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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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닛코 도쇼쿠에 이렇게나 많은 사연이
[도쿄에서 닛코까지 조선시대통신사 길을 찾다. ⑥] 도쇼쿠
린노지 단풍나무 앞에서 NHK 인터뷰를
쇼요엔을 나온 우리의 다음 행선지는 도쇼쿠다. 도쇼쿠로 가기 위해서는 린노지 삼불당(三佛堂)을 지나야 한다. 그런데 우리를 따라다니며 사진을 찍고 동영상을 촬영하던 NHK방송 기자와 시모츠케신문 기자가 인터뷰를 요청한다. 이에 우리 현창회 회장과 부회장이 인터뷰에 응한다. 기자들이 묻는 것을 요약하면 네 가지 정도다. 조선시대통신사 현창회는 어떤 단체인가? 어떤 연유로 이곳 닛코를 찾게 되었는가? 린노지 보물전을 보고난 소감은? 앞으로의 행선지는 어떻게 되는가?
이에 대해 회장이 먼저 개괄적인 답을 하고, 부회장은 좀 더 구체적인 답을 한다. 현창회는 조선시대 통신사로 일본에 온 사신들의 후손 모임이다. 닛코를 찾은 이유는 통신사 선조들의 흔적을 찾고 유품을 확인하기 위해서다. 이곳에서 효종의 친필과 악기를 보니 감개무량하다. 이들을 국내에도 적극적으로 일릴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다음 행선지는 가와고에 토진소로이 행렬 참가다.

이날 인터뷰 내용은 다음날(11월 11일) 아침 9시부터 NHK-TV에서 <조선통신사 자손들 닛코 방문>이라는 제목으로 방송되었다. 그리고 시모츠케신문(11월 11일자 28면)에는 <선조들의 연고지 추적, 조선통신사 자손들 닛코 시찰>이라는 5단 기사가 났다. 신문기사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조선통신사 후손회원 20명이 닛코에 있는 선조들의 유산을 보기 위해 린노지와 도쇼쿠를 시찰했다. 린노지에서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록된 조선통신사 관련기록과 악기를 살펴보았다. 이어서 오모테산도를 지나 도쇼쿠에 이르러 통신사가 가지고 온 청동제 조선종을 시찰했다. 황재하 회장은 ‘선조들의 길을 따라오면서 가슴이 뜨거워짐을 느꼈다.’ 이명훈 수석부회장은 ‘한일관계가 냉랭해지는 게 안타깝다. 양국 평화와 친선의 상징인 조선통신사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산도(參道)에 웬 사람이 이렇게 많지?
도쇼쿠로 이동하는 길은 린노지 서쪽 구로몬(黑門)을 나와 북쪽으로 이어진다. 이 길을 오모테산도(表參道)라 부른다. 완만하게 경사가 진 길로, 오른쪽에 린노지 호마당과 삼불당 사이에 소린토로 불리는 상륜탱(相輪橖)이 서 있다. 상륜탱은 자안(慈眼)대사인 덴카이 대승정이 1643년 이에미츠의 발원으로 히에이산(比叡山) 엔랴쿠지(延暦寺) 소린토를 모방해서 만들었다. 로케트 모양으로 높이는 13.7m다. 탱 중간에 발원문이 있다.
산도에는 사란들이 인산인해다. 단풍철이고 마침 주말인데다 밤에 야간조명도 켜지기 때문이다. 사당에 접근하면서 오른쪽에 도쇼쿠라는 표지석이 있고, 조금 더 올라가면 길 한 가운데 석조 도리이가 서 있다. 도리이 상단에 동조대권현(東照大權現)이라는 한자가 위에서 아래로 쓰여 있다. 동쪽을 밝힌 위대한 신이라는 뜻이다.
