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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닛코 린노지의 통신사 흔적: [도쿄에서 닛코까지 조선시대통신사 길을 찾다. ⑤] 린노지 보물전
작성자 : Rie Sang Ki  작성일 : 2020-08-11  조회 : 2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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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린노지가 이렇게 의미 있는 절일 줄이야

    [도쿄에서 닛코까지 조선시대통신사 길을 찾다. ⑤] 린노지 보물전

     

    린노지는 어떤 곳인가?

     

     

     

    린노지는 나라시대 창건되었고, 에도시대 도쿠가와 막부가 닛코에 영묘(靈廟)를 조성하면서 번성하게 된 절이다. 닛코에는 이사(社) 일사(寺)가 있는데, 이사가 도쇼쿠와 후타라산신사, 일사가 린노지를 말한다. 이들은 과거 닛코 삼소권현(三所權現)이라 불리기도 했다. 삼소는 세 곳을 말하고, 권현은 세존(世尊)의 화신이라는 뜻으로 존경받는 높은 신(神)을 말한다.

     

    린노지는 우리식의 절로, 삼불당 호마당(護摩堂) 보물전 소요원(逍遙園)으로 이루어져 있다. 삼불당이 중심 법당으로 금당(金堂)으로도 불린다. 삼불당은 현재 대대적인 보수중이다. 법당에는 아미타여래를 주존으로 좌우에 천수관음(千手観音)과 마두관음(馬頭観音)이 안치되어 있다. 린노지가 천태종 계열이기 때문에 아미타여래가 주존이 되었다.

     


     

     

    이들 부처는 신과 부처가 분리되기 전까지 산, 신, 불의 삼위일체로 여겨졌다. 아미타여래는 뇨호산(女峰山)과 다키노오(滝尾)권현, 천수관음은 난타이산과 신구(新宮)권현, 마두관음은 다로산(太郞山)과 혼구(本宮)권현을 상징한다. 이들 부처는 나무로 만들어졌으며, 7m가 넘는 대불이다. 아미타여래가 가장 커 높이가 7.56m다.

     

    보물전은 삼불당 남쪽에 있다. 보물전은 말 그대로 닛코 이사 일사의 1,200년 역사 속 보물을 소장하고 있는 전각이다. 수천 점의 유물 중 국보 1점, 중요문화재 49점, 중요미술품 7점이 있고, 통신사 관련 유물이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우리는 그 중 통신사 관련 유물에 특히 관심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우리 조상들이 이곳에 가지고 온 것이기 때문이다. 보물전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500엔의 입장료를 내야 한다.

     

    통신사가 에도에서 닛코까지 간 길은?

     


     

     

    보물전에 들어가면 첫 눈에 도쿠가와 막부 쇼군(將軍)들의 초상화가 들어온다. 초대 이에야스(家康), 2대 히데타다(秀忠), 3대 이에미츠(家光)가 정면에 모셔져 있다. 등롱을 머리에 인 두 명의 역사(力士)가 이들 쇼군을 지키고 있다. 왼쪽으로 들어가면 유물 전시실이다. 유물은 크게 세 가지 주제로 나누어진다. 첫째가 닛코산과 도쿠가와 쇼군이다. 둘째가 도쿠가와 쇼군 가문이고 셋째가 도쿠가와 가문의 여성들이다. 우리는 쇼군과 통신사 관련 유물 중심으로 살펴본다.

     

    닛코가 에도시대 역사에서 부각된 것은 1617년이다.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무덤이 닛코산으로 옮겨져 도쇼샤(東照社)가 처음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이때 이에야스에게 도쇼다이곤겐(東照大權現)이라는 신호(神號)가 내려졌다. 이곳으로의 이장을 주관한 사람은 도쿠가와 쇼군의 신임이 두터웠던 닛코산 53세 관주(貫主) 덴카이(天海) 대승정(大僧正)이다. 덴카이는 이를 통해 닛코산을 정치와 종교가 결합한 호국사찰로 만들려고 했다.

     

    1623년 이에미츠가 3대 쇼군에 취임했고, 1632년 2대 쇼군인 히데타다가 죽자 막부 중심의 친정체제를 강화했다. 그리고 대외 교류와 무역을 직접 챙겼다. 1634년에는 황실과 막부간의 갈등을 없애고 국내정치의 안정을 꾀했다. 그러한 정책의 일환으로 조선과의 사신 교류를 원했고, 1636년 네 번째 사신단이 일본을 방문하게 되었다.

