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씨3자매:송미령
송씨네 3자매를 말한다면:“큰언니는 재산을 좋아하고,둘째언니는 나라를 좋아하고,셋째는 권리를 좋아한다。”고 말한다.
106세에 서거한 송미령은 아무런 회고록도 자서전도 남기지 않았다。생전에,많은 사람들은 그녀더러 자서전을 남기라고 그토록 권유했건만 번마다 그녀는 완곡하게 거절해버렸다,송미령은 일생동안 2번 결혼하면서 슬하에 자식이 한명도 없었으며 대만과 미국에 아무런 산업도 남기지 못하였고 만년에 그의 시중을 들던 공씨네 큰아가씨(공상희의 딸)인 공령의의 말에 의하면 송미령부인이 12만딸러의 저금밖에 없었다고 하며 이것마저도 송미령이 오랜시간동안 아겨모아둔것이라고 한다.
실제로 공령의의 말대로 송미령이 정말 이렇게 재산이 없었을까?。“셋째딸은 권력을 좋아했을뿐더러 재물도 좋아했다。”그럼 아래에 송미령의 각 생활시기마다 그의 경제흐름을 훑어보도록 하자。
중년시기에 이미 천만(银圆)부인으로 됨
송미령은 부친 송요여의 명석한 상인두뇌와 재부축적의 영향을 받아,국민의 금전과 권리에 관한 리론을 명백히 했고,돈과 권력을 다 좋아했었다。1927년 전남편과 이혼한후,장개석에게 재가한 그녀의 결혼 역시 정치적인 결혼이라고 볼수 있다。결혼후,그녀와 장개석의 재무는 각자 독립적으로 관리했고,줄곧 미국식의AA제를 실시했다
송미령은 장기간 정부와 사회 각분야에서 임직을 하면서 그녀 본인도 충족한 수입래원이 있었다。1934년12월26일《강남정보》에 기재된 소식에 의하면:“장개석과 송미령의 재산을 ,장개석은1300万银圆,宋美龄3500万银圆……。”당시 1银圆이 현재의 60원 중국원화와 맡먹는다고 한다면 송미령의 재산이 21억원 한화로 약1170억으로서 거의 장개석의 3배정도 많은 재산을 보유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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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저금이 일본침략자들에 강점당하다
미국 스탠포드대학 호불연구소당안에 의하면 1939년 10월17일.일본간첩기관이 국민당정부고급관원이 상해외국은행에 저금한 금액정황보고에 따르면 《등집단특보병제1호——정부요인상해외국은행예금(저금)조사표》중에 장개석6639만원(당시환률로 환산하면 약809만딸라),송미령은 3094만원(377만딸라)。라고 적혀있는데 당시 중국 동부대부분 국토는 이미 일본침략자들한테 강점당하였고:정부는 이미 중경으로 옮기였으며 각정부 고위급들의 재산도 이미 다른데로 상당부분을 빼돌린후였다。여기 자료를 보면 송미령의 재산은 장개석의 반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1941년12월 태평양전쟁이 폭발하자,일본침략자들의 상해의 외국계은행을 인수하고 국민당고위인원들의 재산을 몰수 함으로써 이때 송미령의 재산도 많이 줄었다.
1949년 미국에 의해 재산이 영원히 동결되였다
1948년11월 송미령은 미국에 가서 미국원조를 요청하자 뜻밖에 두루몬대통령의 냉혹한 거절을 당하였고 당시 두루몬대통령역시 국민당한테는 완전히 신심을 잃었다.
두루몬대통령역시 자기 부하들에게 국민당정부중에는 탐관과 부패한 사상을 가진 사람들이 많이 존재하고 있으며 그중에서 제일 큰 탐관이 바로 공송가문이라고 하였다
송미령이 1948년말부터 1949년초까지 미국지원요청이 실패를 보자 자기가 미국에 가지고 있던 재산을 처리하고 조카인孔令侃더러 재산을 관리하게 하였는데 그 상세한 수자는 누구도 모른다.역사자료에 근거하면 중국4대가족(공상희와 송자문을 대표)40년대에 주로 미국의 군수지원물자와 그들의 특수한 경로를 통하여 미국재정부에 탈세한 세금수만 수천만딸라가 된다고 한다.미국중앙정보국과 미국재정부의 연합검사에 의하면 미국에서 래력이 정확하지 않은 불법재산이 약 20억딸라를(4대가족_ 미국정부에 압수당하였고 은행창고에 보관해두었던 골동품.황금.보석 등 많은 재산마저도 다 동결되였는데 그중에 송미령의 많은 재산도 포함되여있다.
송미령의 후반생의 재산은 어디에서 왔는가?
장개석이 1975년 4월5일 돌아가기전까지 2.3개월에 한번씩 정부에서 월급형식으로 송미령한테 생활비를 발급했고 장경국이 대통령직에 있을때도 역시 그러하였고 1988년 장경국이 돌아간후 송미령은 이등휘 만난자리에서 이등휘에게 (당신도 알다싶이 장경국이 있을때 총통부에서 매달마다 나에게 생활비를 주었고 지금 경국이가 돌아갔으니 당신은 나한테 이 돈을 그냥 줄것인가?)고 묻자 이등휘역시도 송미령이 대통령가문이고 역시 그런 대우를 받아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송미령은 1972년《중미연합공보》가 발표된후 중화인민공화국을 승인한 미국에 원한을 품고 대만화 미국의 관계에 더이상 할 일이 없다고 여겨 자신의 정력을 사업방면으로 돌렸는데 미국에 거액의 자금을 투자하여 석유.천연가스 산업을 벌렸다.1984년 중미합중국제사 보도에 따르면 장개석부인 송미령씨는 500만딸라를 투자하여 계약을 체결하고 뉴멕시코주부근의 천연가스발굴을 시작하였다고 하였다
1975년 4월 장개석이 서거한지 반년후에 송미령은 미국에서 휴양을 하면서 송미령이 처음으로 대만을 떠나 미국에 있는 공가주택에 머물렀는데 그때 가지고 갔던 물건은 3년에 3번 배행기로 날라야 다 나를수 있을정도로 물건이 많았다고 한다.
장개석이 돌아간후 규정에 따르면 송미령은 대만에 있으나 해외에 있으나 일체 의료비용은 대만정부에서 지불하여야 하고 그 제한도 없었다.송미령은 미국에서 장기거주하고 있었지만 2003년 돌아가기전까지 대만에서 미국에 의료진을 파견하여 그의 몸을 돌봤으며 그 의료일군들의 월급도 중국돈으로 약 250만원정도 약 5억정도 되였다고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