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카이로에서 720km를 내려오는 이곳 룩소르에서 고대의 정경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경관을 둘러 보노라면 애쓰지 않아도 어느덧 아득한 옛날 속으로 빠져들어가 버린다.
이 곳은 남부 이집트, 혹은 지도학자들에게 예전부터 불려왔듯이 상류 이집트로서 오늘날의 이곳은 옛날의 정경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고전 시대 이전의 수도였던
테베(Tebes)–호머의 말을 빌리자면,
"백 개의 관문을 가진 도성(都成)은 지금 사라지고 없지만 한때 이집트 신비사제 단의 본거지였던 카르낙 (Karnak 이 남아 있다"
오늘 날 카르낙은 이 지방의 진주 이다.
이곳 전역에 산재해 있는, 비록 폐허가 됐지만 여전히 위엄있는 신전들의 명성은 전 세계에 널리 알려져 있다.
이곳에는 현존한 이집트 최대의 신전인 아멘-라" 의 대 신전이 있다. 옛날에는 이집트 모든 신전들이 이곳에 복속되어 있었다.
북쪽의 종려나무 숲 위로 솟아있는 카르낙은 룩소르에서 3.4 킬로미터 내려가서 약간 더 내륙 쪽으로 들어가 있다.
사륜 마차를 빌려 타고 강변 길을 따라 내려가다가 오른 쪽으로 접어들면 버드나무(유카리스) 숲을 지나 갑자기 눈앞에 우뚝 솟은 거대한 사암의 탑문이 나타난다.
탑문 앞에는 양의 머리를 가진 스핑크스들이 좌우 두 줄로 나란히 정렬하여 마치 나로부터 사열을 받을 준비를 하고 있는 듯 조심스럽게 앉아 있다.
예전에는 이 스핑크스들이 카르낙에서 룩소르 대 신전에 이르는 길 위에 줄지어 세워져 있었다고 한다.
18미터 길이의 화려한 탑문은 매혹적인 장관을 연출한다.
비스듬한 측면과 둥그렇게 아치로 된 탑문 형태 속에서 건축rk들은 미끈하고 힘있는 표현양식을 발견했던 것이다.
정면에는 이 탑문을 세운 프톨레마이오스가 테베의 신들 앞에 제물을 바치고 있는 모습이 부조로 새겨져 있다.
안으로 들어서자 아문(Amoun)의 아들이라는 속설이 있는 독수리 머리를 가진 콘수(Khonsu=달의 신 =신전 안 뜰이 나온다. 밑둥만 남은 두 줄의 주랑(柱廊)이 중앙부를 차지하고 있다.
벽에는 아문라(Amoun-Ra) 신상을 싣고 나일강을 따라 룩소르로 떠가는 선단의 신성한 행렬을 묘사한 벽화가 그려져 있다.
콘수의 신성한 신전이 보관되어 있던 허물어진 성소가 있다. 성소에 접해 있는 내실의 동쪽 벽에는 얕은 부조로 조각된, 각기 별도의 테두리 속에 나누어진 일련의 그림들을 볼 수 있다.
가장 먼저 우리 눈에 띄는 것은 스핑크스의 모습이다. 다른 곳에서는 스핑크스의 모습을 보기가 힘들다.
첫 번째 부조는 람세스 4세가 아문트(아문신의 부인)여신 앞에 작은 조상을 바치고 있는 보습이다.
앞 쪽에는 한 아이가 웅크리고 있는데 다름 아닌 오시리스의 아들, 호루스(Horus) 이다.
그의 머리카락은 측면을 따라 내려져 있고, 태양과 뱀의 상징이 부착된 왕관을 쓰고 있다. 왼 손은 무릎 위에 놓여져 있고, 오른 손은 집게손가락을 다문 입술 위에 대어 침묵을 요구하는 모습이다.
그 뒤에 있는 것이 스핑크스의 형상이다.
아문트 여신은 람세스를 향에 오른 손을 뻗고 있다, 여신의 손에는 손잡이 달린 십자가 드려 있어 그 끝을 왕의 미간을 향에 곧바로 가리키고 있다.
