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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마지막 황제 푸이의 일생- 황제에서 평민으로 스스로 선택 하지 않은 시간들,,,
작성자 : 한재철  작성일 : 2012-09-17  조회 : 3289
  • 마지막 황제 푸이의 일생- 황제에서 평민으로 스스로 선택 하지 않은 시간들,,,

    마지막 황제(末代皇帝溥儀, The Last Emperor, 1987) 1988년 “제60회 아카데미영화제”에서 작품상,감독상,각색상,촬영상,미술상,의상상,음향상,편집상영화등 8개의 상을 휩쓸며 전세계적인 흥행과 작품성을 인정받은 이 영화를 감상하신 분들은 마지막 황제 “푸이”에 대하여 어떤 이미지를 가지고 있을지 궁금하다. 영화지만 내용의 일정 부분은 사실에 기반을 두엇기에 참 힘든 삶을 살았을 것 같다는 인간적인 연민을 들게 하는 부분이 많이 있다.

    영화의 주인공 아이신기오로 푸이(愛新覺羅溥儀 1906년2월7일~1967년10월17일)가 역사속에서 어떤 삶을 살았는지 조금 살펴 본다면 소수민족 만주족이 세운 청나라 멸망의 순간이 참으로 비참 했다는 것을 볼수 있다. 푸이는 멸망해 가는 청나라의 12대 황제 선통제(宣統帝, 재위 :1908년~ 1912년)로 세살에 즉위한다. 즉위후 3년만에 1911년 남경에서 신해혁명으로 중화민국 설립에 성공한 쑨원과 2대 중화민국 총통을 보장 받은 군벌 위안스카이의 협력으로 더 이상 존엄한 황제로서의 지위는 끝을 마감한다. 짧은 제위기간 아버지 순친왕(醇親王)과 광서제(光緖帝)의 황후인 융유황태후(隆裕皇太后)가 섭정을 하였고 1912년 2월 12일 융유황태후가 푸이를 대신해 퇴위 조서 를 발표하며 더 이상 황제로서의 역할은 없었지만 푸이는 계속해서 자금성에 거주하다 1917년 청의 부활을 주도한 군벌과 캉유웨이등에 의해 다시 황제로 복위되지만 10일만에 공화정을 지지하는 군벌들에 의해 다시 황제에서 끌어 내려지고 마침내 1924년 11월 5일 출궁 당한다.

    출궁 후 잠시 아버지 순친왕부에서 머물다 1924년 11월 29일 북경 일본공사로 피신하고 1925년 2월 27일 천진 일본 조계지내 중국군벌 장표 장원에 머물다. 1931년9월18일 만주사변으로 만주지역을 점령한 일본제국은 장기적으로 중국본토를 침략하려 1931년 10월 <만몽공화국 통치대강안>을 계획하고 천진의 푸이를 1931년11월 13일 랴오닝성의 잉커우(營口)로 옮겨와 머물게 한다. 만주지역을 담당하던 관동군은 만주지역 군벌들이 1932년 3월1일 만주국을 성립하도록 하고 1932년3월9일 푸이를 집정에 취임시키고 연호는 대동 수도는 장춘을 신경(新京)으로해 민주국을 건국하게 한다.

    1934년 3월 1일 만주국 강덕제(康德帝, 재위 : 1934년~1945년)로 다시 황제로 취임하며 만주제국을 설립한다. 2차대전 말기 1945년 8월 9일 소련은 일본에게 선전포고와 동시에 만주국 북쪽 국경선을 넘어 물밀듯이 들어오고 8월15일 일본제국의 무조건항복으로 더 이상 존재의 의미가 없는 만주제국은 8월 17일 총리대신 장징휘의 주재로 열린 국무원 회의에서 만주국의 해체를 결정하고 푸이는 8월 18일 퇴위조칙을 읽는 것으로 13년 만주제국은 문을 닫고 푸이는 다시 황제자리에서 다시 물러난다.
       
    1945년 8월 19일 선양(瀋陽)에서 비행기로 일본으로 탈출 하려다 쏘련의 공수부대에 포로로 잡혀 하바로프스키에 수감되었다 동경전범재판소를 거처 1950년 중국에 넘겨져 푸순전범관리소(撫順戦犯管理所)에서 정신개조과정을 거처 1959년12월4일 모범수로 특별사면되어 북경식물원 노동자로 근무 하였으며 공산당 고위층의 협조로 중국공산당정치협상회의 전국위원 으로로 선출되기도 했다. 문화혁명기간 제대로 치료도 못 받고 1967년 10월 병사했다.
    영화에는 안나오지만 만주제국기간 500백만명의 동북만주 인민들이 일본관동군에 의해 사망하거나 상해를 입었다고 한다.
      
    푸이의 만주제국 수도 장춘으로 가는 역사여행을 만들어 드립니다.

    깊게 보는 중국여행 플래닛차이나투어 http://www.planetchinatou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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