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장(孝庄)황후는 청나라 역사의 중요한 인물로서 몽골 커얼친부의 왕족 가문에서 태어났으며 명나라 말기 중국 동북부 각 부의 전쟁으로 인해 정치적 혼인으로 13살 되는 해 황태극에게 시집갔다. 후금(後金)의 매 한차례 성공과정에서 그녀는 정치투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되었으나 탁월한 정치실력을 과시했고 점차 확고부동한 지위를 확립하여 청나라 초 정치상의 유명한 인물로 자리잡았다..
효장황후는 몽골 커얼친부 한 왕족의 둘째딸로 태어났다. 당시 커얼친 몽골은 후금에 귀속됐으며 또한 후금과 통혼하여 쌍방의 정치적 연맹관계를 공고히 했다. 13살인 부무부타이(효장황후 이름)는 오빠와 함께 후금의 서울인 요양에 보내졌으며 청나라 창건자- 누르하치의 여덟째 아들- 황태극의 제2부인으로 시집가 제1부인과 같이 모두 정실부인의 범주에 들었다(당시 만족사람들은 일부다처제). 일찍 11년전 부무부타이의 친고모인 저저가 황태극의 정실부인으로 되었고, 언니 해란주도 황태극에 시집갔기에 고모와 조카 셋이서 한 남편을 모시게 된 셈이다.
역사상 효장황후의 공적은 청나라 그 어느 황후도 따르지 못할만큼 혁혁했으며, 역사상 제2의 무측천이 될 가능력을 갖주고 있엇지만 그것을 포기했다고 한다. 조정대신들은 그녀에게 수렴청정 혹은 조정에서 정무를 볼 것을 권고했으나 아들과 손자를 보좌 및 , 청나라의 흥성과 발전 및 안전을 위하여 이 모든 것을 거절했다.
효장황후는 평생 3대의 황제를 보좌했으며 특히 가장 혼란스러운 역사시기를 거쳐온

인물로서 후세인들은 그녀를 ˝청나라 국모˝라 부르기도 한다. 배후에서 묵묵히 무명공신의 역할을 담당해 역사적 위인으로 불리우는 그녀, 오늘에도 많은 사람들이 그녀의 선량함과 영명함에 찬사를 아끼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