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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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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은 독립을 유지하기 위해 런던의 화이트홀 궁전에서 1661년 6월 23일 역사적인 방위동맹 조약 화이트홀(Treaty of Whitehall) 일명 혼인(Marriage Treaty)조약을 영국과 체결한다. 이에 따라 포르투갈 국왕 주앙 4세(João IV, 1604년 3월 19일 ~ 1656년 11월 6일)의 딸인 브라간자의 캐서린(Catherine of Braganza, 1638년 ~ 1705년)과 영국 국왕 찰스 2세(Charles II, 1630년 ~ 1685년)가 1662년 정략결혼 한다.






스페인의 무력으로 부터 독립을 유지하려는 포르투갈은 군사지원을 얻는 대가로 당시 연간 예산의 30% 정도의 총 200만 크루자두( 약 금화 7톤)의 지급과 지중해 입구의 요충지 탕헤르(Tangier) 그리고 봄베이(Bombay, 현 뭄바이)등을 양도 받고 영국은 포르투갈에 보병 2,000명, 기병 1,000명, 그리고 이를 지원할 전함을 파견해 독립을 지원한다. 결국 포르투갈은 1668년 리스본 조약을 통해 스페인으로 부터 영구적 독립을 쟁취했다.




영국으로 시집간 브라간자의 캐서린운 포르투갈의 상류층 문화였던 차(Tea) 마시는 관습을 영국에 전파하였고, 그녀는 찰스 2세 사후 1692년 고국인 포르투갈로 귀환했다. 포르투갈로 부터 봄베이를 양도 받은 영국 왕실은 연간 10파운드(순금 약 80g)의 임대료에 봄베이를 영국 동인도 회사(EIC, East India Company 1600년 ~ 1874년)에 넘겨 인도 전역을 식민지화 하는 발판으로 만든다.



동인도회사는 봄베이 호니만 서클(Horniman Circle) 인근에 영국인 요새 내부 거주민들을 위한 사도 도마(St. Thomas)를 기념하는 성공회 교회 공사를 1676년에 시작해 1718년 크리스마스에 봄베이 최초의 성공회 교회 세인트토마스(St. Thomas Cathedral)를 봉헌 한다. 이후 교회는 봄베이 거리 원점 제로 포인트(Point Zero)가 되었다.




십자군 전쟁 부터 많은 전쟁이 발생한 중세 서양사는 복잡하지만 내용을 들어가 보면 국가간 정치적 전쟁이라기 보다는 집안끼리 왕위 계승에 얼킨 재산 싸움이 대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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