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여행 추천 도시- 산시(Shanxi 山西省) 면산(綿山)의 홍보대사? 개자추(介子推)
2012년 12월 19일은 대한민국 18대 대통령을 뽑는 선거일이다. 지금은 선거를 통해 국민들이 직접 대통령을 뽑지만 이렇게 국민들이 직접 대통령을 뽑기 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희생하였기에 가능했다. 대한민국 대통령의 권한은 막강해 변화와 발전의 속도가 빠른 지금 시대에는 대통령의 능력에 따라 5년이라는 짧은 통치기간에 따라 미래국운이 좌우 될 수 있다. 대통령 혼자 모든 것을 다 할수 없기에 주변 참모들의 역할이 무엇 보다 중요하다.

중국관광지 이야기에 대통령선거 이야기 까지 나와 혼란스럽겠지만 면산(綿山) 홍보 대사쯤 되는 인물 개자추(介子推 ?~기원전636)를 이야기 하기 위하여 선거시기가 적절할 때 인듯하다. 왜냐 하면 선거가 끝나고 나면 논공행상에 따라 대통령주변 인물들이 정리될 것이기 때문이다. 개자추를 이야기 하기 위하여는 진 문공(晉文公 기원전 697년~기원전 628년)을 빼 놓을수 없다.
진(晉)나라 헌공(獻公)의 아들인 공자 중이(重耳)후에 진 문공은 아버지가 늦은 나이에 얻는 여희(驪姬)라는 여인에 빠지게 되는데 여희는 자신의 자식을 권좌에 올리기 위하여 헌공의 자식들을 핍박하게 되면서 중이는 국외로 탈출하여 망명길에 오르게 된다. 당시는 지금처럼 백성 직선제로 후계자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주로 왕이 법도와 제도에 따라 후계자를 지정하는데 이 왕의 마음을 움직이는 인물이 왕에게 가장 사랑을 받는 여인이다. 중국역사를 보면 이런 위치에 있던 여인들이 후계자 지정에 깊숙히 개입하는 시기에는 꼭 국가전체가 혼란에 휩싸였다.
중이 또한 아버지가 푹빠진 한 여인에 의해서 19년간 주변 여러 나라를 떠돌며 망명생활을 하다62살에 드디어 권좌에 올라 당당히 춘추오패(春秋五覇-제환공, 진문공, 초장왕, 오왕합려, 월왕구천)로 한 때 중원을 호령하던 춘추시대의 인물이었다. 이렇게 오랜기간 망명생활을 하다 진문공으로 진나라의 권좌에 오른 진문공은 어려운시기 자신을 보필한 가신들을 불러 논공행상(論功行賞)과 앞으로 국정을 운영에 어떻게 참여 시킬 것인지를 의논 하게 된다. 당시 진 문공은 “1급은 덕(덕장), 2급은 재주(지장), 3급은 용맹(용,맹장)으로 보필한 자”를 논공행상의 기준으로 삶았다고 한다.
아마도 이번 선거가 끝나고 나면 이 논공행상과 관련한 뉴스가 나올듯하다. 남의 떡이 더 커 보이는 것이 인지상정이라 당시도 서로 자기 공이 더 많다고 불만을 가지고 싸웠다. 개자추라는 사람은 문공이 불러 주지도 않고 어려운 시절 고생을 함께한 동료들이 싸우는 모습을 지켜보다 실망하여 면산이라는 산속으로 홀어머니를 모시고 들어가버린다. 이러한 소식을 접한 문공이 정신을 차리고 개자추를 불렀으나 산에서 나오지 않아 주변 조언을 받아 산에 불을 질러 나오게 하려 하였으나 결국 개자추는 늙은신 홀어머니를 등에 업고 버드나무를 부여잡고 죽은 상태로 발견되었다고 한다.
개자추가 이렇게 왕삐짐으로 면산이라는 험한 산속으로 들어가 죽은데는 이유가 있다. 중이가 계모가 보낸 자객을 피해가며 어럽계 망명생활을 하던 초반에 경리를 담당하던 두수(頭須)라는 인물이 망명자금을 가지고 잠적하면서 일행은 먹을 것이 없어 끼니를 거를 정도로 극심한 어려움에 처해 중이가 병이들자 하루는 개자추가 고기국을 가져왔다. 맛있게 고기국을 다 먹고 중이가 물으니 개자추는 자기의 허벅지살로 요리한 것이라 했다. 할고봉군(割股奉君: 허벅지 살을 베어 군주를 살려냄)이라는 이것으로 유래한다. 이렇게 자신의 몸을 받처서 보필한 중이가 안면몰수하니 개자추의 마음이 어떠 했을지는 뻔하다. 중이는 어려운 고생끝에 망명길의 목적지인 제나라에 도착하게 되는데 당시 제나라를 목적지로 정한 이유는 관중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어 제환공이 인재를 환대 할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간 것이었다. 역시 제환공은 진나라의 공자인 중이를 환대하고 종실의 여자를 아내로 맞이하게 까지 한다. 그러나 제환공이 몇년후 죽고 진나라 또한 아버지가 죽고 신하들이 여희가 옹립한 왕을 죽이고 중이의 환국을 원한다는 소식을 접한다.
그러나 이 인사는 제나라의 생활에 완전만족하여 떠날생각을 하지 않자 숙부(叔父)인 호언과 조쇠(遭衰)가 제나라에서 얻는 마누라가 합심하여 요즘 뜨는 싸이가 강제 해외진출 한 것 처럼 술에 취하게 하여 마차에 실어 제나라를 떠나 귀국길에 오르게 한다. 술이 깬 중이는 호언에게 ˝일이 완성되지 않았으면 자네를 죽이고 그 고기를 먹을거야˝라고 했다고 한다. 아마도 이 양반 개차추가 올렸던 고기국 맛이 좋았나 보다. 우여곡절 끝에 환국한 중이 진 문공은 망명초기 자금을 가지고 튀었던 두수(頭須)를 다시 쓸 정도로 냉정하게 평가하여 올바른 인재의 등용과 정치로 춘추오패중 한명으로 당당하게 지금 까지 이름이 전해저 오고 있다.