석조 도리이를 통과하면 왼쪽으로 웅장한 도쇼쿠 오중탑(五重塔)이 보인다. 체감비율이 적은 일본식 목조 오중탑으로 1648년 오바마(小浜: 후쿠이현 소재) 영주 사카이 타다가츠(酒井忠勝)가 봉납한 것이다. 화재로 소실된 것을 1818년 다시 지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오히려 절이 아닌 신궁에 탑이 있는 것이 특이하다. 그것은 신불습합이라는 일본 불교의 전통 때문으로 보인다.
산진코(三神庫)와 신큐샤(神廐舍)
이제 우리 일행은 표를 끊고 오모테몬(表門)으로 올라간다. 오모테몬 안으로부터가 신성한 구역이다. 그러므로 문 양쪽에 금강역사가 눈을 부릅뜨고 지켜 서 있다. 문을 들어서면 정면에 산진코가 있고, 왼쪽에 신큐샤가 있다. 산진코는 세 개의 창고로 봄과 가을에 이루어지는 센닌교레츠(千人行列) 축제용 의류와 장신구들이 보관되어 있다. 신큐샤는 말 그대로 신의 마굿간이다. 절반은 말을 위한 공간이고, 절반은 마부의 방이다. 그런데 말을 지켜주는 동물이 원숭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건물의 벽 상단에 원숭이 조각을 만들어 놓았다. 모두 8장면으로 원숭이의 일생을 표현해 놓았다. 그렇지만 이것은 사람의 일생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첫째 장면에서 엄마 원숭이가 자식 원숭이를 데리고 있다. 엄마는 세상을 살아갈 자식이 걱정이다. 두 번째 장면에서 세 마리 아기 원숭이는 친구들과 함께 논다. 가끔은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말아야 한다. 이 장면이 그 유명한 세 마리 원숭이(三猿)이다. 세 번째 장면에서 가끔은 혼자 외로움을 느낀다.

네 번째 장면에서 하늘을 우러러 보며 큰 뜻을 품기도 한다. 다섯 번째 장면에서 슬픔에 고개를 숙이기도 하지만 위로해 주는 친구도 있다. 여섯 번째 장면에서 어떻게 살아갈지 걱정도 하고 고민도 해 본다. 일곱 번째 장면에서 좋은 짝을 만난다. 여덟 번째 장면에서 임신한 엄마 원숭이가 된다. 그러므로 이곳에 표현되고 있는 주인공은 암컷 원숭이이다. 그렇다면 여자의 일생이 된다.
이곳 도쇼쿠에는 동물의 조각상이 여럿 있다. 대표적인 동물이 원숭이 외에 고양이와 참새다. 이 동물들은 이에야스의 무덤인 오쿠미야(奧宮)로 가는 문 위 양쪽에 있다. 원숭이는 잠자고 참새는 한 쌍이 날고 있다. 이들은 모두 평화와 관련이 있다. 이에야스가 평안하게 잠자고 깨어날 수 있도록 도와주기 때문이다. 이들은 모두 청각이 발달해 인간에게 적의 침임을 알려준다. 고양이와 참새, 인간과 가장 가까이 지내는 포유류와 조류다.
통신사가 가지고 온 조선종과 네덜란드 회전등롱(廻轉燈籠)
이들을 지나 북쪽을 보면 또 하나의 도리이가 있고 그 너머 정면에 요메이몬(陽明門)이 있다. 요메이몬은 사당의 내삼문으로 국보다. 그런데 이 문에 오르기 전 꼭 보아야 할 조선시대 통신사 유물이 있다. 길의 우측에 있는 조선종이다. 1643년 제5차 통신사가 가지고 온 청동제 종이다. 이 종에 대한 기록은 1642년(인조 20) 2월 18일자 『조선왕조실록』에 보인다.