이 장면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그것은 어떤 신성 불가침의 의식을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나 이것은 신전의 가장 거룩한 성소에 접해있는 벽 위에만 그려졌었다.
이 벽화의 깊은 의미는 특히 아문트 여신의 동작 속에 숨겨져 있다. 여신이 들고 있는 꼭지에 원이 달린 십자가는 입문 사제들이 "비전의 열쇠" 라고 부른 것이며 그것은 비전 입문을 받아들인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집트 고고학자나, 보통의 학자들에게는 그것은 단지 "생명의 열쇠" 라고 알려져 있지만...
이와 비슷한 모습의 조상들이 모든 신전의 성소와 비전 입문실 근처에 서있다.
작은 조상을 여신께 바치려고 들고 있는 왕의 모습은 그가 그것을 제물로 바치고 영원히 침묵을 지킬 각오가 되어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스핑크스는 언제나 말이 없다.
스핑크스는 고대의 입문 비밀을 지키는 법을 알고 있는 것이다.
고대 세계의 가장 권위 있는 입문 신전이었던 대 피라미드를, 스핑크스는 오늘도 묵묵히 지키고 있는 것이다.
두 번째의 그림은 그가 독수리 머리를 가진 장성한 호루스와 따오기의 머리를 가진 토트의 사이에 서있는 모습이다.
두 신은 람세스의 머리 위에 물병을 들고 있는데 물병에서는 물 대신 손잡이 달린 십자가가 그의 위로 쏟아져 내리고 있다.
토트는 지혜와 비전의 신이었다.
독수리 머리를 가진 장성한 호루스는 태양신이었다.
세 번째의 그림은 이제 지혜로운 입문자가 된 람세스가 다른 두 신의 인도를 받아 앞으로 나오고 있는 장면으로 신들은 그를 맞이하여 손을 잡고 그의 얼굴 앞에 십자가를 보여줌으로써 그 입문의 결과로 그가 그들(신들)과 동지가 되었음을 표현한다.
마지막 그림에서는 왕이 아문-라 신께 작은 조상을 바치는 광경이 묘사돼 있다.
손에 든 작은 조상은 머리에 깃털을 꽂은 신 –진리의 신–의 좌상이었다.
파라오는 이제 지혜를 얻었으며 그리하여 "진실한 목소리"로 자신의 삶을 진리의 제단에 바치게 될 것이다.
즉 그는 사념과 행위에 있어서 인간(백성들)의 삶을 지배하는 영적 법칙에 순종하여 살 것이다.
이제 우리의 발길은 서편에 서 있는 작고 아름다운 신전으로 향한다.
이 곳은 소수의 입문 자들의 일부가 그들의 지혜를 배운 곳으로 추정된다. 그것은 작기는 하지만 아마도 카르낙 신전 내에서 가장 중요한 곳인 것 같았다.
그곳의 현관 문설주에서 우리는 이 신전을 세운 프톨레마이우스가 오시리스 앞으로 인도되어 오는 모습을 그린 조각을 보게 된다.
문턱을 넘어서면 장방형의 주랑 현관이 있고 세로로 홈이 파지고 꽃잎 모양의 장식이 조각된 두 개의 미끈한 기둥이 조각이 풍부한 체색지붕을 받치고 있다.
기둥 머리에는 하토르(사랑의 신) 여신의 눈을 부라리고 있는 얼굴이 얹혀져 있다.
동편 벽에는 돌 창살이 있는 두 개의 작은 창문이 나있다.
그곳을 통해서 들어 오는 희미한 빛은, 위를 덮고 있던 세 개의 석조지붕이 없어져 버려 많은 양의 햇빛이 쏟아져 들어와 원래의 운치를 발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 곳을 지나자 작은 현관 전실이 있고 그 벽에는 선이 굵은 부조와 상형문자가 새겨져 있다.
스무 마리가 넘는 늠름한 코브라들이 아치형상으로 각 입구의 가로 대를 이루고 있다. 그 아래에는 날개 달린 태양의 휘장이 붙어 있어 육중한 장식물을 이루고 있다.
