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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리랑카]  스리랑카 여행 여섯째날 마탈레(Matale) 알루비하라(Aluvihara)사원에서 말씀의 위대함을 듣다!
작성자 : 한재철  작성일 : 2013-12-17  조회 : 3655
  • 스리랑카의 불교는 우리나라 불교와 다른 소승불교라고 한다. 모든 종교가 그렇지만 불교 또한 좀 깊은 관심을 가지고 공부하지 않으면 복잡하다. 소승불교는 어디서 온 것이고 대승불교는 또 어디서 온 것일까??? 부처님 붓타(석카모니 釋迦牟尼 Sakyamuni)는 기원전 기원전 624쯤 태어나셔서 29세에 출가하여 35세에 보리수나무 아래에서 깨달음을 얻고 45년간 대중들에게 깨달음을 전하다 80세에 열반 하셨다고 한다. 대부분의 종교 성인들은 교과서 처럼 경전을 들고 다니며 포교 활동을 한 것이 아니다. 부처님의 말씀을 모아 놓은 경전 또한 부처의 열반 후 제자들이 정리한 경전이다. 부처님의 말씀을 정리한 경장(經藏 Suttapitaka) 출가자가 지켜야 하는 계율을 정리한 율장(律藏 Vinayapitaka) 부처님의 말씀을 풀이해 놓은 논장(論藏 Abhidharmapitaka)을 불교에서는 삼장(三藏 Tripitaka)이라고 한다. 결국은 삼장에 종교로서 불교의 가르침이 다 들어가 있다고 볼 수 있겠다. 부처님이 살아 생전에 크게 염려한 부분은 부처님 사후 불교내 다양한 사이비 가설이 생겨 불교가 혼탁해 지는 것 이었다고 한다.
       
       
    부처가 열반에 들자 부처의 10대 수제자로 부처의 마음을 가장 잘 알고 있던 가섭(迦葉;kasyapa)은 재빨리 부처님의 가르침을 통일 하고자 당시 마가다의 수도인 라자가하(Rājagaha; 王舍城)의 웨바라(Vebhāra: 毗訶羅)산 정상 칠엽굴(七葉窟, Sattapaṇṇiguhā)에 출가하여 열심히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고 설파하던 비구승(比丘僧) 500명을 모아 경장(經藏 Suttapitaka), 율장(律藏 Vinayapitaka)을 통일, 합의, 표준화된 공인불경으로 정리한다. 이것을 불교에서는 1차 결집(結集) 이라고 부른다
      
       
    부처님이 생전에 방문한 인도북부의 부유한 교역도시 바이샬리(Vaishali)에는 암바팔리(Ambapali)라는 당시 도시에서 가장 유명하고 인기가 많은 창부가 있었는데 부처가 그 여인의 소유인 망고동산에 온다는 소식을 듣고 여인이 공양하기를 청하자 다른 귀족들의 공양요청이 있음에도 약속한 이 여인을 만나 공양을 받은 곳이다. 그후 그 여인은 불가에 귀의하여 철저하게 계율을 지키는 불자가 되었고 부처님이 방문한 망고동산도 불가에 내 놓았다고 한다. 부처 사후 100년이 지나 이 도시에서 출가한 비구승의 수행과 관련한 계율 논쟁이 발생하자 700명의 비구승이 모여 2차 불교결집을 진행한다 2차 결집의 핵심 내용은 당시 비구승들의 수행과 관련한 것으로 율에 관계된 것으로 열가지 즉 아래 십사(十事)의 문제였다.

    (1) 염사정(鹽事淨). 그 전날 받은 소금을 저축해 두었다가 식사에 쓰는 것.
    (2) 이지정(二持淨). 일중식(日中食)한 뒤에 해 그늘이 2지(指)될 때까지는 먹을 수 있다는 것.
    (3) 수희정(隨喜淨). 밥 먹은 뒤에 또 먹는 것.
    (4) 도행정(道行淨). 도량을 떠나서는 먹은 뒤에 다시 식사할 수 있다는 것.
    (5) 낙장정(酪漿淨). 소유(酥油)ㆍ밀(蜜)ㆍ석밀(石蜜) 등을 낙(酪)에 타서, 밥 먹지 않을 때 마시는 것.
    (6) 치병정(治病淨). 치료하기 위해서는 사루가주(闍樓伽酒:술이 되기 전에 것) 등을 마실 수 있다는 것.
    (7) 좌구정(坐具淨). 몸이 크고 작음에 따라 좌구의 크기를 정한다는 것.
    (8) 구사정(舊事淨). 그전 사람이 하던 일을 따르면 율(律)에 위반되어도 죄가 되지 않는다는 것.
    (9) 고성정(高聲淨). 따로 갈마법(羯磨法)을 짓고, 나중에 와서 억지로 다른 이의 용서를 구하는 것. (10) 금보정(金寶淨). 금ㆍ은ㆍ돈 따위의 보시를 받는 것.
    <불교사전>

