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여행 추천 도시- 산시성 평요고성(Ancient City of Ping Yao 平遥古城 핑요우구청) 하나
2012년도 한달을 남겨두고 있다. 생활이 바쁜 나라 대한민국에 올 한해도 많은 일들이 일어 났다.몇일 앞두고 있는 18대대통령선거가 마지막 남은 국가적 큰 사건이 될 것 이겠지만 몇 개월전 “싸이”라는 가수가 “강남 스타일”을 인터넷 동영상 공유사이트 유튜브(Youtube)에 등록한지 몇 개월 만에 조회수 10억회를 앞두고 있는 것이 올해 한국인이 만든 가장큰 세계적인 사건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스타일”은 유행어가 되었다.
해외여행도 여행객들의 여행스타일이 다양하다. 특히 여행을 좀 했다는 선수들은 모든 것이 짜여지고 쇼핑이나 옵션등 여행사의 짜여진 일정에 끌려 다니는 패키지여행 보다는 몸은 좀 불편하지만 자유롭게 스스로 현지문화를 즐기는 여행을 주로 선호한다. 개인적으로도 내 여행 스타일도 대충의 큰동선만 있는 자유여행이다. 그래야 현지서 맘에 드는 곳을 좀더 집중적으로 볼수 있기 때문이다. 여행을 하다 보면 오래도록 머물고 싶고 또 마음이 힘들 때 다시 찾고 싶은 곳들이 많은데 발리의 우붓, 프랑스 샤모니,스위스속의 이탈리아 루가노, 켈리포니아의 몬터레이등이 있다. 몇해전 부터는 중국쪽을 집중적으로 다니고 있는데 오래도록 머물고 싶은 여행지들이 많다. 특히 중국에는 역사가 깊고 사람 냄새가 깊은 장소들이 많아 좋다.

중국에서도 원형이 드물게 남아 있는 고성으로 산시성 평요고성(Ancient City of Ping Yao 平遥古城 핑요우구청)이 있는데 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곳이다. 이곳은 주나라(BC827)시기 2,700년경 부터 토성을 쌓고 사람들이 마을을 이루고 살았다. 현재 토성은 높이 12m 가량 성벽 6,163m로 둘러 쌓여져 있으며 성안에는 4,000여채의 고대 건축물들이 원형 그대로 보존되고 있으면 약3.5만명의 주민이 거주하고 있다. 건축물들은 대부분 명나라 청나라 시기에 건축된 건물들이다. 이곳은 춘추 시대에는 진(晉)나라에 속했고 전국 시대에는 조나라에 속했고 진(秦)나라가 중국통일후는 핑타오로 불렸던 곳이다.

평요지역을 위성 사진으로 보면 마치 양팔을 벌린 여인의 가슴위치와 같아 태행산맥 자락이 양쪽으로 감싸안고 있는 평원지대로 농산물이 풍성한 곡창지대 이다. 양쪽을 감싸고 있는 산맥은 역대 중국왕조의 위협세력인 서쪽과 북쪽 동쪽의 강력한 이민족들을 막아주는 훌륭한 방패 역할을 해주었고 밑에는 중국의 중심 중원지역으로 역사적으로나 지리적으로 중요한 위치이다. 당나라를 개국한 당고조 이연(唐高祖 李淵 566년~635년)이 바로 이곳을 담당하던 태원(太原) 유수(留守)였고 이곳을 발판으로 당나라를 개국한다. 당 태종 이세민(唐太宗 李世民 598년~649년)은 수나라 말기 전국적으로 군웅들이 들고 일어 나자 머뭇 거리던 태원의 아버지를 재촉하여 장안으로 밀고 내려오게 하여 수나라를 마감하고 당나라를 개국하게 한다. 당시 당고조 이연의 핵심참모로 군수물자를 담당하던 인물은 고구려를 명말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무측천(武則天: 624~705)의 아버지 무사확(武士彠 559년~635년)이었는데 무사확은 수 양제 양광(隋煬帝 楊廣 569년~618년)시기 대규모 토목사업에 목재를 대던 태원의 목재상으로 장사를 하면서 수나라가 상황을 누구 보다 잘 파악하고 있었다. 무사확은 이연의 당나라 개국공신 14명중 한명으로 선정될 정도로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이러한 인연으로 무측천은 후에 14살에 궁으로 들어가 당태종의 후궁이 되어 무미(武媚)라는 이름을 받으며 재인(才人: 가무로써 황제를 섬기는 말단 후궁)으로 태종과 잠자리도 못하고 궁녀로 12년간 지낸다. 무측천의 어릴시절 아명은 무미랑(武媚娘)이었으며 커서는 무조(武照)였다. 태종말년에 병수발을 하다 훗날 황제가 되는 태종의 9째 막내아들 당고종 이치(唐高宗 李治 628년~683년)와 서로 눈이 맞았다. 이치는 황제자리에는 뜻이 없었으나 사랑하던 무측천의 간곡한 부탁에 황제가 되었다고 한다. 당태종 사후 황실법도에 따라 황실 사찰인 감업사에 비구로 가 있던 무측천은 분향을 위해 사찰을 방문한 이치를 다시 만난다. 새록새록 옛정이 퐁퐁솟아난 이치는 여러가지 황실 내부의 정치적인 알력을 이용하여 28살 무측천을 다시 궁궐로 불러 들이고 고종 이치의 비(妃)로 삼는다. 무측천은 궁에 다시 들어가 고종 이치와 4남2녀를 낳으며 달달한 사랑을 즐기며 드디어 황후 자리까지 올라 결국은 당나라 역사를 뚝 잘라 자신의 무주(武周 690~705년) 세워 중국역사상 유일한 여황제의 자리까지 올른다. 장사를 하며 세상이 돌아가는 정세에 밝은 무측천의 아버지 무사확은 딸에게 보통의 아버지들 처럼 집안일을 교육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이치와 학문을 가르쳤다고 한다. 남달리 총명했던 무측천은 아버지의 교육으로 누구 보다 정세판단이 빨랐고 무측천은 어쩌면 궁궐 생활을 하면서 다양한 정보를 수집하여 장차 당나라의 주인이 누가 될지 파악하고 연인 이치가 황제의 자리를 오를수 있게 여건을 조성해 놓았던듯하다. 중국역사에는 상인들이 왕조를 개국하는데 큰 역할을 하는데 진나라의 여불위와 더불어 무사확도 중국에서 유명한 산서지방의 진상(晋商)이라는 대표적인 상인집단중 한명 이었다. 펑요고성은 중국역사에서 처음으로 은행역할을 담당하던 기관인 표호(票號)가 나온 곳으로 일승창(日昇昌)등 표호가 27개가 있다.


평요고성! 모퉁이 주점에서 지음지우(知音之友)와 함께 지역의 명주인 펀주(汾酒)잔을 기울이며 지난 수천년의 사람들 이야기로 밤을 패고 싶은 곳이다…!
평요고성의 역사여행 플래닛차이나투어가 만들어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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