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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중국의 위성발사 기지 간쑤성(감숙성 甘肅省) 주취안(주천 酒泉)의 지명 유래!
작성자 : 한재철  작성일 : 2012-05-18  조회 : 3264
  • 중국의 위성발사 기지 간쑤성(감숙성 甘肅省) 주취안(주천 酒泉)의 지명 유래!

    오늘 새벽에 지상 1m 이하의 물체를 식별할 수 있다고 하는 우리나라의 아리랑3호 위성을 실은 일본 로켓이 18일 새벽 1시39 일본 가고시마(鹿兒島)현의 다네가시마(種子島) 발사장에서 성공적으로 발사되었다. 아직 우리나라 로켓기술 수준이 일본하고 50년 기술격차가 있다고 한다. 이번 발사는 일본 최초 외국 위성발사를 상업적으로 성공한 로켓발사라고 한다. 앞으로 일본은 외국 위성 발사 사업이 탄력을 받을 듯 해 부럽기만 하다.

    일본 뿐만 아니라 중국 또한 우주강국이다. 중국의 북서지역에 간쑤성(甘肅省) 주취안(酒泉)이라는 곳이있다. 중국은 이곳에 1958년도 주천위성발사기지를 설립후 최근에는 우주 왕복선도 발사할 정로 우주산업 관련 기술이 발달해 있다.
       
    만리장성의 가장 서쪽 관문인 가욕관이 바로 이곳 주천옆에 있다. 역사적으로 이 지역은 북방민족들의 근거지로 한나라 시기는 흉노세력권에 있던 지역이다. 주천이라는 지명 또한 한나라 시기 유명한 장군 곽거병과 흉노전쟁에 얽힌 일화에서 나왔다. 진나라 말기부터 대륙이 전쟁 소용돌이에 휩쓸리는 틈에 중원 북쪽 지역의 흉노는 북방지역을 통합하여 강력한 세력으로 성장한다. 한고조 유방은 중국을 다시 통일하여 한나라를 세우고 본격적으로 북방지역 흉노를 견제 하기 위하여 흉노정벌를 감행하여 32만의 대군을 친히 이끌고 출병한다. 당시 흉노의 왕은 묵돌(冒頓:?∼BC 174)로 아버지를 죽이고 왕이 되었지만 지략과 군대통솔에 뛰어난 왕이었다. 묵돌은 출병한 유방을 유인하기 위하여 군대를 노인이나 허약한 말들로 위장하여 패하는 척 대군을 평성지방(平城, 산서성 대동시 동북쪽) 평야지대로 유인 일시에 협공을 하여 대군의 허리를 잘라 유방을 고립시킨다. 다급해진 유방은 백등산(白登山)으로 피신하였으나 곧 40만 흉노대군에 포위되어 7일간이나 굶을 정도로 최악의 상황 맞이하게 된다. 결국 유방은 묵돌의 황후에게 수많은 보물을 받치고 묵돌과 형제를 맺고 공주를 시집보내고 매년 선물을 보내는등 치욕적인 협상를 맺고 포위를 풀게해 장안으로 돌아 간다. 이 때의 치욕을 역사는 평성지치(平城之恥)라고 표현한다. 한고조 유방은 흉노와는 전쟁을 하지 말라는 유훈을 남긴다.

    이 처럼 한나라 북방 근심거리인 흉노 지역이 한무제 때 비로소 평정된다. 북방 흉노지역 평정 역사에서 빼 놓은수 없는 인물 두명이 있는데 바로 복잡한 가족 내력을 가지고 있는 위청(衛靑?~BC106)과 곽거병(霍去病, BC140~BC117)이 있다. 위청은 출신이 미천 하였는데 어머니인 위온이 평양후였던 조수와 결혼하여 평양공주가된 한무제의 오누이 양신장공주(陽信長公主)의 시녀였다. 위온이 평양후의 관리 정계와 사통하여 낳은 자식이 바로 위청이다. 위온에게는 위자부 (衛子夫?~BC90) 와 위소아라는 두 딸도 있었는데 바로 노래를 잘 부르는 위자부가 평양공주의 집을 찾아온 한무제의 눈에 띄어 총애를 받게 되어 궁으로 들어가 아들까지 낳으며 황후까지 올라가 위청 또한 한무제의 측근이 된다. 한편 위자부의 언니 위소아(衛少兒)와 평양현의 벼슬아치 곽중유(霍仲孺)가 사통하여 낳은 아들이 곽거병이다. 평양공주는 남편 사망후 (BC131) 한 때 자신의 말을 돌보던 위청과 재혼한다.

    한나라가 정기적인 물품 상납과 왕소군 같은 중국의 4대 미인을 선우에게 보내야 하는 굴욕적인 관계를 유지하던 흉노정벌의 핵심 인물들인 위청은 한무제의 처남 곽거병의 외삼촌이다. 곽거병의 이모부가 한무제이다. 이들의 출신지는 평양(平陽, 지금의 산서성 임분)이다. 위청과 곽거병은 기마술에 능숙했다고 하며 말 달리며 활쏘기 명사수 였다고 한다. 위청이 흉노와의 전쟁에서 많은 전과를 거두며 유명한 장군되었을 때 곽거명은 18세(BC 123)에 부터 위청에 따라 흉노 정벌을 시작하여 혁혁한 전과를 올려 위청 보다 높은 놓은 자리 까지 올랐으나 불과 24세의 나이로 병사 하고 말았다. 곽거병은 전쟁도 정예병력을 이용한 속전속결 방식을 선호했으며 정말 삶도 짧고 굵게 산 영웅이었다.


    주취안(酒泉) 지명 유래도 흉노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곽거병을 치하 하기 위하여 한무제가 보내온 술을 승리의 영광을 병사들과 나누기 위해 술을 호수에 타서 병사들과 함께 나누어 마셔 사기를 복돋았다는 것에서 지명이 유래되었다.

    16세(BC. 141) 때 한나라의 7번째 황제에 등극하여 51년간 통치 하다 71세 사망한 한무제(漢武帝 유철 劉徹, BC 156-87)시기의 많은 전설들과 영웅들의 이야기는 재미도 있고 끝도 없다.

    한무제는 황제등극 2년후 부터 자신의 묘를 건설 했는데 위청과 곽거병의 묘를 자신의 묘 옆에 배치하여 죽어서도 두 명장의 보필을 받고자 하였다. 위청의 묘는 하서회랑의 노산(盧山)을 곽거병의 묘는 하서회랑의 기련산(祁連山)을 의미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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