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일강이 중학교 교과서에 인류 4 대문명의 발상지라고 쓰여 있었다.
요즘은 모르겠다. 필자가 학교에 다녔을 때는 그랬다.
그 때 어린 필자에게는 강이라면 사시장철 곁에 흐르고 있던 낙동강 밖에는 없는 줄을 알고 있었다. 나일강이라는 강이 또, 있다는 사실이 필자에게는 놀라웠다. 그 강은 그 때 필자의 머리 속에는 천상(天上)의 강쯤이었다.
사람이 갈 수가 없는 책 속의 강이었다. 필자가 바로 그 강에 배를 띄었다니,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그래서 사람이 오래 살다가 보면, 그 것도 며느리의 환갑잔치에 술독 속에 빠져 죽기도 한다지 않던가.
이집트는 나일강의 선물이라고 한다. 틀렸다. 아니, 약하다. ‘선물’쯤으로 끝날 일이 아니다.
나일강은 이집트의 ‘어머니’라 해야 옳다. 바로 그 이집트를 ‘있게’하고 그 이집트를 ‘먹여살리고’ 있기 때문이다. 낳고 젓을 먹인다.
나일강은 예나 다름없이 밤낮 흐르고는 있다. 그 곁에 붙어 살고 있는 사람들은 오래도록 잠을 자고 있다. 어째서 강변 마을의 집집마다에는 쪽배 한 척과 당나귀 한 마리만은 다 있다. 동거동락(同居同樂)이다. 5천 년 전 그들의 할아버지, 할머니가 갖고 있던 바로 그것들이다.
그 오랜 세월 동안 쪽배의 노 손잡이 하나, 당나귀의 귀 한 쪽도 변한 것이 없이 바로 그대로였다. 그들에게는 문명 쪽에서 보면, 시간이 멈추었다. 물리적 시간만 흘렀을 뿐이다.
그들의 조상은 정말 대단했다. 그 위대함을 사막 속이나 강가에 고스란히 그대로 남겨 놓았다. 이집트는 예수가 태어나기 전까지, 2천 년 전까지는 이웃 국가들에 대해 호랑이를 잡았다. 장장 3천 년 동안이나 그랬다. 사자들한테는 사자 새끼가 태어나고 있다. 사람들한테는 꼭 그렇지 않다. 때론 강아지 새끼가 태어난다. 이집트가 바로 그 짝이었다.
예수가 태어나기 전 30년이던 해, 요상했던 여왕, 클레오파트라가 로마제국에 굴복, 독사에 물려 자살함으로 이집트 고대 파라오 왕국 3천 년의 찬란하던 역사는 막을 내렸다. 그 다음 2천 년 동안이 눈물겨웠다. 힘있는 이웃 나라로부터 돌림 지배를 받아왔다. 마지막 영국 올가미에서 1945년에야 비로소 독립이라는 것을 했다. 꼭 2천 년만이다.
이웃 이스라엘도 AD 70년부터 1천800년 동안 꼭 같은 운명의 길을 걸었다. 이집트 백성은 나라야 망했지만 제 고향, 제 땅에 불 박혀 살았다. 이스라엘 민족은 온 세상에 흩어져 떠돌이를 생활을 했다. 두 나라가 같은 해, 독립을 했지만 결과는 너무나 달랐다. 오늘날 보는 그대로다. 선진부국과 후진빈국. 또, 있다. 국민성이다. 이스라엘 민족은 자존심이 강해졌고, 이집트 백성은 비굴해졌다. 썩 대조적이다.
중국전국시대 관자(管子)의 말이 치장이 송곳만큼이나 맞았다. 오늘날 이집트에서 볼 수가 있다. ‘가진 것이 없으면 염치도 따라 없어진다는 것.’
오늘날 이집트의 관광지에서는 경찰이나 떠돌이 장사꾼, 다름이 없다. 다 같다. 관광객들한테 무엇을 달라고 따라 다니면서 조르고 있다. 경쟁적이다. 위대한 조상들이 만들어 놓은 피라미드나, 스핑크스 그늘 밑에서 그렇다. 역시 조상의 음덕(蔭德)이 관동 팔백 리까지 미친다는 말이 맞기는 맞다. 오늘날 이집트 인들이 그 덕으로 먹고 살고 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이 번 나일 강에서 참으로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양반은 글 덕, 쌍 놈은 발 덕이라 했던 것! 우리의 압록강(鴨綠江)을 서양 사람들은 ‘야루(Yalu)’라 부르고 있다.
그 까닭을 알 길이 없었다. 이 번 발 품으로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서양 사람들이 압록강을 처음 보고는, 나일강처럼 ‘복된(yalu)’ 강이라는 뜻에서 그렇게 불렀던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