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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지역]  이집트 유적, 유물의 신비 - (12) 이집트의 상형문자 (Hieroglyphics)
작성자 : 오종권  작성일 : 2007-11-09  조회 : 1495
  • 이집트의 신전 전면의 벽은 꼭대기까지 半浮彫로 象形文字가 풍부하게 아로새겨져 있다.
    상형문자와 인물그림들이 균형 있고 아름답게 줄지어 새겨져 있는 모습은 그 자체가 하나의 장식품이다.
    그것은 고대의 중국이나 바빌로니아 처럼 이집트에서도 글쓰기를 배우는 사람은 그림 그리는 법도 배워야만 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따라서 그 나라의 모든 학식 있는 사람들과 승려들은 또한 어느정도는 예술가였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어떤 대상에 대한 생각을 그림으로 전달한다는 것은 원시인간들이 최초로 그리기 시작한 그림들로부터 자연스럽게 생겨난 산물이었다.
    그러나 이집트인들은 미개한 야만인의 수준에서 출발하여 점차 원시적인 문화로 발달한 것이 아니었다. 신화에 의하면 완전한 상형문자 체계를 발명한 것은 토트-Toht(지혜의 신)였다고 한다.

    이 신화는 그 대중적인 형태 속에서 역사적인 사실을 간직하고 있다.
    아틀란티스 대륙(섬)을 최후로 쓸고 간 마지막 홍수 직전에 나일강 기슭으로 이주해 온 아틀란티스의 후예들에게 내리는 하나의 완전한 계시로서 이 문자체계를 전해준 것은 토트(정확하게는 Tehuti) 라는 이름의 신인(新人), 곧 초인이었던 것이다.
    토트는 ‘사자의 서 < Book Of Death>를 쓴 사람이었다.
    그는 자신이 만든 상형문자 체계 속에 긴 부리와 죽마 같은 긴 다리를 가진 기이한 모습의 따오기로 표현되어 있다.

    비교 언어학의 연구결과는 상이한 언어들이 어떤 기본적인 모태언어로부터 파생되었고 그 모태언어 또한 원초적이고 우주보편적인 단일언어로부터 파생된 것 임을 나날이 입증해 내고 있다.
    이 언어들이 언젠가 그 원시 상형문자로 거슬러 올라가 추적되는 날이 오면, 감히 예측하건 데, 그 궁극적인 근원은 아틀란티스 시대에 기원한 것임이 밝혀지리라.

    고대인들은 상형문자가 “말하고, 상징하고, 감추다.”고 말했다.
    이것은 상형문자가 삼중의 의미를 지니고 있음을 뜻한다.
    첫째로 그것은 구어(口語)에 필요한 단순하고 일반적인 음성학적 임가를 지니고 있었다. 일반인들은 이 이상의 의미에 도달할 수가 없었다.
    둘째로 상형문자가 글을 쓰는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의미가 있었다. 즉, 문맹자의 구어가 파피루스나 돌 위에 문법적인 형태 속에 문자적 의미, 혹은 상징적인 표현으로 새겨졌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거기에는 오직 입문한 사제들에게만 알려지고 그들 사이에 비밀로 숨겨진 비교(秘敎)적인 의미가 담겨있었다.

    "신의 말씀" 이것이 이집트인들이 그들의 상형문자 체계를 일컬었던 이름, 혹은 표현 이었는데 그이유로 그것이 신에 의해서 그들에게 계시되었다고 믿었을 뿐 아니라 이 이상한 문자의 은밀한 의미가 대중들 앞에는 감추어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의미는 오직 비전에 입문한 사람들에게만 계시되었다.
    그리고 오늘날의 어떤 이집트 학자들도 (비록 훌륭히 번역해내긴 했지만) 상형 문자들의 대중적인 의미 이상의 것을 옮겨내지는 못하였다.
    왜냐하면 "신의 말씀"은 그 가장 은밀한 내용을 드러내 놓기까지는 영적이고 경건한 고찰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이집트의 비전의 입문 실 안에서 계시된 비밀을 이해하는 것 또한 동일한 것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고대 알렉산드리아에 살았던 한 입문자인 플로티누스*Plotinus*는 다음 글속에서 상형문자의 상징적인 본질을 암시해 놓고 있다.
    "이집트의 성현들은 엄격한 진리의 탐구에 있어서나, 혹은 그들이 제자들에게 개진했던 가르침에 있어서나 신전 안에서는 문자(말과 소리의 단순한 모방인)를 사용하지 않고 그림으로 그렸으며, 그 각각의 형상 속에 지식이나 지혜를 나누어 담는 방식으로 그 속에 사상을 제시해 주었다.
    그것은 진리를 결정화한 것이다. 나중에 스승이나 제자는 그 형상의 의미를 뽑아내고 그것을 말로써 분석하여, 그것이 그런 의미를 지니며 다른 것을 뜻하지 않는지를 깨우쳤다."

    실제로 동방의 다른 고대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이집트인들은 종교와 세속의 생활을 따로따로 구분한다는 것은 상상조차 하지 않았다.
    따라서 언어, 즉 쓰기와 말하기를 단지 의사소통의 수단으로서만 사용한다는 것도 상상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름이 마법적인 힘을 지니고 있다고 믿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그들은 그들의 상형문자 속에 비전의 방의 닫힌 문 안에서 전해졌던 신비로운 지혜의 원리를 상징화해 놓은 것이다.
    "인간을 거듭나게" 하는 사자의 서(死者의 書)에 의하면 이것은 高段 階 入門의 목표이다.
    죽음의 정복자인 거룩한 오시리스 앞에 인도되었던 자만이 세계에서 가장 완벽한 상징문자 체계인 상형문자의 긍정적인 의미를 설명할 수 있는 것이다.