     

    이때부터 조선은 회답 겸 쇄환사가 아닌 통신사라는 이름으로 일본과 교류하게 되었다. 우리측 기록에 보면 “통신사를 청해 왜(倭)에 올 것을 부탁한다”고 되어 있다. 에도에 도착한 사신 일행은 이에미츠에게 국서를 전달했고, 이에미츠는 사신에게 크게 완성된 닛쿄 도쇼샤를 방문할 것으로 제안한다. 사신들은 전례가 없다는 이유로 처음에는 제의를 거절했지만, 결국에는 제의를 받아들여 12월 18일 닛코를 향해 출발한다.

     


     

     

    사신 일행은 첫날(18일) 월개곡(越箇谷)에서 점심을 먹고 60리를 걸어 당벽(糖壁)에서 잤다. 이튿날 신율교(薪栗橋)에서 점심을 먹고 역시 60리를 걸어 소산(小山)에서 잤다. 셋째 날은 석교(石橋)에서 점심을 먹고, 저녁에 우도궁(宇都宮)에서 잤다. 우도궁은 하야주(下野州) 땅이다. 넷째 날은 대택(大澤)에서 점심을 먹고, 저녁에 금시(今市)에 도착했다. 금시는 상야주(上野州) 땅이다. 우도궁에서 금시까지는 60리다. 이들은 다섯째 날(22일) 일광산의 절에 도착한다.

     

    사신 일행은 절과 사당을 돌아본다. 이날은 바람이 불고 눈보라가 친 것으로 되어 있다. 이에 사신들은 서둘러 절로 돌아와 떠날 채비를 차린다. 이때 의성(義成)이 한 이틀 머물며 산문(山門)을 돌아보고 시작품을 남길 것을 부탁한다. 이에 동명(東溟) 김세렴(金世濂)이 근체시(近體詩) 8수를 지어서 보내니, 광린(光璘)과 현소(玄召) 두 중이 각각 절구(絶句) 2수와 율시(律詩) 2수를 지어 화답한다. 이에 다시 차운시를 지어주니 이두수(伊豆守)가 특별히 음식을 대접했다.

     

    이제 사신 일행은 골짜기 어귀에 있는 산주교(山柱橋)를 지나 에도로 귀환길에 오른다. 저녁에 금시로 돌아가 하룻밤을 잔다. 23일에는 새벽에 출발 우도궁에서 점심을 먹고 소산에서 잔다. 24일에는 신율교에서 점심을 먹고 당벽에서 잔다. 그리고 25일 월개곡에서 점심을 먹고 오후에 에도에 도착한다. 그러므로 이들은 8일 만에 에도에서 닛코를 왕복한 것이다.

     

    지금도 이들 사신이 지나간 곳은 거의 옛 이름 그대로 남아 있다. 이를 현재 일본어로 표현하면 고시가야(越谷), 가스카베(粕壁), 구리하시(栗橋), 오야마(小山), 이시바시(石橋), 우츠노미야(宇都宮), 오자와(大沢), 이마이치(今市)가 된다. 우리는 통신사가 지나간 길을 따라 우츠노미야, 오자와, 이마이치를 지나 닛코로 들어갔다. 그리고 지금 린노지의 통신사 관련 유물을 자세히 살펴보는 중이다. 이곳 유물은 4대 쇼군 이에츠나(家綱)의 습직(襲職) 축하선물이다.

     

    1655년 통신사가 가지고 온 물건은?

     

     

     

    선물은 1655년 조형(趙珩)을 정사, 유창(俞瑒)을 부사, 남용익(南容翼)을 종사관으로 하는 제6차 사신단이 가지고 왔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을미년(1655) 더운 여름에 쓴 효종의 친필과 이를 담은 상자다. ‘영산법계숭효정원(靈山法界崇孝淨院)’이라고 쓴 액자다. 신령스런 산은 닛코산을 말하고, 법계는 부처님의 세계인 린노지를 말한다. 숭효는 효를 숭상한다는 뜻이고, 정원은 정토와 같은 집이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정원은 이에미츠의 사당인 다이유인(大猷院)을 말한다. 

     

    그리고 다이유인 제문(祭文)이 있다. 조선국왕이 통정대부 조형을 파견해서 대유원의 영(靈)에게 제사를 드리는 내용이다. 먼저 영신(靈神)의 공덕을 찬양하고 자손의 창성을 기원한다. 영이 보우하사 왕업이 더욱 빛날 것을 축원한다. 그동안 친목을 돈독하게 했던 우리나라는 사신을 보내 사신을 보내 제사를 드리니 음덕으로 영원히 즐거움을 함께 하길 바란다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런데 남용익의 『부상록(扶桑錄)』에 수록된 제문에는 치제일이 10월 20일 갑술(甲戌)로 되어 있다. 그렇지만 이곳 제문은 4월 20일 갑술이다. 4월 20일은 사신단이 희정당(熙政堂)에서 임금을 뵙고 한양을 떠난 날이다. 이날 일진이 갑술 맞다. 10월 14일(甲子) 사신단은 에도를 떠나 닛코산으로 향한다. 그리고 18일(戊辰) 닛코산에 도착해 점심식사 후 이에야스와 이에미츠의 원당에 치제한다.

