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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중국여행 추천도서- 국사 교과서가 가르쳐주지 않는 우리역사 조선상고사
작성자 : 한재철  작성일 : 2021-04-20  조회 : 1459
  • 학교에서 배우는 “국사”는 우리민족의 역사를 말한다. 그럼 우리민족은 어디서 온 것일까? 그리고 어느시대 부터를 우리민족이라 불러야 맞는 것인가?? 일제식민지 시대에 본격 시작한 식민지교육제도에서 우리민족의 국사는 한반도 이내로 한정하는 교육을 받았고 1945년 해방후에도 일제시대 교육자, 역사학자들이 교육계를 이끌며 우리민족의 국사는 한반도 이내로 한정해서 하던 일제시대 교육을 이어왔다.

    그럼 우리는 올바르게 우리민족의 “국사”를 가르치고 배웠을까??

     













     

    청해성, 티베트, 몽골, 내몽골, 한반도 북부 만주지역 즉 만리장성 밖의 지역을 여행하다 보면 중국대륙 중원과는 다르게 우리민족과 비슷한 풍습을 많이 발견 하게된다. 역사에 조금만 관심 있다면 당연히 왜 그런 것일까? 하는 궁금증이 생겨나게 마련이다.

    고구려가 신라-당나라연합에 멸망한 이후 잠깐의 발해왕조 시기를 지나며 우리민족은 중화민족의 영향하에 놓인다. 사회의 모든 분야가 중국대륙을 중심으로 생각하는 사대주의가 뿌리깊게 자리잡게 되었다. 그리고 개화기부터 특히 1910년 ~ 1945년 사이의 나라를 빼앗긴 일제식민지 기간 상상 이상으로 우리민족의 역사는 왜곡되고 지워지는 시간을 보냈다. 다행히 수 많은 선각자들의  잃어 버리 역사를 찾고 조각을 맞춘 노력과 희생으로 이제 다시한번 새로운 한반도시대를 앞두고 있다. 새로운 한반도시대를 대비하기 위하여 가장 먼저 우리민족의 “국사”를 바르게 바라 보고 교육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국사 교과서가 가르쳐주지 않는 우리역사 “조선상고사” 단재 신채호선생이 우리민족 “국사”를 중국고서, 일본, 우리나라의 다양한 서적에 나온 역사속 이야기들을 종합적으로 찾아낸 우리민족 “국사”책이다.

    나라를 잃은 우리민족이 세계를 떠돌던 시기 수 많은 애국지사들이 팔다리를 잃고 생명을 잃어 가며 나라를 찾기 위해 노력하였다. 잠깐만 이라도 단재선생의 일생을 돌아 보면 전세계없는 지식인이었고 영웅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단재선생은 조선총독부가 나라를 빼앗고 1912년 호적제도를 개편하자 일제의 호적에 이름을 올리지 않고 무국적자로 일제의 감옥에서 생을 마감했다. 1945년 일제 패망으로 해방뒤 들어선 정부가 일제 때 만들어진 호적에 올라 있는 사람에게만 대한민국 국적을 부여 하는 정책을 시행하여 2009년 3월 18일 서울가정법원이 신채호, 서일(대한군정서), 안무(국민회), 윤기섭(임시정부) 등 독립운동가 62명의 가족관계등록부(옛 호적) 창설을 허가하기로 결정하기 까지 100년 가까운 세월 동안 무국적으로 남아 계셨다. 그리고 2009년 8월 12일 단재 신채호 선생이 세상을 떠난 지 73년 만에 신채호 선생의 친손자인 신상원 씨(38) 아들 고 신수범 이름을 가족관계등록부(옛 호적)에 올렸다.

     















     

    단재 신채호 선생은 1880년 12월 8일, 대전광역시에서 태어 나셨다.
    1898
    년(19세)에 1905년, 신채호는 성균관 박사에 임명되었으나 낙향 후학을 양성
    1907
    년 황성신문 논설위원
    1907
    년 대한매일신보 주필
    1907
    년 안창호 주도 신민회 가입
    1910
    년 4월, 중국 망명
    1910
    년 연해주 해조신문 창간
    1911
    년 12월 권업회 조직 권업신문 발행
    1914
    년에 고구려 고적 답사
    1919
    년 임시정부탈퇴“이완용은 있는 나라를 팔아먹었지만, 이승만은 없는 나라를 팔아먹으려 한다”
    1919
    년 《신대한》주간신문을 창간
    1921
    년 1월, 북경 독립운동 잡지 월간 《천고》 창간
    1912
    년 《대동》(大同) 주간지 발행
    1924
    년 《조선상고사》(朝鮮上古史)
    1929
    년 5월 조선총독부에 의해 치안유지법 위반과 유가증권 위조 혐의로 10년형을 선고 받고 중국 대련시 여순감옥에 수감중 1936년 2월 18일 뇌일혈로 쓰러저  2월 21일 독방 감방 안에서 홀로 순국하셨다. 선생은 보증인을 세우면 병보석이 가능했으나 보증인 친척이 친일파라 병보석을 거절하고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서 순국하셨다.

    우리민족의 잃어 버린 역사를 찾는데 평생을 받치셨다. 특히 사대주의 사상을 기반으로 기록된 삼국사기, 삼국유사등 국내역사서와 중국의 각종 역사서의 문제점을 시대별 인물, 장소별로 파악하고 바로잡으며 《조선상고사》을 집필하였다.

    단재선생은 “역사란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 역사의 3요소는 “시간, 공간 그리고 인간”이다 .그리고 “삼국사기 고구려사 만번 읽는것보다 광개토대왕 비문 한번 보는게 낫다”고 말씀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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