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블로그
[일본]  시문과 기록을 통해 당시 상황을 알 수 있어: [도쿄에서 닛코까지 조선시대통신사 길을 찾다. ⑦] 닛코의 현재와 과거
작성자 : Rie Sang Ki  작성일 : 2020-08-27  조회 : 2306
  • 시문과 기록을 통해 당시 상황을 알 수 있어

    [도쿄에서 닛코까지 조선시대통신사 길을 찾다. ⑦] 닛코의 현재와 과거

     

    요메이몬(陽明門)의 조각들

     

     

      

    요메이몬은 일본의 국보다. 도쇼쿠에는 혼덴(本殿)과 가라몬(唐門), 이들을 동서로 연결하는 회랑(回廊)과 투병(透塀)을 포함해 모두 5건의 국보가 있다. 회랑은 복도를 말하고, 투병은 내부가 들여다보이는 담을 말한다. 요메이몬은 세 칸의 문 위에 전각 형태의 지붕을 올린 건축이다. 문은 가운데로 출입하고, 양쪽에는 활을 든 무사가 앉아 있다. 지붕 아래에는 위에서 아래로 내려쓴 도쇼다이겐곤이라는 한자 편액이 걸려 있다. 고미즈노오(後水尾) 천황의 글씨라고 한다.

     

    문은 정면이 7m 측면이 4m고, 건물의 높이는 11m나 된다. 3대 쇼군인 이에미츠가 취임한지 13년째 되는 1636년(寬永 13) 완성되었다. 요메이문은 건물의 조각이 정교하고 채색이 화려하기 이를 데 없다. 무려 508개의 조각이 있으며, 인물, 조수(鳥獸), 당초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이 조각들이 무수히 많은 스토리를 담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출입문 위쪽에 있는 7개 조각과 한 칸 위쪽에 있는 9개 조각이다. 

     

     

     

    7개의 조각 중 네 개는 거문고, 바둑, 서도(書道), 회화의 4가지 기예를 보여준다. 그리고 세 개는 주공(周公)과 공자 이야기를 표현하고 있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거문고 연주하기, 바둑 두기, 주공의 상소 청취 1, 2, 공자가 강을 보며 제자들에게 『논어』「자한(子罕)」편 설명하기, 책 펼쳐 보기, 그림 보여주기다. 이들 조각은 문인과 정치인 그리고 학자의 삶과 관련된 장면들이다. 

     

    위쪽 9개 조각은 아이들(童子)의 노는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두 장면은 중국의 고사에서 나왔다. 하나는 맹모삼천(孟母三遷)이고, 다른 하나는 사마온공옹할(司馬温公甕割)이다. 맹자 어머니는 아들을 위해 서당으로 이사를 가고, 사마온은 비싼 항아리에 빠진 친구를 구하기 위해 그 항아리를 깨뜨린다. 나머지는 아이들이 노는 장면이다. 악기를 연주하며 놀고, 춤추며 놀고, 맨주먹으로도 논다. 술래잡기도 하고, 목마타기 놀이도 하고, 부채로 나비를 잡으며 놀기도 한다.

     

    이번에도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만나지 못하고

     


     

      

    요메이문을 들어가면 정면에 가라몬이 있고, 그 안쪽으로 혼덴이 있다. 이들은 신전이어서 요메이몬 만큼 스토리가 없다. 또 우리는 참배를 할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들 건물의 외관만 살펴본다. 오히려 신요샤(神輿舎)와 카구라덴(神樂殿)에 스토리가 더 많다. 신요샤에는 신을 태우는 3기의 가마가 보관되어 있다. 이 가마에는 신이 된 도쿠가와 이에야스,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 미나모토노 요리토모(源賴朝)가 탄다. 이들은 5월과 10월의 축제 때 외출을 하게 된다.