     

    이때 효종 어필(御筆)을 사당 안에 봉안(奉安)하고, 폐백과 제물을 계단 위에 배열한다. 악기와 등롱(燈籠)도 사당 밖에 설치한다. 치제 후 축문과 폐백을 불태우려 하자 일본측에서 “불사르는 것이 당연하나 대대로 전할 보물이므로 보존하길 원한다.” 사신들은 그 말에 따르고 사당을 나와 금란(金襴)과 저포(苧布) 그리고 필묵을 스님들에게 선물로 준다. 

     

     

     

    치제 때 사용한 제례용 아악기는 모두 10종이다. 『부상록』에 의하면 이들은 슬瑟, 금琴, 어敔, 진籈, 축柷, 소簫, 적篴, 약籥, 관管, 훈塤이다. 현재는 이 중 슬, 어, 축, 소 4종만 전해진다. 현재 보물전에 나와 있는 것은 그 중에서도 소(簫) 하나뿐이다. 소는 팬 플루트처럼 여러 개의 피리를 결합해 만든 관악기다. 그나마 우리를 안내한 야나기하라 선생이 이들 4종의 사진을 우리에게 보여줘 그 모양을 확인할 수 있다.

     

    슬은 가야금과 비슷한 현악기다. 그러나 사진에는 현이 보이지 않는다. 어는 호랑이 등에 27개의 톱날이 있는 타악기로, 견이라는 대나무채로 등을 긁어 소리를 낸다. 축은 나무방망이를 네모난 상자 속에 넣어 바닥을 쳐 소리를 내는 타악기다. 어와 축은 음악의 시작과 끝에 사용하는 악기다. 그러나 이들 악기는 1655년 한 번 사용하고 린노지에 보관되었을 것이다. 이들은 모두 낡아 현재 전시용으로 남아 있다.

     

    이곳에 있는 선물보다 린노지에 먼저 온 물건들이 있다. 도쇼쿠에 있는 조선종과 이에야스 묘 앞에 있는 삼구족(三具足)이다. 삼구족은 화병, 향로, 촛대를 말한다. 이들은 1643년 이에츠나의 탄생을 축하하기 위해 에도에 온 제5차 사신단이 가지고 온 것이다. 종에는 예조참판 이식(李植)이 찬하고 사직(司直) 오준(吳竣)이 쓴 종명(鐘銘)이 있다. 이들은 잠시 후 도쇼쿠 방문 때 만나게 될 것이다.

     

    쇼요엔(逍遙園) 산책하기

     

     

     

    린노지 앞에는 쇼요엔이 있다. 나무와 연못이 어우러진 이 정원은 말 그대로 천천히 걸으며 자연도 감상하고 생각에 잠기기도 하는 곳이다. 마침 늦가을이어서 단풍이 한창이다. 에도시대를 대표하는 지천회유(地泉回遊)식 정원이라고 한다. 지천회유는 땅에서 샘물이 솟아 돌아나간다는 뜻이다. 비파호로 불리는 호수 안에 섬을 만들었고, 이를 연결하는 다리도 놓았다. 메이지시대 천황이 닛코를 방문해 이곳에서 묵었다고 한다.

     

    쇼요엔은 10월 25일부터 11월 15일까지 라이트 업(Light Up)이라는 이름의 야간개장을 한다. 10월에는 오후 5시부터, 11월에는 오후 4시부터 오후 8시까지 조명을 비춰 야경을 즐길 수 있도록 한다. 야간에는 시간이 없을 것 같아 주간에 정원을 한 바퀴 돈다. 전체적으로 단풍이 절정을 지난 것 같지만, 연못에 반영되는 단풍이 참 좋다. 이곳에서는 보물전과 금당을 올려다 볼 수도 있다. 쇼요엔의 입장료는 보물전 입장료에 포함되어 있다.

     

    통신사의 닛코 방문

     

    회차

    연도

    조선 왕/

    일본 쇼군

    에도-닛코

    삼사

    방문 목적

    기록

    4

    1636

    인조/이에미츠(家光)

    12.18-22

    임광

    김세렴 황호

    닛코산(日光山) 유람

    김세렴:해사록

    황호: 동사록

    병자일본일기

    5

    1643

    인조/이에미츠(家光)

    7.23-27

    윤순지

    조경

    신유

    닛코산 치제(致祭),

    봉물 기증

     

    조경: 동사록

    신유: 해사록

    6

    1655

    효종/이에츠나(家綱)

    10.14-18

    조형

    유창

    남용익

    닛코산 치제,

    3대 향응

     

     

    남용익:부상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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