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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t상해사람들의 결혼역사에 관하여...
작성자 : 상하이  작성일 : 2012-01-30  조회 : 2776
  • 상해결혼풍속은 1843년 상해가 개방되면서 무역이 발달하고 공상업이 흥성해지고 여러지방의 주민들이 상해로 이주해오면서 유럽문화와 동서문화가 결합된 독특한 결혼풍속이 형성되였다,상해결혼풍속은 동양결함의 특징도 가지고 있으면 또한 중국자체의 특징을 지니고 있어 마치 역사상에서 보면 당조의 몬화가 서양과 결합한것과 비슷하다.
    구식결혼은 보통 남녀쌍방이 중매군의 소개를 기초로 부모님의 명에 따라서 하는것이 보편적이 였으나 상해는 개벽이후 이 풍숩이 많이 고쳐지면서 지금은 대부분 남녀들은 지인의 소개를 통해서 특정된 장소에서 서로 만나는데 소위“相亲”샹친이라고 하는데 어떤 남녀들은 사전에 서로 알고 지내다가 툭정된 장소에 양측의 부모님들을 모셔다 서로 인사를 드리게 하는데 이 역시 “相亲” 샹친의 일종이라고 할수 있다.쌍방은 서로 만족하면 또 덕망이 높은 분을 모셔서 정식중매인으로 나서서 중매를 맡도록 한다.이때 이 중매인은 실제적으로 중매의 역할보담은 일종 견증인의 역할을 하기에 현행중매인 이라고도 한다.이중에서 알다싶이 (혼인은 반드시 3매6증이 있어야 한다).여자측에서 동의를 하면 남자측에서는“小礼”소례를 행하는데 일종“裁红”(재홍)이라고도 하는데 반드시 장래의 사위감 될사람의 생신팔자등을 보낸다.시일이 조금 더 지나면 남자측에서는“盘礼”(반례)를 보내고 난후 친척들과 지인들을 모셔서 한상을 차리면서 혼사가 이미 정해졌다고 알려준다고 한다.
    포동의 시골에서는 이 행사를 여자측에서 혼수품 준비하기 하루전에 진행한다.예비신랑은 수탉.청어.돼지다리.고니 및 말린 과일등을 준비해가지고 신부측으로 가서 드리고 여자측에서는 차와 딤섬으로 예비신랑을 대접하고 예비신랑한테 신부집에서 얼마만한 혼수품을 준비했는 여부 등등을 알려줌과 동시에 얼마만한 운송수단이 필요한지도 알려주며 그 다음날에는 신랑집에서는 그 혼수품을 운반해간다.
    포동지역의 봉현일대에는 신랑측에서 신부측에 가서 혼수픔을 가져오는데 풍습에 따르면 여러가지 방식이 있는데 보통 신랑측에서 오기전날에 많은 혼수품들을 큰 방에 진렬해놓고 마치 엑스포를 하듯이 동네사람들한테 구경을 시키는데 동네사람들한테 자기네 부유함을 자랑하는 행위일종이며 남자측에서 이튿날에“囍”자를 붙인 멜대를 메고 쌍쌍이 짝을 지어 신부집앞에 도착하면 신부집에서는 요란한 폭죽을 터치면서 신랑집 일행을 맞이하는데 이때 신랑측에서 혼수감을 가지러 온 신랑측 사람들은 일률로 신부측 부모님들의 지시에 따른다고 한다.예를 들면 혼수픔 가지고갈 도구의 놓을 자리.멜대등은 반드시 나무까리 옆에 세워두어야 하고 광주리같은것들은 마당에 놓아야 하며 풍습에 따르면 이때 신부측에서 화가 나면 혼수품들은 보내지 않을수도 있으니 신랑측 사람들은 징을 울리고 폭죽을 터치면서 빨리 혼수픔을 가지고 가게 해달라고 신호를 보낸다.이렇게 복잡한 장면이 이루어지면 동네 사람들이 다 모이고 사람이 많이 모일수록 신부 신랑측은 다 만족감을 얻게 된다.약 한두시간동안 이렇게 싱갱이를 버리다가 신랑측 형님되시는 분이 신부측의 동생의 허락을 받고 나면 혼수픔들을 싣기 시작하는데 처음에 실을 물건은 재래식 변기.담에는 이불.담에는 상자등 이런순서로 나가는데 이때 신랑측사람들은 문밖에 서있어야 하고 제일 많아서 한쪽발 정도를 집안에 들여놓을수 있으며 혼수픔을 빼앗아간다는 그런의미지를 없애기 위함이라고 한다.그럼 제일먼저 재래식 변기를 싣는것은 상해에서 재래식 변기를(马桶) “子孙桶”자손통이라고 부르는데 이전에 부녀자들은 출산을 다 자기집에서 하면서 애기를 보통(马桶)마통에 낳았기에 자손통이라고 하고 결혼하여 훌룽한 자식을 낳아서 가족이 번창하라는 그런의미에서 먼저 변기를 싣는다고 한다.
    신랑측 사람들은 혼수픔을 담은후에 집으로 가면서 한번도 쉬면 안되며 어떤 지역에서는 여자집에서 나올때 반드시 동쪽 혹 남쪽 방향으로 뛰여야 하는데 이 풍습을 “兜青龙”라고 하는데 행운이 깃들기를 바라는 그런 일종의 풍속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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