     

    카구라덴은 신을 즐겁게 하는 춤을 추는 전각을 말한다. 궁중행사에서 춤을 출 때 연주하는 음악을 아악이라고 하고, 이때 행해지는 가무(歌舞)를 국풍(國風)이라고 한다. 나오는 길에 혼치도(本地堂)에서 용의 울음소리를 들을 수도 있다. 건물 천정에 나키류(鳴龍)라는 그림이 그려져 있고, 집사가 그림 아래서 각목을 두드리면 그 소리가 천정에서 공명을 일으켜 건물 전체로 퍼진다.

     


     

     

    다음으로 찾아갈 곳은 이에야스의 무덤인 오쿠미야(奧宮)다. 그곳에 가려면 사카시다몬(板下門)을 거쳐 북쪽으로 나있는 계단을 한참 올라가야 한다. 사카시다몬 바깥에는 잠자는 고양이 조각이 새겨져 있다. 그리고 안쪽에는 나는 참새 한 쌍이 조각되어 있다. 이들 새와 고양이는 이 문을 지키는 수호동물이다. 그런데 가을 단풍과 라이트업이 겹쳐서인지 계단에 줄이 길게 서 있다. 오쿠미야까지 가려면 이삼십 분은 기다려야 할 것 같다.

     

    일행에게 피해를 줄 수 없어 오쿠미야 관람을 포기하고 주차장으로 내려간다. 내려가는 길에 후타라산신사로 가는 삼나무길을 볼 수 있다. 후타라산신사는 야간관람 때 살펴보기로 한다. 우리는 린노지 삼불당 앞에서 닛코 산나이 관람 기념사진을 찍는다. 다음 일정은 오시마 가츠오(大嶋一生) 닛코시장 면담이다. 시청은 이마이치 혼마치에 있다.

     

    통신사의 시문과 일기에 나타난 닛코 이야기

     


     

     

    조선시대통신사가 닛코를 방문한 것은 세 번이다. 1636년 임광(任絖)을 정사, 김세렴(金世濂)을 부사, 황호(黃㦿)를 종사관으로 하는 사신단이 파견된다. 그들은 모두 여행기록을 남겼다. 임광은 『병자일본일기(丙子日本日記)』를 썼다. 김세렴은 『해사록』과 『사상록(槎上錄)』을 썼고, 황호는 『동사록』을 썼다. 이들 책자에는 날짜별 일정과 행선지 그리고 일어난 일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이들 기록에 의하면 일행은 눈보라 치는 한겨울(12월 22일) 오전에 닛코에 도착해 절과 사당에 참배하고 오후 그곳을 떠난다. 김세렴의 『사상록』에는 사행 중 보고 느낀 생각을 노래한 시문이 들어 있다. 그 중 ‘일광사(日光寺)’라는 4편의 칠언율시가 있다. 산골짜기에 있는 절의 아득함을 노래했다.

     

    쌓인 눈 거센 바람 수많은 나무 넘어지고   積雪驕風萬木顚

    가는 구름 나는 폭포 산 고개로 들어가네.  亂雲飛瀑入層巓

    다리는 아슬아슬 바다 끝을 내리보고        橋危下瞰滄溟盡

    난간 밖은 평면으로 북두성에 다다랐네.    檻外平臨北斗懸

     

    1643년에는 윤순지(尹順之)를 정사, 조경(趙絅)을 부사, 신유(申濡)를 종사관으로 하는 사신단이 파견된다. 그 중 조경이 『동사록』을, 신유가 『해사록』을 남겼다. 그리고 작자 미상의 『계미동사일기(癸未東槎日記)』가 있다. 이들 기록에 따르면 사신단은 7월 하순에 닛코를 다녀왔다. 신유한은 7월 23일 에도에서 닛코로 출발하며 칠언율시를 지었다.