“일본국의 일광산(日光山) 사당(社堂)이 준공되자, 왜의 사신(倭差)이 와서 편액(扁額)과 시문(詩文)을 청하므로 조정이 허락하였다. […] 또 종(鍾)과 서명(序銘)을 구하였는데, 접위관(接慰官) 이태운(李泰運)이 이 사실을 계문하였다. 상이 묘당에 의논하여 선조(先朝)의 왕자 의창군 이광(義昌君 李珖)에게 일광정계(日光淨界)라는 큰 네 글자의 편액을 쓰게 하고 또 종을 주조하여 보내게 하였다. 이명한(李明漢)이 서(序)를 짓고 이식(李植)이 명(銘)을 짓고 오준(吳竣)이 글씨를 썼다.”
이렇게 만들어진 종명(鐘銘)이 종에는 다음과 같이 새겨져 있다. 경기대 서예학과 이기범 교수의 번역으로 옮겨본다.
“일광종명병서
일광산의 도량(道場)은 동조대권현(東照大權現)이 세웠다. 대권현은 헤아릴 수 없는 공덕이 있었고, 함께 끝없이 숭배함이 있어서 불사를 짓는 그 웅대함은 세상에 일찍이 없었다. 선대의 사업을 계승한 효(孝)가 더욱 선대의 공적을 드러나게 하였다. 우리 국왕께서 듣고 기뻐하시며 법종(法鍾)을 주조하여 신령한 산에 세 가지 보배를 바치는 것을 돕도록 하시며, 신하인 식(植)에게 명해 명을 짓도록 하시었다.
명에 이르기를, 영광스러운 선조(先祖)를 크게 드러내어 일찍이 신령스러운 모습을 드날렸지. 현도(玄都)의 큰 규모를 이루어 보배로운 종을 여기에 펼침에 찬수(撰修)에 참여한 좋은 인연으로 참된 복을 빈다오. 종소리 사자의 포효처럼 울리면 어둠 속에 마귀들 굴복함을 알리니 헤아릴 수 없는 중요함은 오직 효의 모범이 됨이로다. 용천(龍天)이 이를 보호하리니 큰 복이 영원토록 함께 하리라.
숭정(崇禎) 임오년(1642) 10월 일 조선국 예조참판 이식 짓고, 행사직 오준 쓰다.”
이곳에서 우리 일행은 통신사로 이곳 닛코까지 온 선조들을 생각하며 많은 시간을 보낸다. 종명에 어려운 단어들이 많아 그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동조대권현은 도쿠가와 이에야스에게 주어진 신호(神號)다. 법종은 불법을 알리는 종을 말한다. 여기 세 가지 보배가 나오는데, 이것은 이에야스의 무덤에 바친 삼구족(三具足) 즉 화병 향로 촛대를 말한다. 현도는 신선이 사는 곳을 말한다. 용천은 천룡팔부(天龍八部)의 준말로 불법을 수호하는 신장(神將)을 말한다.
조선종 건너편에는 네덜란드에서 봉납(奉納)한 회전등롱이 있다. 1623년 이에미츠가 쇼군에 취임하면서 일본은 쇄국정책을 폈고, 나가사키의 데지마(出島) 섬을 통해서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와만 교역을 했다. 이때 가지고 온 것이 청동으로 만든 등롱이다. 이들 두 가지 외국 유물이 도쇼쿠의 위상을 높여주고 있다. 이들을 보고 나서 우리 일행은 요메이몬으로 올라간다.
日光山鍾銘幷書
日光道場, 爲東照大權現設也. 大權現有無量功德, 合有無量崇奉, 結 搆之雄, 世未曾有. 繼述之孝, 益彰先烈. 我王聞而歡喜, 爲鑄法鍾, 以補靈山三寶之供, 仍命臣植, 敍而銘之. 銘曰, 丕顯英烈, 肇闡靈眞, 玄都式廓, 寶鍾斯陳, 參修勝緣, 資薦眞福, 鯨音獅吼, 昏覺魔伏, 非器 之重, 唯孝之則, 龍天是護, 鴻祚偕極.
崇禎壬午十月日 朝鮮國 禮曹參判 李植撰 行司直 吳竣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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