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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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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국가를 방문하였고 역사 공부해 오는 여행업자로 느끼는 21대 대한민국 대통령선거는 서구에서 90년초 무너진 냉전시대를 벗어나 한반도 미래 100년의 전환점에서 치뤄진 중요한 국민의 선택이라는 의미가 있다.

오랜기간 일본제국주의 식민지 상태에 놓였던 한반도는 1945년 8월 14일 일본이 연합국에 통보하고, 녹음된 쇼와 천황(昭和天皇,
1901년 4월 29일 ~ 1989년 1월 7일)의 8월 15일 낮 12시 포츠담 선언의 수용을 발표한 일본 항복(Surrender of
Japan)을 통해 해방을 맞이했다. 9월 2일
도쿄만 요코하마 미국 전함 USS 미주리 (BB-63) 선상에서
일본 대표 시게미쓰 마모루(重光 葵, 1887년 7월 29일~1957년 1월 26일) 외무대신이
정식으로 무조건적인 항복문서에 서명을 하며 제2차 세계 대전은 공식적으로 완전 종결되었다.

미국이 주도한 연합국의 최고 사령부(SCAP , Supreme
Commander of the Allied Powers)가 일본에 주둔하며 통치하다 한국전쟁 발발후 1951년 9월 8일 일본을
포함한 48개국이 미국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Treaty of San
Francisco)을 체결 1952년 4월 28일 발효되며 일본은 약 6년 8개월만에
독립되었다. 해방후 한반도는 국제적 정치환경속에서 민주주의와 공산주의로 민족이 분열되며 1950년 6월 25일 ~ 1953년 7월 27일
한국전쟁이라는 동족상잔의 비극을 격어야 했다. 한국 군사 정전에 관한 협정(Korean Armistice Agreement)을 통하여 종전이 되어 현재까지 남북분단이 이어지고 있다. 한반도 해방과 한반도 종전협정 당시 대한민국은
당사자로 협상 테이블에 앉지 못하고 제3자의 위치에서 바라만 봐야 하는 국제적 위치였다.

2차 세계대전을 격으며 대부분의 산업시설이 파괴되었고 미국의 통치를
받던 일본은 한국전쟁이 발발하며 독립을 얻었고 한국전쟁 군수보급기지로 급속하게 산업시설을 복원하고 경제적 성공을 달성하며 1964년 도쿄 하계 올림픽으로 국제무대에 화려하게 복귀하였다. 이후
일본국민의 해외여행 자유화 이후 국제여행객이 급증했으며 1965년 한일 국교 수립 이후 한국은 일본
관광객의 주요 목적지 중 하나로 부상했습니다. 인바운드여행업(외국인
국내관광)은 한국전쟁후 잿더미위에서 경제를 일으키려는 군사정권의 외화벌이를 위해 호텔 및 카지노사업등에
투자하였다. 당시 서울의 3대 대형 요정(요릿집)으로 손꼽혔던 대원각, 선운각, 삼청각은 이시기 단체로 방문하는 일본관광객을 상대하는 소위 “기생관광”의 방문지로 알려졌다. 요정은 정부주도 고도 경제성장기 기업인들과
정치인들 또 여야정치인들이 모여 서로의 이익을 논의하던 밀실정치 장소로도 유명했다. 이러한 요정들은
1990년대 초까지 그 명맥을 유지 했었다.
일본제국주의에서 해방되고 올바른 식민지역사 청산없이 곧바로 격은 한국전쟁으로 혼란한 정치환경과 장기간 군사독재
경험으로 현재까지도 일부정치 지도자들은 요정정치로 대변되는 밀실정치와 식민사관 바탕의 냉전시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제는 역사의 뒤안길로 들어간 서울의 3대 요정들의 발자취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먼저 가장 먼저 오픈한 대원각(大苑閣)은 조선시대 함흥권번 출신으로 정통적인 기생수련과정을 밟은 “진향”이라는 여인의 삶과 관련이 있다. 그녀는 22세에 첫손님으로 함흥 영생고보 영어선생으로 1936년 부임한 25세 함경도 정주 출신으로 평안북도 정주 출신 민족시인 백석(白石, 본명: 백기연 白夔衍, 1912년 7월 1일~1996년 1월 7일)을 만나 연인으로 지낸 것으로 알려진다. 백석은 “진향”에게 “자야”라는 아명을 지어줬으며 해방후 곧 남북의 철도가 단절된 상태에서 북에서 머물다 생을 마감했다.

