을 합리화 하는 선전방송을 하였으며 2차 세계대전중에는 도쿄 로즈(Tokyo Rose)로 불리는 일본 여성 출연자들이 등장하는 제로 아워(The Zero Hour)를 통하여 심리전을 전개했다.



     

    현대전쟁은 용맹만으로 이길 수 없다! 현재전쟁 승리의 요인은 첨단무기와 더불어 정보, 심리등 다양한 요인이 작용한다. 과거를 알기 위해 역사를 배우는 것이 아니다. 미래를 알기 위해 역사를 배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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