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역사에 북위 라는 나라가 있는데. 삼국 시대가 조조의 위국을 계승한 ˝사마의˝의 서진에 의해 통합되지만 그 정권이 튼튼하지 못하여 북방 유목 민족들이 남침이 시작되자 쇠망 하게 되는데 이들 유목 민족들을 역사에서는 오호(五胡) 즉 다섯 오랑케 라는 의미인데 흉노, 저족, 갈족 , 선비족 , 강족을 가르킴니다. 서진은 내부분열과 오호의 침입에 의해 중원을 버리고 남하 하여 회수이남에 동진을 건설하게 되는 데, 이 남쪽 정권은 송, 제, 양, 陳 으로 이어 지다가 수나라에 의해 통합되는데 이를 우리는 남쪽의 왕조시대 남조시대라고 한다. 서진이 버린 중원과 북방 지역에는 오호가 남침 해 와서 여러 왕조를 건설하게 되는 데, 이를 오호 16국 시대고 이때 북방에는 16개의 국가가 난립하게 된 것입니다. 북방 여러 민족 국가를 통합하는 것이 선비족이 세운 북위라는 나라 입니다. 북위도 다시 분열하여, 동위와 서위가 되고, 동위를 계승하는 나라가 북제이고, 서위를 이은 국가가 북주 입니다. 북방에 있었던 이들 왕조를 우리는 북조 라 고 합니다. 남북을 합쳐 역사에서는 남북조 시대라고 하지요. 북주의 외척으로 권력을 장악한 양견이 수나라를 세우고 ,북제와 남쪽의 진(陳)을 통합하여 통일제국을 건설하는데 필자가 호충화는 북위 말기를 살아간 여인입니다.
북위시대에 ˝ 立 子 殺 母 ˝ (아들이 태자로 서면 그 어머니를 죽인다. ) 라는 것이 하나의 정치 제도로써 일관되게 시행되고 있었는 데, 다른 말로는 ˝子 貴 母 死 ˝ (그 자식이 귀하게 되면, 그 어머니는 죽어야 한다.) 라 고 도 합니다. 즉 황후나 비빈들의 아들이 황제의 후계자로 책봉되면, 태자의 친모를 죽여 버리는 제도 로서 목적은 황제에게 가장 영향력을 끼 칠 수 있는 생모와 외가를 황제와 격리 시키기 위한 수단이다.
황제와 외가의 혈연적 매개체인 생모를 죽임으로써 황제와의 혈연적 유대를 단절 시켜버려 황제권을 보호하고 강화하려느데 있었다
˝입자살모˝ 을 중국에서 맨 처음 시행한이는 한무제였지만 그의시대, 일회성으로 끝나고 하나의 제도로 정착되지는 못했다. 하나의 제도로써 확립된것은 북위의 탁발규가 아들 탁발사를 후계자로 선정하면서 한무제의 입자살모제를 체용하여, 자신의 부인이며 태자의 생모인 劉貴人을 죽이면서 부터이다. 이후부터 북위시대에는 입자살모가 하나의 제도로 정착되어 일관되게 시행되어 졌다고 볼수 있다.
영태후 호충화는 이렇듯 비인륜적이고 야만적인 입자살모의 제도를 유명무실 하게 만들어 폐퇴시킨 여인이다. 호충화는 북위 선무제의 총비이고, 선무제의 태자 효명제의 생모이기도 하다. 호충화는 선무제의 후궁 시절 부터 남 다른 행동을 보이고 있엇다. 당시 여인들은 왕의 여인이 되기를 바라지 않았다. 왕의 여자가 된다 해도 그녀의 생가의 가족에게 특별한 혜택을 주지도 못았고, 혹 아들이라도 낳아 황제의 후계자가 되면, 자신이 죽음을 면하기 어렵기 때문에 모두 태자의 어머니가 되기를 원치 않았다. 심지어 황후들도 아이 낳기를 기피하거나, 아들을 낳아도, 의도적으로 후계자로 책봉되는 것을 기피하는 현상까지 나타 나고 있었다.
이러한 살벌한 시기에 호충화는 아들 낳기를 두려워 하지 않았을 뿐더러 , 자신의 아들이 황태자로 책봉되는 것을 꺼려 하지도 않았다 고한 다. 심지어 황손을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기를 주창하고, 자신의 아들이 태자가 되기를 기원했다고 한다. 과연 뒤에는 그녀의 소원 대로 그의 아들 원우는 512년에 선무제의 계승자가 되고 호충화는 당연히 입자살모제에 의해 죽음에 처해 져야 하나, 정치적 수완과 교묘한 기지를 발휘하여, 목숨을 건진다. 당시 호충화는 권력의 핵심에 있지도 못했는 데, 죽지 않았다는 것은 신기 할 정도로 이례적인 사건이다다. 3년 뒤에 원우가 즉위하여 효명제가 되자, 이때도 권력을 장악하고 있던 권신들은 그녀의 사살을 시도하기도 한다. 특히 효명제의 아버지,즉 선무제의 정실 황후이었던 高皇后는 ( 고황후는 선무제의 정실 부인인 황후이고, 호충화은 선무제의 후비임 ) 입자 살모제의 시행을 주장하면서 호충화를 제거 하려 하나, 실폐하고 만다.
위기를 극복한 호충화는 아들 효명제의 성장과 함께 세력을 쌓아, 고태후(고 황후: 한국인 출신의 중국 황후)를 제거하고 자신이 영태후가 되어 권력을 장악하게 되는데 호충화는 어린 효명제를 대신해 황제 역활을 수행하면서 정치의 전권을 행사 하게 된다. 호충화가 어떻게 권력 기반이 없는 후궁에서 출발하여, 입자살모 제도 라는 구조적인 죽음을 피하여 살아 남았고 , 또 당시 조정을 장악 하고 있던 고 태후 일가를 제거 하여 권력의 정점에 설 수 있었는 지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그녀가 영특한 혜지와 비범한 정치적 수완을 갖고 있었음은 틀림 없다고 할 것이다. 그녀의 입신과정에 대한 자세한 사료가 남아 있지 않아 심히 유감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 후 북위에서는 입자살모제가 그 제도적 효력을 상실하고 유명 무실하게 되었다 고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