     


     

     

    그리고 ‘신율교(新栗橋)’라는 시에서 가와고에(川越) 번주(藩主) 마츠다이라 노부츠나(松平信綱: 1596-1662)가 지대관(支待官)으로 나와 사신들을 맞이함을 밝히고 있다. 우리의 이번 일본여행 중 중요한 프로그램 중 하나가 ‘가와고에 토진소로이’ 참가인데, 그 행사가 열리게 된 연유가 바로 이 마츠다이라 때문인 것이다. 그는 에도에서 닛코까지 조선통신사의 길 안내를 맡은 책임자였다. 통신사 일행은 7월 27일 일광산(日光山)에 도착한다.

     

    이들은 사당에 참배하고 바로 에도로 돌아간다. 그들이 닛코를 떠나 에도에 도착한 것은 30일이다. 그러므로 8일 만에 닛코를 방문하고 온 것이다. 신유한은 일광산에서 보고 느낀 사상과 감정을 10수의 칠언율시로 표현한다. 그 중 ‘권현묘’를 옮기면 다음과 같다.

     

    아로새긴 들보, 옥 주초 그림자 져 영롱하고      雕樑玉礎影玲瓏

    용과 봉황 굼틀거리며 푸른 하늘로 솟아오르네. 龍鳳蟠拏入碧空

    동조는 일광의 권현묘라는데                          東照日光權現廟

    서쪽에서 온 천축의 법왕궁 같네.                    西來天竺法王宮

     

    남용익의 『부상록』에는 어떻게?

     

    1655년에는 조형(趙珩)을 정사, 유창(俞瑒)을 부사, 남용익(南龍翼)을 종사관으로 하는 사신단이 파견된다. 그 중 남용익이 『부상록』을 남겼다. 남용익은 아주 꼼꼼한 사람이어서 서(序), 좌목(座目), 원역 명수(員役名數), 가지고 가는 물건(䝴去物件), 부상일록(扶桑日錄), 회사록(回槎錄)으로 나눠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문견별록(聞見別錄)』이라는 별건의 문서를 남겼다. 이 중 「부상일록」 부분에 닛코 방문 이야기가 나온다.

     

    사신 일행은 10월 14일 에도를 떠나 일광산을 향한다. 그들은 18일 일광산에 도착해 산관교(山菅橋)를 건넌다. 그런데 산관교에 대한 재미있는 이야기를 전해준다.

     

    “속설에 전하길 옛적에 신인(神人)이 관초(菅草)를 던져서 큰 구렁이로 화(化)하여 다리의 형상이 만들어졌다고 한다. 사람들이 그것을 타고 건너 비로소 동학(洞壑)에 통할 수 있었다. 다리 아래 폭포가 심히 급하며 나는 물결이 쏟아지고 있었는데 굽어보매 매우 두려웠다. 그것을 농미(瀧尾)라 한다.”

     


     

     

    사신일행은 예를 행하기 위해 권현당(가강의 원당)으로 간다. 중간에 조선에서 가져온 종을 확인한다. 양명문 안으로 들어가서는 신락전의 악기와 신여사의 황금가마를 본다. 권현당에서 제례를 마친 일행은 대유원(가광의 원당)으로 향한다. 그리고 우리식으로 제례를 올린다. 제례 후 사신일행은 일광산을 떠나 저녁에 금시에 도착한다. 그리고 22일 에도로 돌아온다.

     

    남용익은 겨우 한나절 닛코에 머물렀지만, 일광산에 대해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긴다. 산에 오르지 않고 듣고 적은 기록일 텐데 아주 정확하다.

     

    “일광산은 일명 이황산(二荒山)이라 한다. 산의 형상이 심히 뾰족하거나 높지는 않지만 동부(洞府)가 깊고 넓다. 두 산 사이로 오르는 문이 하나 있다. 정상(頂上)에는 호수가 있는데 높기가 수십 리요 둘레 또한 수십 리다. 산길이 아홉 번 굽어져 올라가기 어렵다. 환무천황(桓武天皇) 시대 중 승도(勝道)가 비로소 이 산에 살면서 호숫가에 절을 세웠다. 나라 사람들이 지금도 그 이름을 부르며 가물 때 비를 빌면 영험이 많다 한다.”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