“자야”는 한국전쟁중 1951년 피난지 부산에서 요정을 개업해 많은 돈을
모았으며 전쟁후 그녀는 매물로 나온 성북동 산골짜기 한식당 청암장을 당시 650만원에 인수하여 유명한
요리집 대원각으로 바꾸어 경영하였으며 소속직원들에게 많은 혜택을 나눠준 것으로 알려지고 KAIST에도
100억이 넘는 장학금을 기부했다. “자야” 본명 김영한은 범정 스님의 《무소유》 설법에 감화되어 오랜기간에 걸처 요청
1995년 7,000평 땅과 부속건물을 법정 스님이 시주로 받아드려 1997년 길상사로 재탄생해 현재 도시속 대중들의 휴식처가 되었다.


선운각(仙雲閣)은 조선왕실 가옥터에 1967년 현대건설 고(故)정주영 회장에 의해 전통한옥으로 건설되었고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의 내연녀로 알려지는 장씨 여인이 정재계 인사들이 찾는 최고급 요정으로 운영하였다. 요정에는 당시 일반인들은 상상하기 어려운 해외여행까지 다녔던 접대여성 정인숙 있었으며 그녀는 1960년대 후반 미혼인 상태로 아이를 출산하였고 당시 정권 최고위층의 아들이라는 소문이 돌아 세간의 큰 스캔들이 되었다.

정인숙(鄭仁淑, 당시 25세)은 1970년 3월 17일
밤 11시경 서울특별시 마포구 합정동 절두산 부근 강변3로에서
교통사고를 가장된 총격 암살되며 박정희 정부 시절에 벌어진 대표적 의문사로 남아 있다. 선운각은 1979년 김재규의 박정희대통령 시혜사건 이후 중앙정보부의 영향에서 벗어나 민간인에게 넘어갔으며 1986년부터 사업가인 김일창씨가 인수한 후, 한정식집 "고향산천"으로 운영되었으나 경영실패로 2000년 7월 경매로 포천 할렐루야 기도원(김계화 원장)으로 넘어가 현재는 계열회사 주식회사 수련하다가 한옥카페로
운영중이다.


아름다운 북한산자락에 위치한 기구한 운명을 간직한 아름다운 한옥건물 선운각은 구한말을 배경으로한 tvN 드라마로 2018년 7월 7일부터 2018년 9월 30일까지 토일 방영한 《미스터 션샤인》 촬영지로도 유명한 곳이다.

삼청각(三淸閣)은 1972년 남북적십자 서울회담을 앞두고 중앙정보부가 감독하며 군 공병대를 투입 서울특별시 성북구 성북동에 산자락 6,000평을 다져 택지로 만들고 1년여만에 완공했다. 당시 라이온건축사무소 정재원씨가 모든 건물을 설계하고 대목장 정대기, 박광석씨 등이 한옥 목조건축 4채와 현대건설이 콘크리트 한옥 3채를 시공했다.



남북적십자회담 만찬장소 및 제2차 본회담(1972.9.12-16, 서울), 제4차 본회담(1972.11.22-24, 서울), 제6차 본회담(1973.5.8-11,
서울)등과 한일회담의 막후 협상장소로 이용하였던 곳으로 삼청각은 여야 고위정치인의 회동과
1970년~1980년 제4공화국
유신시절 요정정치와 일본관괭객 상대 접대관광의 상징이었다. 중앙정보부 영향을 벗어나 1990년대 중반 이름을 ‘예향’으로
바꾸고 일반음식점으로 전환하였으나, 경영난으로 1999년 12월에 문을 닫았다. 1999년 말 건물과 부지를 인수한 화엄건설(주)이 고급빌라를 짓기 위해 관할 성북구청에 건축허가를 신청하였으나
유보되었고 2000년 5월
22일 서울특별시가 삼청각 부지와 건물을 도시계획시설상 문화시설로 지정 2001년 1월 30일 최종 인수 완료하고
2001년 10월 새로운 전통 문화공연장으로 문을 열었다.
2005년 8월부터 2009년 7월까지 파라다이스 그룹에 위탁 운영하였으나 재단장후 2022년 6월 27일부터는 서울시가 운영한다.

빠르게 변해온 우리나라 근대사속 기구한 역사를 격었던 아름다운 전통한옥의 자태를 자랑하는 역사속 요릿집들이
서울의 자연속에 살아 남아 있다. 대한민국은 이제는 스스로 역사속 당사자로 자리를 잡아가야 하는 시대의
전환점에 있다.

2. CHAPTER II TERRITORY
2.1. Article 2
(a) Japan recognizing the independence of
Korea, renounces all right, title and claim to Korea, including the islands of
Quelpart(제주도), Port Hamilton(거문도) and Dagelet(울릉도).
시대가 변하여 우리나라는 전세계에서 가장 정보가 빨리 전파되는 국가가 되어 이제는 국민들이 정치 하는 시대가
되었다. 현장에서 배우는 올바른 역사스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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