한식절(寒食節)은 바로 개자추가 면산에서 불길에 죽임을 당한 것을 안탑깝게 여긴 문공이 이날은 불을 사용한 요리를 하지 말것을 명하며 생겨난 절기로 동지로부터 105일 째 되는날이고 하루전날은 중국의 명절 칭밍지에(淸明節)이다.
중국역사를 공부하다 보면 좀 많이 등장하는 나라중 진나라가 몇 개 있는데 진문공의 진나라는 춘추시대 진(陳기원전1111년 ~ 기원전479년),진(晉, 기원전 1100년 대~기원전 349년)이고 전국시대를 마감하는 진시황의 진(秦, 기원전 900년경~통일진 기원전 221년-기원전 206년)나라 그리고 조조가가 삼국을 정리하던 시대의 위나라(魏220-265) 이후 삼국을 통일한 사마염의 진(晉265-420)이 있다.
역사적으로 보면 남자가 삐져서 생기는 많은 일들이 있다. 옛날 이야기지만 개자추 또한 자기 살로 국을 끓여 살려낸 문공에 얼마나 서운했으면 불타는 산속에서 나오지 않고 목숨을 버렸을까? 가끔 주변에 사랑하던 애인이 배신하고 떠나자 좋았던 시절 사준 명품가방 할부금을 오랜기간 갚으며 쓰린 속을 소주로 달래는 친구들을 본다…

면산에는 개자추의 충성심과 효도를 칭찬하는 옛사람들이 남긴 비석들을 모아 놓은 비림과 사당이 있으며 개자추의 의류등으로 만들어 놓았다는 묘지가 있다. 올라가는 길이 만만하지 않지만 가족여행중 이라면 자식들을 데리고 올라가 개자추 관련 이야기를 들려주면 여행후 남는 것이 있을 것이다.
중국여행 역사을 알면 좀더 재미있다…
깊게 보는 중국여행 플래닛차이나투어 http://www.planetchinatou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