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블로그
[스리랑카]  스리랑카 여행 여섯째날 캔디(Kandy) 불치사를 간직한 신성도시!
작성자 : 한재철  작성일 : 2014-01-03  조회 : 2829
  • 스리 달라다 말리가와(Sri Dalada Maligawa)는 우리가 불치사(Temple of the Tooth)로 부르는 콜롬보에서 북동쪽 120km에 있는 캔디(Kandy)에 있는 스리랑카 불교의 정신적 구심점이다. 이런 이유로 캔디는 신성 도시(Sacred city of Kandy)로 불린다.
       
    부처는 열반에 드시기 3개월전 제자들에게 열반 후 다비를 하면 8섬4말의 사리가 나올 것 이라고 예연을 하였다고 하며 나온 사리를 천상,용궁,야차,염부제 네곳에 보내라고 했다고 한다. 지금도 그렇지만 부처의 사리는 불가에서는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우리나라에도 부처의 사리를 모시고 있는 사찰을 적멸보궁이라고 부른다.
       
       

    불치사(佛齒寺)에 있는 부처의 어금니로 알려진 사리는 부처의 다비 후 나온 치사리로 현재 인도의 오리사(Orissa)주의 칼링카(Kalinga)왕국에 보내저 보관하고 있었으나 왕국이 외침을 받자 헤마말라(Hemamala)공주가 쪽머리 속에 숨겨 비밀리에 스리랑카 아누라푸라(Anuradhapura)왕조의 스리 메가바르나(Kirthi Sri Meghavarna 302~330)시기 스리랑카로 전래된다. 불교의 나라 스리랑카에서 사리는 더욱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불치사에 모시고 있는 사리는 왕권을 상징하고 있어 스리랑카에 전래된 이후 왕이 수도를 옮길때는 사리 또한 왕궁옆에 사찰을 지어서 모셨다.
      

       
    비말라 다르마 수리야 1세(Vimaladharmasuriya I, Konappu Bandara 1590~1604)시기 1592년에 캔디는 왕국의 공식 스리랑카 수도가 되었고. 불치사는 1603년 왕궁옆에 황금장식의 지붕의 2층 목조건물로 세웠으나 지독한 카톨릭 중심사상을 강조하던 식민지시대 1637년 포르투갈은 스리랑카 국민의 정신적 구심점을 하는 캔디의 불치사를 침입하여 사리를 파괴하려 하였으나 불치사리는 비밀리에 델가무사 다시 마히앙가나로 옮겨져 보관하다 라자신하2세(Rajasinha II, 1629 ~1687)시기 1697년 불치사를 복원하고 다시 안치 하였다. 이후 불치사는 키르티 스리 라자시마(Keerti Sri Rajasimha,1747~1782)시기 보수 공사를 하였다. 스리 위크라마 라자싱헤(Sri Wiekrama Rajasinghe, 재위 1798~1815)시기 스리랑카가가 영국 식민지로 넘어가는 시절까지 캔디는 캔디왕국의 수도였다. 불치사는 내전시기에도 타밀반군의 폭탄테러 1998년 지붕과 천장이 무너졌다 2003년 복원하여 지금의 모습을 하고 있다.

    식민지시대 선선한 기후로 휴양 도시로 서양인들에게 사랑을 받던 곳이라 캔디도심은 중세시대풍의 건물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우리일행이 불치사를 방문하기 몇 시간전 영국찰스황태자가가 직접 걸어서 불치사를 방문할 정도로 캔디 불치사는 스라랑카 국민들에게 중요한 상징성을 가지고 있는 곳이다.

    불치시에서 사리를 친견할 수는 없지만 평소에도 수 많은 참배객들이 전국에서 방문하고 있으며 불교에 관심이 없어도 아름다운 건축물을 감상하다 보면 스리랑카 국민들의 미술적 감각을 즐길수 있다.

    불치사리는 1년에 한번 7월~8월 사이에 보름날 열리는 캔디 아사라 페라해라(Esala Perahera) 축제 기간 7일째 되는날 화려하게 장식한 코끼리에 안치하고 시내 퍼레이드를 한다.
       
    불치사의 여기저기에 있는 문스톤(Moon Stone)이 초기 모습에서 많이 바뀐 모습으로 참배객들을 발을 따뜻하게 맞이한다.

    하늘을 나는 이무기도 때가 되면 땅에 떨어저 흙으로 돌아가고 만물이 변한다.
    오로지 변하지 않는 것을 성인들의 말씀 뿐이다...
    목록