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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지역]  인도여행 마하라슈트라주, 아우랑가바드- 다울라타바드 요새(Daulatabad Fort)
작성자 : 한재철  작성일 : 2026-03-17  조회 : 803
  • 인도 마하라슈트라주 아우랑가바드(현 찻라파티 삼바지나가르) 인근에 위치한 다울라타바드 요새(Daulatabad Fort)는 12세기에서 14세기 초까지 인도 데칸 고원 지역(현재의 마하라슈트라 주 일대)를 장악한 힌두 세우나(Seuna 일명 야다바)왕조의 빌라마 5세(Bhillama V, 재위 1173년~1192년경)가 1187년경 최초로 축성 '신들의 언덕'이라는 뜻의 데바기리(Devagiri)로 불렸던 난공불락의성채(citadel)이다. 



     

     

     

    13세기 칭기즈 칸(Chinggis Khan, 1162?~1227)의 몽골제국의 출현후 14세기 중앙아시에서 유입된 이슬람계 델리 세번째 왕조였던 투글루크 왕조(Tughlaq dynasty, 1320~1414)의 제2대 술탄 무함마드 빈 투글루크(Muhammad bin Tughluq, 재위 1325~1351)는 이슬람식 군사 건축 기술을 도입해 데바기리(Devagiri)를 더욱 견고하게 확장후 1327년 델리에서 수도를 다울라타바드(옛지명 데바기리)로 옮기려 전 주민에게 이주 명령을 내려 약 1,100~1,500km에 달하는 이주 과정에서 수만의 노약자가 사망했고 옮겨온 고원도시는 결국 갑작스런 인구증가로 식수 부족과 북방의 반란 문제로 인해 2년 만에 다시 델리로 복귀 명령을 내려 또다시 수만의 노약자가 사망하는 정책적 실패로 왕조가 멸망으로 접어들었다. 


     


     

    당시 왕국을 여행한 이븐 바투타는 "눈먼 자와 절름발이까지 강제로 끌려 가다 죽었고, 델리에 개나 고양이 한 마리 남지 않았다"고 "이제 내 마음이 가라앉고 분노가 풀렸다."는 왕이 빈도시 델리를 보고 했다는 말을 기록을 남겼다. 축성과 수도 이전으로 막대한 재정을 지출해 금과 은의 부족 해결하기 위해 구리와 황동으로 된 토큰 화폐(Token Currency) 화폐를 발행했으나 위조 화폐가 대중화 되며 경제적으로도 대실패했다. 왕은 상당한 수준의 학문적 지식을 갖췄으나 돌변하는 성격과 독선적 정책으로 백성들은 "미친 왕" (Mad King), "현명한 바보" (Wisest Fool)로 불렸다.


     

    바라다리(Baradari): 요새 정상에 위치한 왕을 위한 정자로, 도시 주변 경관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치니 마할(Chini Mahal): 건물의 외벽을 장식했던 아름다운 중국식 청색 타일 치니(Chini)와 '궁전(Palace)' 또는 '대저택'을 뜻하는 단어 마할(Mahal)의 합성어로 과거 왕족의 궁전 유적이다. 무굴 제국(Mughal Empire, 1526~1857)의 아우랑제브(Aurangzeb, 재위 1658~1707) 황제가 골콘다 왕국(Golconda Sultanate, 1518~1687, 쿠트브 샤히 왕조 Qutb Shahi dynasty)을 정복하고 마지막 왕인 아불 하산 타나 샤(Abul Hasan Tana Shah, 재위 1672~1687)을 이곳에 12년 동안 유폐시켰다.


     


     


     


     

    찬드 미나르(Chand Minar):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세워진 약 63m 높이의 이슬람식 거대한 탑입니다.


     


     

    성채 정상 바라다리(Baradari)에 이르는 길에는 바위산을 깍아서 만든 혜자를 건너야 하고 바위산을 파서 만든 깜깜한 동굴길을 통과해야 하는 정복이 불가능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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