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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지역]  인바운드 여행 역사 이야기 – 지봉 이수광, 비우당기와 조선왕조 공무원
작성자 : 한재철  작성일 : 2025-11-24  조회 : 942
  • 조선왕조는 태조 이성계(太祖, 李成桂 1335년 ~ 1408년)가 1392년 7월에 건국하여 1910년 8월 29일 제국주의 일본에게 국권을 강탈당할 때까지 총 518년 존속했다. 왕조의 마지막 1897년 10월 12일 대한제국을 선포했으나 이씨왕조는 지속되었다. 세계사에 이렇게 한 집안이 오백년을 버틴 왕조는 극히 드물다. 조선왕조가 오백년을 유지한 비결은 무엇일까? 가장 핵심은 군주를 보좌하며 왕조를 함께 경영한 관리들 즉 현대 공무원들의 우수한 자질이었다. 조선왕조 우수 관리들은 현대와 다르게 자신이 보임한 자리가 가지는 막강한 권한에도 불구하고 유교이념을 바탕으로 권력 사유화와 재물에 욕심을 부리지 않는 청빈한 삶의 청백리(淸白吏)가 바로 목표였다.  

     


     

    태종 이방원의 6세 왕실 자손으로 태어났고 우리나라 최초의 백과사전인 『지봉유설』의 저자 이수광(1563~1628)는 대표적 조선왕조 청백리였다. 이수광은 1585년(선조 18년)에 생원시와 진사시에 합격했으며, 1590년(선조 23년) 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며 관직에 진출했다. 관직에 있는 동안 막강한 권한을 가진 요직을 두루 거처 임금에게 직언을 하는 언관인 홍문관과 사간원, 사헌부 등 삼사(三司) 임금과 국정을 운영하는 비서실 승정원 동부승지, 우부승지 등, 현장에서 국정을 뒷 받침하는 장관 이조판서, 호조판서, 예조판서, 공조판서 등 육조의 요직, 임금의 정통성을 학문적 뒷받침하는 홍문관과 예문관의 대제학 그리고 중요도시를 담당한 특별시장급 강화부유수, 개성부유수, 한성부판윤등 요직을 거쳐 1627년 정묘호란시 병조판서를 마지막으로 관직에서 물러났다.

     


     

    1591년 28세 때 성절사(聖節使)의 서장관(書狀官) 

    1597년 35세 때 진위사(陳慰使)   

    1611년 49세 때 왕세자 관복(冠服) 주청 사절 

     

    이수광은 세 번에 걸친 명나라 수도 연경(燕京, 지금의 베이징) 사신 파견중 현지에서 다른 나라에서 온 사신들과 교류하며 파악한 각나라의 풍습, 문물등을 정리해 1614년에 백과사전 『지봉유설』을 완성 서양 문화와 천주교 교리를 소개하는 등 세계관을 넓히는 데 크게 기여하며 조선 후기 실학파의 선구자가 되었다. 두번 째 사신으로 갔을 때 당시 70세 안남 사신 풍극관(馮克寬, 1528년 ~ 1613년)과 교류하여 황제에게 받치는 「만수경하시(萬壽慶賀詩)」라는 시집의 서문을 써 주고 현재 베트남 안남에 조선의 문학이 소개되는 계기를 만들었다. 

    이수광은 임진왜란으로 소실된 가옥 대신 청빈한 삶을 사셨던 5대 외가 할아버지가 살았던 3칸 초당을 복원하여 사시며 지봉유설을 편찬했다. 다시 당호를 비우당으로 하고 초당을 짓는 글을 남겼다.

     


     

    동원비우당기[東園庇雨堂記]   ㅡ 지봉 이수광 지음

     

    나의 집은 흥인문 밖 낙봉 동쪽에 있다. 상산(商山)의 한자락이 남으로 뻗어 고개를 숙인듯 지봉(芝峯)이 있고, 그 위에 수십 명이 앉을 만한 넓은 바위와 십 여그루의 소나무가 비스듬이 있다. 서봉정(棲鳳亭)아래 백여 묘(畝)의 동원(東園)이 그윽하게 펼쳐져 있는데 이곳이 청백(淸白)으로 이름을 떨친 류관(柳寬)정승이 초가 3칸을 짓고 사셨다. 비가 오면 우산으로 빗물을 피하고 살았다는 일화가 지금까지 전해 온다. 이분이 나의 외가 5대 할아버님이다.

    아버님이 이 집을 조금 넓혔는데 집이 소박하다고 누가 말하면 우산에 비하여 너무 사치스럽다고 대답하여 듣는 이들이 감복하였다. 나는 이 집을 보전하지 못하고 임진왜란에 없어진 이 집터에 조그만 집을 짓고 비우당(庇雨堂)이라고 하였다. 비바람을 겨우 막겠다는 뜻이다. 우산을 받고 살아오신 조상의 유풍(遺風)을 이어 간다는 뜻도 그 속에 담겨있다.

     

     

    현재 재건해 놓은 비우당 초당 뒷편에는 자지동천(紫芝洞泉) 또는 자주동샘(紫朱洞泉)으로 불리는 작은 샘물터가 있는데 이곳은 세조에게 왕위를 찬탈 당하고 목숨까지 잃은 비운의 왕 단종의 왕비 여산송씨 정순왕후가 서인으로 강등되어 동대문 밖 청룡사 부근에 초가를 짓고 머물며, 산에 많이 자생하던 자지초(紫芝草)를 이용 궁중에서 익힌 염색 기술로 옷감에 자주색 물을 들여 팔아 생계를 이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 곳이다. 

     


     

    “If you want to test a man's character, give him power. " by Abraham Lincoln ”권력을 줘 보면 인격을 안다”는 권력을 가진자의 속성을 표현한 유명한 정치격언이다. 최근들어 우리는 법원 재판 중계방송을 통해 대한민국 최고권력 집단에 근무하던 인물들의 인격 수준을 판단하는 기회를 가지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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