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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중국여행 추천 도시- 산시성 평요고성(Ancient City of Ping Yao 平遥古城 핑요우구청) 넷
작성자 : 한재철  작성일 : 2012-12-06  조회 : 2328
  • 중국여행 추천 도시- 산시성 평요고성(Ancient City of Ping Yao 平遥古城 핑요우구청) 넷

    평요고성에서 만나는 성당(聖堂)이 당황(?) 스럽다!

    고대에 사람들이 목숨을 걸고 장거리 여행을 떠난 이유를 몇 가지 살펴 보면 돈(조공무역)을 벌기 위해 또 종교적인 박해(구도) 또는 생존을 위한 먹거리(정착지)를 찾아 떠나는 여행길은 고난의 여행길이었다. 지금 처럼 교통수단이 발달하지 않은 시절에 엄동설산 고산준령을 넘고 타는 듯한 사막길을 통과해서 목적지에 도착하는 길을 나서는 것은 쉽지 않은 결심 이었다. 제대로된 지도도 없었기에 사막길에서는 이정표가 먼저 가다 죽은 사람들의 인골 이었다고 할 정도로 그 길은 쉽지 않았다.

    이렇게 힘든 시절에서도 여기저기 산속샘물들이 모여 졸졸졸 흘러 큰 바다에 닿듯이 우리가 아는 것 보다 옛사람들은 빈번히 동서양의 끝없는 교류를 통하여 서로의 문화를 전파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증거가 이스탄불에서 장안까지의 실크로드 길이다. 그리스도교도 동양에 이 길을 통해 알려지게 된다. 당나라 태종 정관9년(635)년 장안에 네스토리우스파 선교단이 도착하고 정관12(638)년 그리스도교는 중국에서 경교(景敎)라는 이름으로 공인된다. 당시 당나라 조정에서는 대진사(大秦寺)라를 교회를 지어 경교의 포교를 증진하여 수백년간 경교는 중국대륙에서 크게 성장한다. 대진국(大秦國)은 당나라가 로마를 부를 때 쓰던 명칭이다. 콘스탄티노플 대주교 였던 네스토리우스는 그리스도가 신성(神性)과 인성(人性)을 따로 가진다고 양(이)성론을 주장하다 에페소공의회의(431년) 결정으로 이단으로 단정되자 페르시아로 망명한다. 그후 그를 추종하는 세력들은 그를 시조로 하는 네스토리우스파로 불리는 기독교 교인들이 되어 이슬람지역과 아프리카, 동양지역으로의 왕성한 포교 활동을한다. 이들이 바로 당시대 세계에서 가장큰 국제도시 장안까지 들어 오게 된 배경이다. 펑요고성에서 만나는 성당이 너무나도 낯설지만 이와 같이 당나라시기 통치자들이 자신감있게 외부의 문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한 역사적 배경을 안다면 그리 낯설은 풍경만은 아닐 것이다.
      

    이 성당은 청나라 건륭45년(1780년) 평요현 후기촌(侯冀村) 사람 후존지(侯存智)가 외지에서 장사하면서 천주교 신자가 되었는데 건륭47년(1782년) 평요로 돌아 올 때 천주교 신부를 모셔와 후존지의 집에 거주하며 설교를 하게 하였다. 광서11년(1885년) 신도가 많아지면서 돈을 모아 안가가(安家街)에 대지를 구매하여 선통원년(1909년) 태원교구주(敎區主) 이태리인 풍조서(風朝瑞)가 성당건립을 허가하여 선통2년(1910년) 이태리 유(劉)신부가 감독하고 하북설계사 한통심(韓通深)이 설계하고 시공하였다. 현재의 천주교당은 당시 건립한 성당이며 면적이 773평방미터 전목(塼木)구조의 전통 로마후기 건축양식이다.

    처음 중국대륙을 여행하다 보면 이해가 쉽게 가지않는 부분들이 많지만 좀 다니다 보니 결국은 사람이 많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것은 바로 그 많은 사람들이 만들어온 문화를 우리가 너무도 익숙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흑백논리 처럼 이거 아니면 저거식 단어 하나로 규정지을 수 없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우리 청소년들은 보이지 않는 담으로 막혀 있는 북쪽과 삼면이 바다로 둘러쌓여 있는 세상에 갇혀서 평생살며 편협한 사고의 지배를 받아온 기성세대의 의식구조를 탈출해 당당히 걸어서 대륙여행이 가능한 날이와 열림마음으로 많은 세상을 보길바란다.

    평요고성에 찾아 보는 동서양 문화의만남! 플래닛차이나투어가 함께 합니다!

    깊게 보는 중국여행 플래닛차이나투어 http://www.planetchinatou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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