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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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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연자원이 부족한 우리나라 부모들 교육열은 세계최고 수준으로 알려지고 있으나 세계 총인구의 약 18%, 14억 7천 만명 인구 대국 인도의 빈부격차가 극심한 사회에서 신분상승 기회를 주는 인도 공과대학교(IIT) 및 국립공과대학(NIT) 진학을 위한 공학(JEE) 및 의대(NEET)등 명문학교 입학 시험 교육열은 상상을 초월한다. 서울 대치동은 우리나라 입시학원 성지로 잘 알려진 곳이다. 인도에는 인구 150만 명이 넘는 대도시가 핵심산업으로 사교육이 자리잡은 도시가 있다. 대한민국의 3.4배 크기의 라자스탄주의 자이푸르, 조드푸르이어 세 번째 도시 코타(Kota)는 입시산업을 기반으로 성장하는 경제도시이다.



우리나라는 1997년 IMF(The International Monetary Fund)로 부터 외환위기 국가부도를 막기위한 구제금융을 받는 계기로 산업계 전반에 큰 변화를 격었다. 코타가 교육도시로 변환되는 과정도 인도의 외환위기가 계기가 되었다. 코타는 1970~1980년대까지 섬유, 화학, 정밀기계 산업이 발달한 라자스탄주 최대의 공업 도시로 지역 대표 기업 JK 신세틱스(J.K. Synthetics)는 1962년 3월 첫 나일론 생산 공장(Nylon Plant)을 설립하며 성장해 약 30만평 단지에 노동자만 4,000~5,000명 까지 코타 대표기업으로 성장했으나 경제환경이 바뀌며 1983년 2,367명의 노동자를 무더기로 정리해고 하였고 1991년 인도 외환위기로 IMF로 부터 22억 달러 규모의 긴급 구제금융 지원의 조건으로 요구한 기업들 구조조정과 시장 개방, 경제 자유화 직격탄으로 1997년 9월 직장폐쇄 기업이 되었다.

코타를 최초로 입시학원 교육도시로 만든 인물 쿠마르 반살(Vinod Kumar Bansal, 1949년 ~ 2021년)은 JK 신세틱스 수석 엔지니어 였으나 희귀병 발병으로 생계를 위해 1981년부터 수학 가정과외 교습을 시작하였으며 1985년 그가 가르친 학생이 인도 최고의 명문대인 인도 공과대학교(IIT) 입학시험(JEE)에 합격한 소식에 전국에서 수많은 학생이 몰려들자 체게적인 교습법을 바탕으로 1991년 공식적으로 '반살 클래스(Bansal Classes)' 학원을 설립했다. 2000년 인도 JEE 시험에 전국 수석(Rank 1)을 포함해 상위 10명 중 무려 5명이 반살 클래스 출신으로 채워지는 경이적인 기록을 세웠다.

반살 클래스 출신 뛰어난 선생들과 외환위기로 폐쇄한 공장에 근무하던 우수한 이공계학교 출신들이 1980~90년대 새로운 학원들을 설립하며 코타에 전국적으로 학생들이 몰려 오자 공장 폐업으로 수입이 끊겼던 코타 주민들은 빠르게 빈집을 학생들을 위한 1인실 주거 분리형 독방 형태 PG(Paying Guest, 하숙)로 개조하고 메스(Mess)로 불리는 세가지 공동식당 , 호스텔 일체형 메스(In-house Mess), 독립형 가입식 메스(Commercial Mess), 티핀 서비스(Tiffin / Delivery Service), 독서실, 인쇄소등을 개업하며 제조업 도시에서 '교육 서비스업' 도시로 경제모델을 바꿨다. 매년 20만 명이 찾는 학원 문화 교육 도시 (India's Coaching Capital)로 성장 했으며 교육 산업 매출은 약 6,500억~7,000억 루피(약 1조 1,000억 원 이상)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신호등 없는 도시(Traffic Light-Free City) 코타! 도심 곳곳에는 교육적 영감을 주는 인물들의 동상들이 건립되어 있다. 중심 '비베카난다 차우라하(Vivekananda Chauraha, Vivekanand Circle)'교차로에는 19세기 영국 식민지 시절 전국을 주유하며 인도 젊은이들을 상대로 "일어나라, 깨어나라, 목표에 이를 때까지 멈추지 말라-Arise, awake, and stop not till the goal is reached."는 힌두교의 가르침을 외치며 영적 잠을 깨우고, 힌두교 철학과 요가를 전세계에 소개한 현대 인도의 가장 위대한 철학자이자 영적 지도자 스와미 비베카난다(Swami Vivekananda, 1863~1902)의 동상이 우뚝 서 있다.

인도 외환위기 발생의 요인으로는 정부 무능으로 인한 장기간 적자재정 그리고 1990년 8월 걸프전 발발로 유가 폭등과 약 100만명 중동 인도 근로자(Non-Resident Indian, 비거주 인도인)의 귀국으로 당시 본국으로 송금하던 연간 약 20억 달러에서 27억 달러의 외화송금 중단, 1990년 주요무역국 소련의 붕괴로 1991년 6월 인도의 외환보유고는 약 11억 달러 수준까지 축소되면서 국가부도 위기를 격었다.

인도정부는 국가부도를 막기위한 담보로 자국 보유 금괴 20톤을 1991년 5월 1차 스위스 취리히의 스위스연합은행(UBS)으로 수송 했으며 위기가 지속되자 2차로 1991년 7월 금괴 47톤을 영국의 영란은행(Bank of England)과 일본은행으로 수송했다. 경제가 빠른 속도로 안정세에 접어들자 인도 정부는 같은 해인 1991년 9월~11월 사이 대출금을 전액 조기 상환하고 저당 잡혔던 67톤의 금괴를 모두 안전하게 회수했다.


현재 아랍에미리트(UAE) & 사우디아라비아 중동에 약 900만 명 이상, 전세계 약 3천만명이 청소부 부터 최고급 IT전문가등으로 해외거주 하는 인도 근로자가 본국에 송금하는 외화 규모는 연간 약 1,380억 달러에 이른다.
우리국민들이 1998년 1월 5일부터 국가부도 위기 극복을 위해 약 4개월간 대대적인 금 모으기운동을 진행해 모은 총 약 227톤은 IMF 조기졸업의 발판이 되었다. 2025년 기준 우리나라 거주 외국인 근로자 100만 명의 연간 해외송금 규모는 약 35억 달러(약 4조 7,000억 원 이상)이다.

해외여행을 통해 배우는 진리 “선각자 한명이 세상을 바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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