    그 자신이 입문 자였던 헤로도토스는, "상형문자는 그 감추어진 의미가 지극히 신성하고 상징적인 문자이며 그 의미는 오직 높은 경지의 사제들에게만 알려져 있었다."는 것 이다.
    또 한 사람의 입문자 였던 암블리코스는,“이 신성한 상형문자가 다름 아닌 신들이 사용한 문자" 라고 말했다.

    이집트 상형문자의 감추어진 의미의 한 힌트를 던지고자 한다.
    "이집트 상형문자 중에 사람이 앉아있는 형상은 그 사람이 신과 동격의 존재로 분류됨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그것은 대게 이집트의 신격들의 이름 속의 일부로 들어 있어서 그들의 모습을 그린 초상 위에 쓰여있는 상형문자 속에 등장한다.
    그렇다면 이집트 인들은 왜 서있는 모습이 아니라 ‘앉아있는’ 모습을 그런 의미로 채택했을까?
    이 힌트는 독자들이 스스로 풀어보도록 남겨주고자 한다.
    그들의 신성한 영역에 필자가 함부로 침입하는 누를 범하지 않기 위함이다.

    위대한 이집트 학자들의 업적 (그들의 고유한 영역 내에서의) 은 그 모든 칭송을 받을 자격이 있다.
    그들이 아니었다면 (또한 운명의 도움이 없었다면) 신전 벽과 파피루스 경전들 속에 새겨져 있는 그 귀중한 의미들은 결코 옮겨질 수 없었을 것이다.

    운명이 이 발견에 끼친 지대한 공헌은 놀라울 정도이다.
    나폴레옹이 이집트를 침략하지 않았더라면 그 벽면과 경전들은 아직도 읽혀지지 못하고 남아 있었을 것이다.
    그의 침략으로 해서 고대 이집트 인들의 생활과 사상에 대한 이해의 길이 열렷다.
    학자들의 업적, 영적인 스승들의 메시지, 혹은 무역상들의 화물 짝 등을 위해 길을 열고, 때로는 그것을 파괴하는 것은 종종 군인들의 무의식적인 공로임은 역사가 의심의 여지없이 밝히고 있다.

    그리스가 이집트를 지배하면서부터 고대의 이집트 언어는 뒷전으로 밀려나기 시작했고, 지배자들은 그리스의 학문과 언어를 식자층에 유포시켰다.
    예컨대 조정의 중요한 관직은 그리스어를 통달한 이집트인들에게만 주어졌다.
    수많은 사제들을 수련시키고 이집트인들의 지식을 보존해 오던 곳인 헬리오폴리스의 고대 신학대학은 강제로 폐쇄시켜 버렸다.
    전통 언어를 남몰래 끈질기게 지켜나간 몇몇 사제들을 제외하고는 실질적으로 그리스 문자가 공용문자로 받아들여져 버렸다.
    또 기독교 시대가 열린 후 3세기 말에 와서는 전 이집트를 통 털어서 상형문자로 글을 쓰는 것은 고사하고 간단한 일상적 의미조차 읽어낼 수 있는 사람을 찾아 볼 수가 없게 되었다.

    1,500년의 세월이 흘러갔다. 상형 문을 해독하는 기술은 아직도 까마득히 잊혀져 버린 것으로 남아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폴레옹의 피리깃함(돛을 단 목조 군함)이 넬슨Nelson 제독의 코앞에서 알렉산드리아 항에 입항했다.
    그의 군대는 요새를 급조하고 참호를 파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 첫 장소가 나일강 입구 로젯타Rozetta 항 부근의 전략적 요충지였다.
    바로 이 곳에서 포병중위 부사르Bousard는 후일 상형문자의 해독에 결정적 열쇠가 될 귀중한 발견을 하게 된다. 성 줄리아St. Julien 요새의 기초를 파고 있던 그이 병사 하나가 땅속에서 검은 현무암 판석 조각을 발견하고 이를 파내었다.
    그는 오늘날 그 유명한 Rozetta Stone 이라 불리는 중요성을 이내 직감했다. 거기에는 프토레미우스 5세에게 서훈을 베푼다는 내용의 멤피스 사제단의 교령(敎會命令)이 3개 국어로 새겨져 있었던 것이다. 그리스어가 54줄로 새겨져 있었고 동일한 의미의 상형문자와 민중문자( Dometics)가 나란히 새겨져 있었던 것이다.

    이 돌은 유럽(영국)으로 보내졌고, 학자들은 그것을 토대로 연구를 시작했다.
    마침내 그들은 그리스 문자에 대응되는 상형문자를 추적해 내었다. 이 열쇠를 가지고 그들은 오랜 세월 동안 세계인들을 의문 속에 빠뜨렸던 파피루스와 명문들의 애용을 밝혀 낼 수 있었던 것이다.

    쟝 프랑스와 상폴레옹!!!!
    이집트 유적이 존재하는 한 우리는 그의 이름을 영원히 기억하리라

    ** 이집트의 신비 – 7. 이집트 고고학에 공헌한 인물들 – 참조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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