복도를 지나 작은 신당에 다다르면 그 측면에 하토르 여신의 모습과 함께 왕이 예배를 드리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반 부조로 뒤덮인 높다란 탑문이 발길을 세운다.
이 탑문은 또 하나의 탑문이 무너지진 사이에 서 있다. 입구에는 람세스 2세의 조상, 아문-라를 비롯한 신들의 조상이 서있다.
발을 탑문 안으로 들여 놓으면 눈앞에 열여섯 줄로 늘어선 기둥들의 장관이 펼쳐진다. 태양 빛이 일찍이 보지 못한 장관을 비춰주고 있다.
130개의 우뚝 솟은 기둥들이 따위에 강렬한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흰 기둥들은 마치 거인의 군대처럼 늘어서 있다.
기둥 둘레 또한 믿기지 않을 정도로 크다. 기둥의 둘레가 평균 9미터나 되었다. 9사람이 손을 쫙 펴서 기둥을 둘러서야만 서로의 손을 맞잡을 수 있는 크기이다.
건물의 폭은 90미터나 되어 거대한 돌기둥의 숲은 마치 괴물과도 같다.
가히 이집트적이라 할 만하다.
이 회랑의 대부분을 건축했던 파라오는 세티 1세(람세스 2세의 부왕이였다.
그는 바로 아름다운 아비도스 신전을 건축한 파라오이기도 하다. 이 회랑을 지은 건축가들의 강인하고도 힘찬 기상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다.
세티는 그의 거대한 작품이 완성 될 때까지 살지는 못했다.
결국 람세스 2세 대제가 미완의 사업을 이어 받아 아스완의 바위 을 깎아 옮겨와 기둥 꼭대기에 30톤의 처마도리 장식을 얹고 있는 어마어마한 기둥들로 바꾸어 놓은 것이다.
한 때 많은 사람들이 기도를 올리던 이 회랑은 원래 지붕이 덮여 있었으나 이제는 짙푸른 하늘이 쳐다 보인다.
그 큰 지붕이 제자리에 있을 때에는 홀의 내부는 매우 어두웠을 것이 틀림없다.
고대 건축가들이 만든 작품에 흠을 잡을 일은 아니지만 중앙이 볼록하고 튼튼한 기둥들이 필요 이상으로 너무 촘촘히 서 있는 것은 확연히 우리의 눈에 거슬린다.
좀더 신경을 썼더라면 훨씬 시야가 틔어서 전망이 좋았을 텐데... 나의 좁은 소견 일까?
모든 기둥들에는 온통 부조가 아로새겨져 있고 꼭대기에는 꽃 봉오리와 꽃 받침 모양의 육중한 기둥 머리가 얹혀져 있다.
곡선미가 아름다운 기둥 허리는 채색화와 상형문자로 덮여있고 처마도리와 벽면도 마찬가지였다.
아직도 선명한 색깔이 남아있는 채색화로 그려진 이집트의 신들과 왕들의 역사였다. 이집트역사에 미천한 우리들도 기둥 머리 장식이나 그림에 등장하는 인물-
세티 왕을 한 눈에 알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는 헬리오폴리스의 신성한 나무아래에 있는 토트신 앞에서 예배를 올리고 있었다. 히타이트를 정복한 후 전리품(레바논산 거대한 삼나무)을 지고 가는 히타이트 족을 앞세우고 승전마차를 몰고 사랑하는 조국으로 의기 양양하게 돌아가는 모습도 볼 수 있다.
그 외에도 수많은 사람들의 다양한 모습이 보인다.
남쪽 벽면에는 석판을 새겨서 벽에 박아 넣은 상형 문이 역사상 최초로 맺어진 조약의 내용을 기록하고 있다.
그것은 위대한 이집트의 통치자, 세티 1세의 용감한 아들, 偉大한
람세스 2세"와 크헤타(Kheta)족의 偉大한 족장, 메레사르(Meresar"의 아들인 히타이족의 왕, 크헤테사르(Khetesar"와의 사이에 맺은 조약이었다.
그것은 다음과 같이 기분 좋게 끝맺어져 있다.
"그들 사이에 영원한 평화를 약속하는, 평화와 우애의 조약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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