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여행 추천 도서- 조조 평전(사람을 얻어 난세를 평정한 용인술의 대가)
조조 평전(사람을 얻어 난세를 평정한 용인술의 대가)
장쭤야오 저 |남종진 역 |민음사 |2010.10.29
역사속 인물을 소설 한 권 간단한 신문기사 몇 줄로 평가 할 수 없다. 소설은 사실에 기반을 둔다고 하지만 작가의 창작의도와 창작시의 새대풍속이 많이 들어가고 기사도 사실에 기반을 두고 쓴다고 하지만 현대 신문기사는 상업주의와 더불어 정치적 배경을 가진 기자 편집자의 의도가 너무 많이 들어가 있기에 신뢰 할 수 없는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중국 역사속 인물들 중 조조(曹操 155~220) 만큼 제대로 평가 못 받은 인물도 없을 듯하다. 대부분이 간사한 인물로 그리고 잔인 하고 믿을 수 없는 인물로 묘사되어 지고 있다. 한국에서도 많은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하고 있을 듯하다. 후한말기 인물평가로 이름이 높은 허소(許劭,150~195)에게 조조가 물었을 때 허소는 “치세의 능신, 난세의 간웅(子治世之能臣, 亂世之姦雄也)”라고 했다고 한다.
역사에도 조조 집안은 탄생 부터 좀 복잡한 구석이 있어 어딘지 모르게 미스테리한 부분이 많은 인물 임에는 틀림이 없는 거 같다. 조조는 환관인 중상시 조등(曹騰)의 양자 조숭(曹嵩)의 아들로 할아버지 조등은 한나라 고황제 유방(漢太祖 高皇帝 劉邦 BC247~BC195)의 넘버투 쯤 심복 조참(曹參 ? -BC190)의 아들이다. 결론으로 보자면 조조는 지금으로 치면 금수저를 입에 물고 태어났고 집안배경은 막강한 권세가 집안이었다. 어려서는 놀기 좋아 하여 또 다른 배경 든든하고 금수저 물고 태어난 친구 원소(袁紹, ?~202)와는 남의 신혼집에 몰래 들어가 신부를 같이 농락할 정도로 방탕하게 지냈다고 한다. 배경이 든든들하니 처벌받는 일은 없이 지냈다.
우리도 마찬가지 이지만 지금 중국 사람들이 알고 있는 조조의 이야기는 대부분이 원(元)과 명(明)의 교체기 때 인물 나관중(羅貫中, 1330~1400)이 장회소설(章回小說) 형식으로 쓴 장편 스펙타클 역사소설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속 이야기 아닐까 한다.<삼국지연의>는 후한말기 위(魏), 촉(蜀), 오(吳) 3국의 역사를 바탕으로 진수(陳壽, 233~297)가 지은 역사책<삼국지(三國志)>의 내용과 당시 구전 공연들으로 내려오는 이야기들은 소설형식으로 역은 책이다. 이책의 본 이름은 《삼국지통속연의(三國志通俗演義)》이며, 《수호전(水滸傳)》, 《서유기(西遊記)》, 《금병매(金甁梅)>>과 함께 중국 4대기서(四大奇書)로 꼽힌다. 현재 가장 오래된 판본은 1522년의 가정본(嘉靖本) 판본으로 한반도에서는 조신시대 1569년에 원문으로 간행된 이후 지금 까지 읽혀지고 있다. 등장 인물만 수백명이 넘는 소설 삼국지는 요즘은 만화로도 나와 초등학교 시절부터 가장 먼저 접하는 역사이야기가 아닐까 한다. 결국 초등학교 때부터 조조는 나쁜놈으로 각인된다.
조조(曹操155~220),유비(劉備161~223),장비(張飛?~221),관우(關羽?~219),제갈량(諸葛亮181~234),손권(孫權182~252)등 쟁쟁한 영웅호걸이 등장하는 소설 삼국지는 영웅들이 죽은 후 적어도 1,000년이 넘어서 나온 소설이다. 그 사이 일반 백성들은 구전으로 또는 전통가극으로 공연되는 삼국시대 영웅들 이야기를 듣고 보면서 지냈는데 조조는 대부분 한나라 왕조를 찬탈한 나쁜 이미지로 묘사되어 왔다.
특히 조조가 여자를 많이 거느린 부분을 가지고 조조를 낮게 평가하는 부분도 있는데 역사에는 이런 기록이 있다. 조조가 여포(呂布 160~198)와 하비전투(下邳戰鬪 198) 때 당시 유비는 조조 에 의탁중에 있었는데 관우는 조조에게 성을 함락하면 성안에 남아 있던 여포의 부장 진의록(秦宜祿, ? ~ 199년)의 처 두씨(杜氏)를 줄것을 요구하여 허락을 받았다고 한다. 전투가 끝날 무렵 다시 관우는 두씨를 자기에게 줄 것을 재차 확인 하였는데 전투 종료후 조조가 두씨를 보고 절세미인이라 관우에게 주지 않고 자신의 첩으로 하자 관우는 톨아졌다고 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관우의 이미지와 많이 틀릴 것이다. 하지만 당시 시대 상황은 전쟁에서 이긴 쪽이 패장의 부인을 첩으로 취하는 것은 큰 허물이 아니었다.
역사 기록에 조조는 처첩을 열다섯 명 있었고 그중 열세 명이 아들 스물다섯을 낳았다.고 한다 조조는 자신의 권력 기반은 공공히 하기 위하여 한나라의 마지막 황제인 헌제에게 딸 셋을 받쳤다고 한다.
조조를 어떻게 평가 할지는 각자 기준이 있을 수 있으나 창작소설 속 인물 묘사를 가지고 자녀들의 교육에 까지 사용하면 안될듯하다.
이책은 조조와 관련한 역사적 사실을 찾아 어떤 인생을 살았는지 정리한 책이다.

조조에 대한 평가중 조조의 참모인 순욱과 곽가는 경쟁자 원소 보다 조조가 아래 열가지에서 더 낳다 했다. 그것은 세상을 다스리는 도(道),의(義),치(治),탁(度),모(謨),덕(德),인(仁),명(明),문(文),무(武)에서 였다.
전쟁터에서도 책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고 하는 시대의 영웅 조조는 문학에도 소질이 많아 많은 시를 남겼다.
술 마시며 노래하세
우리네 인생 살면 얼마나 산다고
아침 이슬과 같은 우리 인생
흘러간 세월엔 고생도 많았지
-단가행-중
천리마는 늙어 마구간에 매여서도
...마음은 천 리를 치닫듯
열사 비록 몸은 늙더라도
큰 포부는 가시지 않는다
-보출하문행 구수수-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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