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나라 현종의 비로서 쓰촨성[四川省]에서 태어났다. 서시(西施), 왕소군(王昭君), 초선(貂 嬋)과 더불어 중국의 4대미녀 중의 한 사람이다 17세때 현종의 제18왕자 수왕 이모의 비가 되었다. 그러나 현종의 무혜비가 죽자, 황제의 뜻에 맞는 여인이 없어 물색하던 중 수왕비의 아름다움을 진언하는 자가 있어, 황제가 온천궁에 행행한 기회에 총애를 받게 되었다고 전한다. 그래서 수왕의 저택을 나와 태진(太眞)이란 이름의 여도사(女道士)가 되어 세인(世人)의 눈을 피하면서 차차 황제와 결합되었으며, 남궁에서 살게 하고 남궁을 태진궁(太眞宮)이라 개칭하였다.
현종과 양귀비 이 두사람은 잠자리에서 떨어질 줄을 몰랐고 정무에 열중하던 현종 황제는 정치에 대한 흥미를 완전히 상실하여 마치 딴 사람처럼 되어 버렸다. 남궁에 들어온지 6년 후 태진은 귀비로 책봉되고 . 명실공히 양귀비가 되였고. 궁중의 법도상 귀비의 지위는 황후 다음이었으나 이때 황후는 없었으므로 사실상 양귀비가 황후의 행세를 하였다.
정치에 싫증이 난 황제의 마음을 사로잡아 황후와 동등한 대우를 받았고, 양귀비가 ˝귀비(貴妃)˝에 책봉된 이후 죽은 아바지를 대위제국공에 추서되고, 숙부는 광록경에 임명되었고. 큰오빠는 홍로경, 작은오빠는 시어사, 남동생은 사공에 임명되었고 큰언니 옥패는 한국부인, 셋째언니 옥쟁은 괴국부인, 여덟째언니 옥차는 진국부인에 봉해졌고 친척 오빠인 국충(國忠) 이하 많은 친척이 고관으로 발탁되었고, 여러 친척이 황족과 통혼하였다.
한번은 괴국부인이 궁궐에서 가는 길에 공주와 부마의 행열과 마주쳤는데, 서로 길을 양보하지 않다가 큰 싸움이 일어났는데 사실을 알게 된 현종은 평소 공주에게 주었던 물건들을 모두 빼앗고 부마의 관직마저 박탈하여. 궁궐 내에서 그들의 위치가 공주나 부마보다도 위에 있었던 것이다. 양귀비의 언니들도 모두 뛰어난 미색을 갖춘 여인들이였고 현종은 괴국부인과 눈이 맞아 양귀비를 배신하고 그녀와도 정사를 벌였고 양귀비의 질투의 마음을 불태웠으며 현종이 또 양귀비에게 괴국부인을 입궐시키라고 하자 양귀비는 현종의 명을 거역하였고 이 일로 현종과 대판 싸움을 벌이게 노한 현종은 고력사에게 명하여 양귀비를 양국충의 집으로 쫓아보내게 했다.
. 755년 양국충과 반목이 된 안녹산의 반란을 일으키자, 황제·귀비 등과 더불어 쓰촨으로 도주하던 중 장안의 서쪽 지방인 마외역 지금의 산시성 싱핑 서쪽)에 이르렀을 때, 양씨 일문에 대한 불만이 폭발한 군사가 양국충을 죽이고 그녀에게도 죽음을 강요하였다. 현종도 이를 막을 방법

이 없자, 그녀는 길가의 불당에서 목을 매어 죽었다.
정사(正史)도 그녀를 ˝자질풍염(資質豊儺)˝이라 적었으며, 절세(絶世)의 풍만한 미인인데다가 가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