    결국 위의 십사(十事)는 개인의 소유를 엄격히 제한하는 율장에 어긋 나는 것 즉 비법(非法)한 것 으로 결정된다. 이 결과로 불교는 전통을 고수하는 상좌부(上座部)와 진보를 주장하는 대중부(大衆部)로 분류가 나뉜다.

    3회 결집은 부처님 열반 200년 후 인도 전역을 통일한 전설적 인물 아소카왕의 주도로 1000명의 비구승이 모여 교단정화작업(佛敎淨化作業)차원에서 진행하는데 기존 경장, 율장에 논장(論藏; Abhidhammapitaka)을 더하여 불교의 삼장(三藏 Tripitaka) 체계를 정립한다. 아소카왕은 불교를 국가의 통치이념으로 실행하며 자신의 제국 곳곳에 아소카왕의 기둥(Asokan pillar)이라는 상징물을 세우며 불교전파에 노력한다. 이 아소카왕이 자신의 아들을 통하여 스리랑카에 상좌부(上座部)의 소승불교를 전파한다. 종이가 나오기전에 이와 같은 결집으로 정리한 초기 불경을 야자나무잎을 가공한 패엽이라는 곳에 적어 놓은 경전을 패엽경(貝葉經)이라고 부른다.
       

    모든 야자나무가 패엽경에 쓰이는 것이 아니고 24~25m 크기로 자라는 다리수라는 종류의 야자나무 어린잎을 가공해서 사용한다. 다리수의 어린잎을 잘라 음지에서 한달 정도 건조후 쌀뜬물로 쪄서 건조하고 잘라서 나무판에 고정하고 가마에서 삶아서 다시 건조후 고운 모래로 표면을 가공하는등 여러 공정 후 사용했다. 5cmx48cm 정도 크기로 자른 가공된 패엽에 뾰족한 송곳 같은 것으로 글을 눌러 쓰고 숯과 코코넛기름을 혼합한 먹으로 눌러쓴 부분을 채우는 하는 방식으로 경전을 기록했다고 한다. 한장한장 쓰여진 가운데 구멍을 뚤어서 하나의 불경으로 완성하여 천년을 견디며 부처의 말씀을 변함없이 불자에게 전달되었다고 한다.
       
    켄디에서 20km 떨어진 곳 마탈레 남부에 있는 알루비하라(Aluvihara)사원에는 바로 초기 불경 패엽경을 보존하고 있던 곳인데 불교가 스리랑카에 들어온 초창기인 남인도 타밀족의 침략으로 수도 아누라다프라를 포기 했던 아브하야(Vattagamani Abhaya)왕이 다시 타밀로 부터 기원전 1세기경 수도를 찾고 국민들의 마음을 추스르고 단결 시키기 위하여 비구승 결집을 통하여 7년에 거처 경, 율, 론 삼장을 부처님이 사용하셨다는 팔리어(Pali)로 정리한 패엽경을 보관하였던 곳이다. 불행히도 초기의 패엽경은 영국식민지 시절 소실되었다고 한다. 초기 불경을 다리수 야자나무 잎에 기록한 이유로 신스크리트어 범어에서 잎을 페다라 `Pattra`로 부르며 단어 자체가 불경을 뜻하게 되었다.

    지금은 불과 수초만에 영화 한편을 전송하고 휴대폰을 통하여 전세계가 동시에 정보를 교환 할 정도로 통신기술이 발달했지만 기원전 인쇄술도 기록을 위한 마땅한 종이대신 사용할 재료를 찾기도 쉽지 않았을 시절에도 인류는 성인들의 올 바른 말씀을 오랜세월 전달하기 위하여 당시에 사용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찾아냈었다.

    나는 스리랑카 알루비하라(Aluvihara)사원 페다라 `Pattra`속에서 인류의 위대함을 다시한번 깨닫는다..

    사원의 귀퉁이에서 어처구니가 있는 맷돌을 만나니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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